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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단밤술래 (외전 포함) (총6권/완결)
채팔이 / 필연매니지먼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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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기억을 잃고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라고밖에 부를  없을 것이다.


채팔이 작가의 <단밤술래> 읽고 나서 밀려오는 감정과 시간의 무게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이도한과 윤담의 이야기에  언저리가 뜨끈하게 달아올랐다이토록 고통스러운 사랑이 있을까이렇게 서로만이 존재했던 세계가 있을까이들처럼 온전히 사랑할  있을까. 


천년을 넘어서 현재에 둘이 만난  길고  오해와 기다림을 매듭짓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이도한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얻고자 했던  이전에 윤담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얻고자 했던  역시도 서로였을 뿐이다보름달이   시작되었던 사부의 술래잡기는 예상보다 길어졌다금방 돌아갈  있을 거라 생각했던 발걸음은 사부의 힘을 두려워한 신장들에 의해 멀어져만 갔고 결국 도깨비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다서로를 향한 마음이 거기에 있었지만 이들 앞에는 ‘사명이라는 강이 놓여져 있었다천년  ‘사부 ‘ 세계는 서로밖에 없었음에도 사명이 그어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외롭고 외로운 시간을 홀로 견뎌야 했으며 정인을 곁에 두고도 오래도록 그를 찾아 헤매었으니 기다리고 찾아다니는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고통그럼에도 놓을  없었던 정인...


이도한과 윤담의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을 보며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다숨이 막혔다서로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헤어져야 했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파멸하고야 말았던 둘을 보며 나는 목놓아 울어야 했다 돌아오겠다고 약조를 했건만 무신정변에 휘말려 떠돌아 다닌 세월은 10년을 넘는 시간이었다그렇게 아끼고 애정을 쏟아 길렀던 어린 도깨비를 어두운 동굴에 홀로 두고 떠나와야 했던 사부는 기억을 잃은  영문도 모르면서 마음 아파해야 했다그리고 사부와 뫼의 인연 이전으로  거슬러 그들의 근원을 만났을 때에는 윤담과 이도한의 운명에 압도당하는 듯했다.


사명

귀왕의 사명

귀왕의 사부된 자의 사명


눈이 밝았던 부이지만  역시도 겨우 스물을 넘긴 청년이었을 뿐이었다는 그런 그가 '귀왕의 사부' 점지된 사명에 따라 홀로 동굴에서 귀왕을 귀왕으로서 가르치고 키웠다. 그에게서 세상을 통달한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사부도 그저 외로운 영혼이었을 뿐이다. 눈이 밝아 귀의 세계를 아는 자를 사람들이 진심으로 반기기나 했을까. 윤신홍의 자제가 겪은 외로움은 어린 도깨비를 키우면서 잊혀져갔다. 귀왕의 사명을 타고 태어난 도깨비를 자신의 아이처럼 사랑을 주며 키웠고, 그의 맑은 영혼을 사랑했다. 사부는 세상에 육신을 입고 태어나기 도리천의 신이었을 ,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아이의 영혼을 구제할 없다는 모순에 아이의 영혼을 직접 구하고 스스로 땅으로 내려왔다


사부는 자신에게 허락된 생의 끝에서 뫼를 위한 내기를 건다. 내기에 따라 뫼는 사부에 대한 기억을 잃고 그의 영혼을 찾기 위해 하염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다 어긋난 인연은 바로잡기 위해 육신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운명의 실타래는 어지러이 엉켜버렸지만 그것을 푸는 이도 뫼와 사부이자 이도한과 윤담이었다. 이들의 이야기에 타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천년  그들을 얽매어 솔직한 마음을 전하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이제 평범한 삶을 얻어 살아가던 둘이 다시 얽히게 되었던 것은 운명일 따름이다. ‘으로서 부여받은 사명, 눈이 밝아 외로웠던 귀왕의 사부,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윤담. 그리고 사명도 모두 잊고 다시 태어나 평범하게 이도한. 


시간의 흐름에서 과거에 매여 있을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운명을 선택하는 역시 이도한과 윤담의 일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모두가 떠나고

혼자만이 남아 정체된 같았다. 

문득 윤담은 그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아졌다.

<단밤술래> 4 발췌



그때와는 다른 선택, 다시 어둡고 습한 동굴에 너를 혼자 두는 짓은 절대로 한다고 말하던 윤담의 모든 선택이 현대의 이도한과 윤담이 겪은 회한의 과거를 보듬는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윤담과 이도한이, 그들의 모든 시간의 감정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수백, 수천 망각초를 먹었다 하여도 당신을 기억해낼 것이라 했던 이도한의 말처럼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키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윤담을, 이도한은 다시 자신에게 새겼다.


