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편지 문지 스펙트럼
에드가 앨런 포 지음, 김진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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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디높은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같은,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믿고 보는 문학과지성사의 전집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옷을 입었다. 작고 심플한 디자인이 군더더기가 없다. 1차분으로 5권의 책이 출간됐으며 리스트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다 

문지 스펙트럼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서포터즈를 모집했고 평소 서포터즈 모집이나 이벤트가 비교적 활발하지 않았던 문학과지성사였기에 환영하는 마음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신청했다. 오지랖 넓게 문지 스펙트럼 서포터즈를 넘어 영업을 조금 하자면 최근 문학과지성사는 스펙트럼 시리즈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가 지금까지 발표한 권의 소설집 『여수의 편지』,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도 새 옷을 입고 리뉴얼 되어 출간되었다. 올가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들려온 새롭게 출간된 책들의 소식이 반가움을 넘어서 든든하다.

 

어둡고 우울하면서 강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독보적인 이야기꾼인 그의 작품세계가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와 닮았다는 생각에 애드거 앨런 포를 자주 영국 작가로 착각하지만 인물들의 날카로운 심리묘사나 날이 그의 필체는 생생하다. 자주 찾아보게 되는 작가는 아니지만 독보적인 작품 색에 매번 매료되고 만다. 추리, 스릴러의 대가답게 속도감 있게 소설들이 읽히는 만큼 작가가 주는 특유의 감정 소비도 커서 도무지 한 번에 몰아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신중하게 한편 한 편 아껴가며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며 읽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서늘하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 광기 등의 심리 갈등을 심층적으로 그리고 냉담하게 다룬다. 이런 요소들이 권의 단편집에서가 아닌, 단편집에 수록된 5편의 단편들에 전부 등장한다.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세계를 그로데스크 소설, 아라베스크 소설, 추리소설 가지로 나눌 있으며 독자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경험 있게 적절히 섞어 배열했다고 옮긴이의 말에서 설명하지만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은 애드거 앨런 포라는 하나의 장르소설이라는 이번 독서를 통해 깨달았다.

 

사건이일어났는지에 대한이유보다어떻게해결해 나가는지과정 앞세우는 점이 흥미롭다. 「도둑맞은 편지」에서 편지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편지를 찾아낸 과정은 세세하게 펼쳐진다. 나머지 단편들 역시 마찬가지다. 포르투나토가 화자를 , 어떻게 해코지하고 모욕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복수 과정은 자세하고(「아몬티야도 술통」), 어셔가 저택의 우울과 로더릭 어셔의 히스테리의 근원을 말해주지 않지만 제목 그대로 어셔가가 몰락해가는 과정에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다(「어셔가의 몰락」). 늙은이를 죽여야만 하는 화자의 광기로 벌어지는 일들의 과정과 (「고자질 하는 심장」), 암호문을 해독하고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들(「황금 풍뎅이」) 역시 마찬가지다. 반전을 무심하게 건네지만 반전의 전후로 소설의 밀도가 달라지는 점도 애드거 앨런 포라는 장르만이 선사해주는 즐거움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김진경 번역가가 따뜻하게 전해주는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의 분석도 좋았다. 번역가가 아닌 문학평론가가 썼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소설을 읽은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짧고 미스터리한 생을 마감한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오랜만에 탐독하며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늦가을과 초겨울이 오는 시점에 서늘하고 우울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 반가웠고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빠르게 만나 반가웠다. 좋은 책을 읽고 후면 책의 앞날개의 작가 소개 글을 여러 번 되짚어보며 놓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이번엔 앞날개만큼이나 뒷날개도 여러 번 되짚어보았다. 뒷날개엔 1차로 출간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5권의 목록과 함께 앞으로 나올 14권의 목록이 소개되어 있다. 

황순원의 『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1권이 출간됐던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서 장정뿐만 아니라 시리즈의 구성에도 약간의 변화를 줬다고 밝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출간될지 기다리는 즐거움도 준다. 뒷날개에 소개된 목록들만 살펴봐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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