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인격 - 24개의 인격을 가진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
캐머론 웨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린비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누구나 가끔, 내가 다른 사람인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때도 있고, 어이가 없을만큼

유치해 지거나, 포악해 지거나, 혹은 나약해 지고, 또 강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모습이 결국은 '나'라는 전체속에 들어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개는

내 안의 이런 다양한 면들과 그럭저럭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간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다중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전혀 다른다. 그들인 실제로 자신 안에

서로 다른 다양한 인격들을 지닌체 살아 간다. 말하자면 한 사람 안에 다섯살 꼬마도 있고,

10대 청소년도 있고, 50대의 신사, 30대의 장년,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가 모두

한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인격들은 각자의 성격과 특성, 행동과 정서, 욕구, 모든것이 판이하다.

마치 메두사의 머리처럼 서로 아우성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몸체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 

이 글의 주인공은 케머론은 24명의 인격체를 지니고 있다.

그 인격들은 수시로 주인공을 차지하며 자신들을 드러낸다. 한 번에 여러명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또 화해도 하고, 상처도 주고, 대화도 한다.

상상해보라.

운전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갑자기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네살 난 아이의 인격이

된다고 하자. 주인공은 갑자기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공포에 질리는 아이가 되 버린다.

젊고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면 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격체가 튀어 나온다.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인격체는 주인공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스스로 손목을 긋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주인공이 통제 할 수 없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주인공의 삶에는 무수히 실재한다.

이처럼 다중인격 장애가 나타나면 그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흔들리고 깨져 나간다.

아무때나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인격체들로 인해 정상적인 직장 생활도, 가정 생활도, 심지어는

일상 생활도 영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중인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대부분 어린시절과 유년시절에 겪은 끔찍한 육체적, 정서적 충격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와 친어머니로부터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존재들로부터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의식은 받아 들일 수 가

없다. 그대로 인정한다면 한 개인의 정신이 부서져 나갈 만큼 충격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은 나름의 방어기제를 만들어 이런 경험들을 처리한다. 또 이런 경험이 되풀이 되면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벙어기제로 해결하던지, 아니면 새로운 기제들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그 기제들은 하나의 독특한 인격으로 통합되어 되어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튀어 나와 존재 전체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 글은 실제로 24명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다중인격 장애자인 저자가, 발병의 과정에서부터

그 증상이 저자의 삶을 어떻게 뒤 흔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족들과 치료진과 더불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기록한 실제 경험담이다.

다중인격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 그리고 무엇보다

다중인격자인 자신이 부딛치는 고통스럽고 힘겨운 경험들과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해 내려는

한 인간의 눈물겨운 투쟁이 처절하리만큼 생생하게 펼쳐 진다.

 스스로 기억조차 없는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무수한 인격체를 통해

지난날의 끔찍한 경험들을 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다중인격자가 헤쳐나가야 하는 수 많은

어려움들의 일부일 뿐이다.

주인공 역시 인격체를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도저히 인정할 수 가 없다.

그저 따뜻하고 자상한 인상으로 남아있던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의 어린 시절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인정받지 못한 인격체는 끊임없이 주인공을 자해하고 괴롭힌다.

 

참으로 신비한 것은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격체에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모두 다 어리고 난폭한것만은 아니고, 어떤 인격체는 나이 많은 어른으로 인격체간의

갈등들을 조정해 주고, 현명한 판단과 보살핌을 전담하는 인격체도 있다. 뛰어난 능력으로

일을 추진하는 인격체도 있고, 유쾌하고 명랑한 인격체도 있고, 따듯하게 보살피는 엄마같은 인격

체도 있다. 이런 인격체의 도움으로 저자는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박사 학위도 받고,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인간의 무의식은 끔찍한 경험들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대하는 무수한 경험과

정보들을 흡수하고 통합하여 한 존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인격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사는 일이란, 나를 헤치기도 하고

또 살게도 해주는 수많은 인격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할 수 있다면

현명하고, 다정하고, 훌륭한 인격들을 만들어 가며 살 일이다.

 

그 인격들을 하나 하나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고, 보살펴주고, 그래서

마침내 화해하기 까지 주인공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한다.

저자도 마침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격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으로

치유에의 희망을 품게 된다. 고통스런 과거를 다시 만나고, 인정함으로써,

그 인격들과 더불어 살아 가는 법을 배우고, 그 인격들을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그 인격들의 다양함과 에너지를 올바로 사용하는 능력을

키우면서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다중인격자로 살고 있다.

 

다중인격이 미국에서만 존재하는 증상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심리학 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수십년은 앞서있는 미국이기에 이런 사람들도 제대로된 치료와

보살핌을 받고, 어렵고 힘겨운 치료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 건 사실이다.

아마도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정신병원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안에도 마치 서로 다른 인격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 나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둔 감정의 상처와 문제들이 있는것은 아닐까,

아직도 내 안에서 내 관심과 손길을 기다리며 휴화산처럼 잠재하고 있는 감정들은 없을까.

불안해지기도 했다.

한 존재가 겪은 모든 경험과 감정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은 그 모든것을

남김없이 저장한다. 살아가면서 자아가 약해지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혹은

깊은 감정의 상처를 받았을때, 무의식은 그 기억들과 감정들을 다시 풀어 놓는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스스로의 기억과, 감정과, 경험들을

반추하고 돌봐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인정하고,

돌봐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자.. 내 안을 들여다 보자.

슬픔에 빠져 있는 어린 아이는 없는지, 분노에 차 있는 젊은이는 없는지, 또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 하나 거기에 없는지, 내가 방치하고 잊어버린 무수한 내가, 나의 사랑과

관심을 기다리며 한없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 보자.

 

'내안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고 시작되는 유행가는

어쩌면 심오한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