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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 -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ㅣ What's Up 3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 / 새물결 / 2008년 2월
평점 :
희생되지는 않지만 죽어야 하는 존재. 호모 사케르
아감벤이 책 전체에 걸쳐 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까지 잘못 파악되어온 주권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감벤이 새롭게 정립하는 주권의 토대에는 날것의 삶, 호모 사케르가 있다. 그것은 아감벤이 이야기하는 ‘예외 상태’ 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아감벤이 보기에 현재를 포함한 인간의 긴 역사에 수많은 호모 사케르가 존재해왔다. 여러 형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희생당할 수는 없지만 살해당할 수는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선 그들은 법질서의 완전한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희생당할 수는 없다. ‘희생’ 은 뭔가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제물이나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케르는 철저히 주권의 전제조건으로 계산되고 예측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는 수많은 인체실험이 일어났다. 그 실험의 세세한 사항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그 일을 행했던 과학자와 히틀러가 죄책감을 느꼈느냐? 그 일들을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여겼느냐?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아감벤이 지적하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실험들의 준비는 훌륭했다.” 라고 여긴다. 그들은 희생당하지 않았다. 호모 사케르, 날것의 삶이 직접적으로 권력의 도마에 오르는 신체의 등장은 어떤 일탈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법적, 정치적 구조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 사법적 정치적 구조는 이들의 죽음을 보증한다. 헌법 질서는 시민의 자유와 생명을 보장하지만, 그 헌법 질서에는 거꾸로 자유와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고대 유럽에서 범죄자들이 그러했고 20세기 초의 유대인이 그렇게 생명과 자유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그런 추방과 배제는 사법적 정치적 구조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포함이다. 포함적 배제.
그런 포함적 배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예외 상태이다. 포함적 배제라는 역설적인 권력의 작동은 독특한 상태를 필요로 한다. 즉 법이 정지함으로써(배제) 작동하는(포함)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법을 정지하기에 죽일 수 있지만, 정지함으로써 작동하고 있기에 법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외 상태는 보통 계엄이나 비상사태라고 불리는 권력의 작동에서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