허세욱 평전
송기역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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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가 아니었으면 존재도 모른채 넘어갔을 책 한권. 물론 책 속의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그 해, 한·미 FTA로 연일 뉴스며 신문이며 각종 매체가 시끄럽던 때에도 학교 가까운 곳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위해 몰려있다는 사실에만 흥분할 뿐.. 내게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참 철딱서니 없었지. 다들 그런 나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뒤늦게 그 당시에 있었던 이 책과 관련한 사건을 알아버리게 됐다는게 부끄러웠다.


허세욱 열사의 분신 이후, 추도제 과정을 다룬 기사 한 편 ▶ “허세욱 열사는 부활한다” (바로가기 링크)



이 책의 주인공 허세욱 열사는 소시민들이 머무는 각종 투쟁 현장에서 자신의 땀과 피를 흘리며 동분서주했던 인물이다. 살아생전에,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시던 순간과 그 이후에도 존재조차 몰랐던 그를.. 이 한권의 책으로 이해했다고 한다면 과연 그보다 더 오만불손한 태도는 없을 것이다. 그저 지난 여름에 읽은 이 책을 통해 이제라도 그분을 알고 진짜 옳은게 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만 말하겠다.


(p. 70) 대부분 회사에서 복지는 전무했다. 복지는커녕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일상적이었다. 시민들은 택시운전사들에게 친절함을 요구하지만, 사납금에 시달리는 환경을 이해하기보다 비난이 앞섰다. 가끔 제도 개선을 외치는 택시운전사들의 집회가 있으면 교통 체증에 짜증을 내고 얼굴을 붉히는 게 전부였다.

(p.114)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듯 그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지, 왜 자신처럼 분노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소녀들이 이유도 없이 길에서 깔려 죽었다. 두 소녀가 죽었지만 치외법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진실은 가려졌다. 제 딸이 그런 일을 당했으면 가만있지 않을 사람들이 남의 일이기 때문에 무관심하거나 나서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p.294)
사람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볼 때 우리들은 외계의 존재들이었다. 불의에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이상한 존재들이었다.

나는 서평을 쓰면서 본문 내용은 잘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 만큼은 남 얘기 같지 않은게(이를테면 우리 아버지도 회사소속으로 택시운전을 하시기에 나 또한 사납금 등의 여러 근로고충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는 것 등) 문장 하나하나가 와닿는 것이 특히 많았던 책이다. 분노했던 사건에 대해 바쁜 일상을 핑계대며 내 일이 아니라고 쉽게 잊었으며, 비판에 앞서서는 그 대상에 대해 나 스스로가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쉽게 간과했다. 늘 그렇게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었던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참 많은 반성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늙은 전태일로 불리던 한 처절한 노동운동자의 이야기다.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고, 완독을 한 뒤에 간신히 덮었지만 석달이 지나 서평을 쓰는 아직까지도 가슴이 참 먹먹하다. 내가 이 책으로 인해 감명받은 내용은 정치성향이나 뭐 그런 거창한 내용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뜨겁게 불의에 저항하고 싶어했으며, 매일 외로운 방에서 홀로 섧게 울었던 그를 많은 사람이 읽고, 그 순수했던 마음 그대로를 추모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살아생전 그토록 크게 여기던 전태일 열사 곁에 잠들었다. 애석한것은 뜨거운 화염을 온몸에 감고 숨을 거둔 젊은이의 일이 있은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마음을 먹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오늘의 현실이다. 각박한 현실을 등지고 먼 곳으로 떠난 두 열사는 지금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왔다가 다녀간 한 사람과, 철없이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떠들던 그 공간 바로 인근에서 모진 마음을 먹었던 또 다른 한 사람. 스산하고 묵직한 바람이 부는 이 늦가을에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부디 그 곳에서는 분노도 아픔도 없으시기만을 바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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