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최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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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해석보다 시를 읽어내는 일이 더 힘들 때가 많지만 시인들의 산문이나 에세이는 내가 선망하는 너무나 근사한 문장들의 집약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집을 많이 챙겨 읽지는 못하더라도 시인들이 쓴 에세이나 산문은 일을 삼고 챙겨읽는 편이다. 최현우 시인의 첫 산문집 『나의 아름다움과 당신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역시 그러한 이유로 관심을 가지고 챙겨보기 시작했다. 제목과 표지부터 시집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궁금했는데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에 불을 지른 건 김금희 소설가의 인스타그램 추천 글이었다. '시인을 닮아 멋지고 단단한 책'이라는 문장은 책은 물론이고 최현우 시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지금 바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어 주었다.


 한없이 함께 있고, 함께 웃고, 기억을 떼어 나누던 사람이 내가 감지할 수 없는 장소에서 나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고 다닐 때. 그에게 내가 고작 그런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믿었던 이의 이면을 알게 되고, 그것에 실망하고. 이런 일들은 너무나 상습적이고 별반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으레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안다. 나의 병이 거기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겠으나, 나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를 주었던 사람을 다시 도려내는 일은 나의 일부를 함께 도려내는 일이었을까. 나의 절연은, 내가 지불했던 믿음이 턱없이 모자라서 몸의 고통까지 끌어다가 인연의 값을 갚고 있는 걸까. p.27





본격적으로 본문을 읽기 전, 작가의 말만 읽어도 이 책이 얼마나 밀도가 큰 책인지 알 수 있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예민하고 예리한 통찰력이 문장에서 보이고 읽힌다. 최현우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가 다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버전이 다른 사람 같다. 김금희 소설가의 '불행과 슬픔에 대한 섬세한 탐색자'라는 표현이 더없이 탁월하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을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다가 너무 빈번하게 만나게 되는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을 보면서 책에 밑줄을 긋는 일이 크게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만큼 놓칠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한 이 책이 소중해진다.


 나는 저마다의 삶이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게 자주 무섭다. 거리를 지나다가 지나치는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 크고 작은 희망과 절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경이롭고 두렵다. 가끔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견디셨죠? 네 탓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자주 무섭고 가끔 행복한 지금이, 나는, 괜찮은 걸까요? p.61




나는 감히 흉내 내기조차 하지 못하는 문장들을 따라 읽어갔지만 청소년기를 지나왔고 시인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시인의 문장이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페이지터너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감정의 선을 따라 깊게 이입하게 되어 작품을 읽기 전부터 나름의 각오와 준비가 필요한 작품이 있다. 후자의 경우 몇몇 작가들의 소설이 그러했는데 최현우 시인의 산문집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역시 소설을 빠져 읽듯 감정선을 따라 깊게 이입하며 읽어가게 해주었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작가들을 통해 받았던 위로와 공감을 받아 놀라기도 했고 나쁜 편견을 깨뜨려 좋은 기분이 밀려오기도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을 믿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우리는, 시가 있는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작고 짧고 낮고 깊게. 꼭 불행을 위한 것이 아니고 불행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고, 삶을 조금은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여기서부터 조금 더 멀리 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p.163


최현우 시인은 작은 것들을 자세히 보는 사람 같다. 그의 시선을 통해 그동안 그냥 지나치며 살았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고 모르며 살았던 감정들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쉽게 엄두는 안 나지만 그가 쓰는 시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덕분에 나의 삶도 여기서부터 조금 더 멀리 가볼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럴 것이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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