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란 옮김 / 현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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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라는 질문은 중요하다어떤 일에 대해서 문득 내가  이걸 해야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을  질문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없으면 더이상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어렵다그래서 회사도 자주 옮겼다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일까지 재미없고 조직 조차 견딜  없으면불쑥불쑥 내가   일을 계속해야 하지내가   회사를 계속 다녀야하지?”하는 질문이 마음을 어지럽혔다매달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외에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면 고심 끝에 퇴사를 결정하곤 했다.

 

그런 내게 너는 생각이 너무 많다거나, “도대체 뭐가 문제냐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나도 안다그러나 어쩔  없는 일이다나라고 좋을리가 있겠는가회사에서 더럽고 치사한 일도 당하고 멘붕에 빠지고 스트레스를 받고 눈물도 흘리고  진짜 퇴사할꺼야!”라고 결심하면서도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출근하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혼자 낙오자가   같고 사회 부적응자인 것도 같다고 생각했었다.

 


생각해보면 살아온 날들 중에서 나를 사랑한 날보다 미워한 날이  많았다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로 스스로 괴롭히는 것도불만 투성이 예민보스처럼 여겨지는 것도어느  하나 정착하지 못해서  나이가 되도록 그럴싸한 경력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것도, 돈을 불리기는 커녕 백수가 되어 그간 모아 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면서 불안감에 빠지는 것도 모두 나로 태어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알기 때문이다.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을 나만 유독 여기 저기 부딪히며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면 태어나게 해달라고  것도 아닌데  나를 낳아서 이렇게 고달프게 만드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에는 회사나 다른 일처럼 선택의 여지도 없다죽을 용기가 없다면 랜덤으로 주어진 성격환경을 부여잡고 희미하고 막연한 길을 외롭게 찾아 나가야 한다내가 ?”라는 대답에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이어가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살아가는 일이.

 


인스타그램에서 에밀 시오랑의 , <태어났음의 불편함> 처음 만났을 ,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말고도  있네하며 위안이나 안도감을 느꼈다. ‘나를 견디는 것이 이라 쓰게 말하는 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같아 안타깝기도 했고무엇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책이 당연히 에세이인  알았는데포장을 푸르고 책을 열었을 때 짤막짤막한 아포리즘으로 가득 차있어 다소 당황했다누군가의 삶과 생각을 밀도 있게 들여다 보기에는 에세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아쉽고 낯설었지만김정란 시인의 번역 덕분인지 글    편이 시와 같이 느껴지는 아포리즘 형식의 글도 이내 마음에 들었다.

 

<태어났음의 불편함>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보았을  안에 담긴 저자의 말들이 마냥 염세적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다. ‘ 자체가 고통으로 가득하다 불교의 말이 사는 것은 고달프니 죽어라!’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에밀 시오랑도   안에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치열하고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삶은 무조건 행복해야 하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가득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하지만살아있다는 것은 고통이고 그것을 끌어안는  조차도 삶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나처럼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계속 구미에 맞는 책만 찾아 읽다보니  옆구리가 알록달록 나풀나풀해질 만큼 빼곡히 플래그를 붙이며 읽는데 책 

시 예외가 아니다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태어났다는 재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라는 문장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플래그를 붙인 문장 문장 이후의 글들도 무척이나 멋져서 마음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태어남을 재난으로 여기는 생각은 혐오스럽다. 분명히 그렇다. 사람들은 태어남을 최고의 선이며, 최악의 것은 우리 생애의 시작이 아니라 끝에 위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주입시키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쁜 , 진짜 나쁜 것은 우리 앞이 아니라, 우리 뒤에 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간과했으나, 부처가 간파했던 것이다. “ 제자들이여, 만일 세상에 삼고(三苦) 존재하지 않았다면, 여래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처는 모든 불완전함과 재난의 근원인 태어난다는 사실을 삼고 중에서 가장 먼저, 늙음과 죽음에 앞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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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2021-01-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남이 재난 맞는데 혐오스럽나요? 인간은 그것을 드러내려고 열심히 살지 않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