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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상.하권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장미의 이름과 관련하여 많은 분석틀이 마련되어 있다. 이미 개역판은 원활한 글읽기를 제공하고 있어 특별한 컨텍스트를 바탕에 깔고 가지 않더라도 소설의 즐거움과 교훈을 만끽하는데에는 큰 제한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아래의 장황한 자료를 만드는데 살펴본 것들을 열거해보면 장미의 이름 읽기(강유원 저), 서양기독교사(얼 E. 케언즈 저/김기달 역), 위키디피아 인터넷사전 등을 참고하였다.  

프랑스의 구조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의미하는 것)와 기의(의미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양자들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람을 개라고 부르든지, 개를 사람으로 불러도 그것의 일반화가 이루워지기 전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실체적이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큰 것, 작은 것의 차이는 그것의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큰 것이 있기에 작은 것이 있고, 그 반대가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기호의 관계성은 우리 삶 전체에 기호로써 뿌리내리고 있지만, 그것의 관계성(해독)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그것은 때로는 권력이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한다. 하이엔드의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은 그것이 하이엔드의 기능과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가지는 높이인 기호가치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안다.  자본주의의 재화들이 기호권력의 산물으로서 위치하듯이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들도 기호권력으로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권력의 산을 옮기는 愚公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산을 드높이는 일이 될 것이며 산을 깍아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 요 약 -

1327년 11월, 수련사 아드소는 윌리엄 수도사와 함께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의 한 수도원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수도원에서 발생하는 모종의 살인사건들은 요한묵시록의 종말과 닮아있다. 하지만 명민한 수도사 윌리엄이 사건을 조사해나가면서 이 모든 사건의 축이 장서관 속에 있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밝혀지지 않은 저술 시학2권과 관계있음을 밝혀낸다. 그렇지만 수도원장과 장서관 사서담당은 도서의 자유로운 탐색이나 열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윌리엄과 아드소는 몰래 침입하여 장서관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물론, 마침내 이 모든 사건의 음모자인 한 수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는데, 한쪽에서는 목적한 사건이자 다른쪽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장서관를 포함한 수도원 전체는 불바다가 되고 만다. 인간본성의 하나인 웃음과 이성의 지적탐구를 제한하는 한 수도사의 일그러진 신앙심은 그것의 반대편에 선 자들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신앙탐욕자 間, 지식탐욕자 間, 그리고 兩者 間의 충돌로 빚어지는 이야기는 에코의 박학과 논리, 기호로 비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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