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문지아이들
이경혜 지음, 민혜숙,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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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어린이 문고본으로 처음 만났던 『어린 왕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내 눈에도 모자로 보였던 그림이 사실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구렁이였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지만 재미도 이해도 딱 거기까지였다. 끝내 완독을 하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어린 왕자』에 대한 이해 부족은 『어린 왕자』의 세계적 인기와 명성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린 왕자』를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하는 어린이가 나 혼자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 보인다는 재미와 감동이 어느 정도 자란 나에게도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나에게도 『어린 왕자』는 특별한 소설이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 왕자』는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출간된 것은 물론이고 『어린 왕자』를 출간하지 않은 출판사가 없을 정도로 국내의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다. 예쁜 일러스트, 컬러링북, 필사북, 팝업북, 원서 등 다양한 형태의 책들과 더불어 저마다 최고의 번역본이라 내세우는 출판사들 덕분에 독자들은 『어린 왕자』를 고르는 재미 혹은 숙제를 넘겨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경우 20대 중반부터 5년 주기로 꾸준히 『어린 왕자』를 읽겠다는 다짐을 한 이후로 5년 주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어린 왕자』를 챙겨 읽으면서 틈틈이 책도 늘어나 책장에 '어린 왕자 존'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어린 왕자』 자수 그림책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영광으로 '어린 왕자 존'이 확장됐다.

 

"잘 가. 내 비밀은 이거야.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안 보인다.

네가 네 장미에게 바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해진 거야." p.49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다른 인상을 남기며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나는 정말 이상한 어른에서 정말 너무 이상한 어른, 너무너무 이상한 어른, 완전히 이상한 어른이 되어 마치 의식처럼 주기적으로 『어린 왕자』를 읽고 있지만 이번에도 역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전 『어린 왕자』의 독서들에서는 어린 왕자가 만난 이상한 어른에 혹은 여우나 장미에 이입이 되기도 하고 소설 속 대화에 감응하곤 했었는데 이번 독서에는 마치 수수께끼처럼 말하는 사막의 뱀에 크게 감응하며 나에게 『어린 왕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이 느껴지며 이런 상황들을 흥미롭게 받아들이게 한다. 거기에 이번 책엔 자수 디자인이 더해져 글과 디자인에 향하는 눈길이 오래도록 머문다. 



 

이경혜 작가가 새롭게 쓰고 민혜숙 작가가 자수로 일러스트를 수놓은 문학과지성사의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에 여고 시절 짝이었던 이영혜, 민혜숙 작가의 나이를 합하면 120년이 되는 해에 출간된, 그 자체만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어렵게 읽히는 『어린 왕자』를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작가들의 바람은 너무나 근사하면서도 특별한 방식으로 탄생했다. 동화책을 연상시키는 사이즈의 판형에 가독성이 편하게 문단을 나눈 것 등 책의 곳곳에 제작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2년 반 동안 수놓았다는 자수는 말할 것도 없다. 시리즈로 다른 작품들이 출간돼도 괜찮을 것 같다.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이상함을 갱신하는 어른에게 빛을 비추기도 하고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동화 그 이상의 가치를 전해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속에서 보지 못한 것이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어려서(?)인지 반대로 더 이상 어리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수수께끼다. 읽을 때마다 다른 인상을 받으며 익숙함과 새로움이 공존하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읽게 될 『어린 왕자』에 대한 기대감은 저절로 커진다. 아직 완성형이 아닌 내 책장의 '어린 왕자 존'은 어떻게 더 확장될지도 기대된다. 확실히 아직 나는 『어린 왕자』에 길들여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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