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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된 가족 -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
조주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여성, 가족의 CEO가 되다
-조주은, 『기획된 가족』, 서해문집, 2013.-
『기획된 가족』은 여러 구체적 사례를 통해 ‘맞벌이 중산층 가족’의 생활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인 책이다. 이와 같이 가족의 유형을 내세워 우리 시대의 가족 문화를 해명하는 방식은 ‘블루칼라 외벌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 저자 조주은 씨의 전작 『현대가족 이야기』에서도 시도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3~40대의 맞벌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여, 그들의 가정생활과 삶이 어떠한지,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터뷰의 내용이 책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가족 내의 여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새로운 점은 가족에 대한 기존의 논저들이 가족 문제에 주로 제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였던 것과 달리, 여성의 역할과 수행에 초점을 두어 가족문제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는 중산층 맞벌이 가정 내에서 여성이 ‘가족 기획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가족 기획자’란 가족이 함께 할 일이 무엇인지 결정하고, 그것에 따라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시간을 계획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이승희씨는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식사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녀들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훈련시켜 놓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족 기획자로서의 여성의 삶에 대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여성의 자기관리인데, 저자의 설명은 그중 특히 시간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성들은 근대적 노동자와 가족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압축적 시간관리’ 라고 부르는데, 이는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기상 직후인 오전 7시부터 오전 8시 사이에 자신의 출근준비, 가족의 아침식사 준비, 식사, 식사 뒤처리, 자녀 등교 준비, 자신의 출근을 모두 해내는 이승희씨의 경우가 그 예이다. 이와 같은 ‘압축적 시간관리’ 는 특정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 여성들의 삶 전체에서 일관되게 지속되는 현상이다. 이것은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의 일과 직장에서의 일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일을 병행하면서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는 여성이 하는 가정경영의 실제적 수행에 대해 서술한다. 가정경영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는데, ‘자녀관리’1)와 자원관리가 그것이다. 맞벌이 부부는 낮 시간 동안 자녀를 돌봐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친족이나, 임노동자, 공공․사설 단체에 자녀를 맡기게 된다. 이 때 자녀 양육에 있어서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것, 나아가 이러한 양육 대리인에 의한 자녀 양육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를 확인하고,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여성의 역할이다. 자녀 관리를 위한 업무는 거의 여성이 맡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인터뷰어인 ‘박수정 씨’ 의 대형 마트에서 장보기등을 사례로 들며 가정 내 자원관리에 있어서도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먼저, 일부 내용에 대한 사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시간관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의 초반부는 다양한 사례가 실려 있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분석에 부합하는 사례의 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등 사례 제시의 편중이 드러난다. 특히 여성의 자원관리에 관해 제시되고 있는 사례는 두 가지 뿐이다. 이 책에서처럼 여성이 가정의 주도적 자원관리자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원관리에 대한 더욱 풍부한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가정에서의 남편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지나친 부분이 많다는 점도 이 책의 한계로 지적해볼 수 있겠다. 저자는 남편의 가사 참여 정도에 따라 여성의 시간인식이 달라진다고 주장했지만, 그외에는 가정 내에서의 남편의 역할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남편보다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하였다. 이 책이 합의자, 보조자, 혹은 의사결정자 등 남편이 가정에서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역할에 대해 제시하였다면 맞벌이 가족에 안에서의 부부 간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더욱 용이하게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로, 이 책이 여성 삶의 유형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이나 어떤 구체적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재미있는 인터뷰들이 많지만, 그 인터뷰들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공감과 재미의 요소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틀 제시를 줄이고 대신 각각의 사례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분석을 한다면 더 생동감 넘치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이러한 가족의 모습과 그 안에서의 여성의 삶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대안적인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인적․사회적 전략, 혹은 제도의 보완처 등을 언급하였다면 이 책의 논의가 더욱 완결성을 가졌을 것이다.
이 책은 미래의 장밋빛 사랑과 멋진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직업 생활을 기대했던 20대 여성들에게는 공포로, 또 인터뷰어들과 비슷한 또래의 30대 여성들에게는 공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책에서 묘사된 여성의 삶이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가족 기획자’가 되기를 강요하며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무엇이 여성들로부터 장밋빛 꿈을 앗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저자는 인터뷰어들의 자녀 양육을 자녀를 근대적 시간에 맞는 인간으로 성장시켜나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저자의 양육에 대한 정의는 사랑과 유대감을 바탕으로 하고 전인적 교육을 목표로 하는 일반적인 자녀 양육에 대한 관념과 다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양육 대신 ‘자녀관리’ 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