그토록 자신만을 바라던 아이가, 그토록 자신을 사랑해 미쳐가버린 뫼도, 좋아한다고 수없이 말하기에 거침없던 이도한의 존재가 다시 윤담 앞에 온전해졌을 느낀 카타르시스는 감히 형언할 수가 없었다. 과거의 깊이만큼 미래의 감동이 존재한다.


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이도한은 윤담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과거를 잊었어도 그들은 다시 사랑하고 말았다. 이것을 운명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운명일까. 이들은 이제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반인반귀로서 영원을 살며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장대한 이야기의 끝은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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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레인보우 시티 (총6권/완결)
채팔이 / symphonic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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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세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레인보우 시티> 배경부터 스산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인간의 탐욕은 결국 세계를 초토화시켰다. 작중 배경이 되는 세계는 '아담' 제약회사의 욕심 때문에 걷잡을 없는 바이러스가 퍼졌고, 인류는 제어불능의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이다. 이런 세계는 언제나 인간의 인간성을 시험하고 나약함과 추악함을 드러내게 하며 극한의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인간으로서 지켜나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에 자체로도 흥미롭지 않을 없다


중세의 페스트처럼 퍼져나간 바이러스는 마침내 세계를 파괴했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끊임없이 아담(=좀비) 공격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남겨진 자들의 사회란 생존이 지상 최대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무엇을 제한하였으며 어떤 가치를 버렸는가 생각케 한다. 문명과 기술의 발달이 낳은 비극을 목도하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살아가고 살아남는다.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가면서 말이다. 한치 앞을 없는 길에 사람이 있다. 여기, 눈부시게 빛나는 곽수환과 석화의 이야기가 있다.


채팔이 작가가 쌓아 올린 '레인보우 시티' 이야기는 곽수환과 석화의 우연같은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눈길을 잡아끄는 만남이다. 채팔이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주'라는 공간은 특별함이 담겨 있다. 이번 작품의 '제주' 곽수환과 석화가 처음 만난 장소이면서 사실 어떠한 비극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현재 타임라인의 '제주' 가지는 의미는 가진 자들의 낙원과도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이 존재하던 ,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 그곳에서 곽수환은 한겨울에 슬리퍼 하나 달랑 신고 모래사장 해변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는, 어디 높으신 분의 자제인가 싶은 녀석을 만난다. 그가 바로 석화였다. 곽수환은 그를 보며 한겨울인데도 맨발에 얇은 차림인 그가 어디 모자란 아닌가 생각을 했으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양말을 벗어주고 온다. 막상 석화는 거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만남이야 이렇게 떨떠름하고 유쾌하지는 않은 모양새였다.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제주. 육지에서는 아담으로 인해 여전히 불안한 일상과 버려진 삶들이 넘치지만 '제주도' 좀전의 '모지리'조차 한가로이 해변에서 돌을 주울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 그게 무슨 상관인가. 곽수환은 여기에 목적을 완수하면 터인데.


상관인 중령에게도 저러다 등짝 맞겠다 싶을 정도로 가벼운 언사인 곽수환이지만 이런 모습은 제주에 도착한 곽수환의 시니컬한 생각과 상충되는 듯하다. 곽수환이라는 사람의 속은 쉽게 없겠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 쉽게 같으면서도 없는 남자. 남자가 제주에 목적은, 아니 타의에 의해 제주에 와야 했던 이유는 ' 박사' 서울로 데리러 가기 위해서였다. ' 박사' 석화는 여의도 쉘터의 수석 연구원 오양석 박사의 빈자리를 대신할 재원이었으나 체력은 바닥인 돌연변이이다. '' 집착하는 돌연변이.


세계의 돌연변이의 존재란 체력이나 두뇌 어느 하나가 뛰어나면 어느 쪽은 평범 이하의 수준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곽수환은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다지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단순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그의 존재 자체는 온통 물음표와 의문으로 가득차 있다


꾸밈 없고 언뜻 저렴해 보이는 언사는 몸을 숨기고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의 몸짓과도 같았다. 표면적으로야 술을 구하러 레드 구역에 쳐들어갔으니 영창행이 예약이었지만, 실상 그것은 비밀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한달 영창행 대신 ' 박사' 경호하는 일로 제주에 오게 곽수환이었고, 이로 인해 석화의 경호를 맡으면서 자꾸 그와 얽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곽수환이 던진 한마디 한마디마다 그가 속에 감추고 있는 불꽃을 본다. 그는 군인이지만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 그리고 현재의 레인보우 시티가 '만인이 앞에 평등한' 국가가 아니라는 , 군인에게는 인권도 법도 없는 현실이 곽수환이 가진 화두라는 것이다. 곽수환의 과거는 상당히 어두운 것이었다. 능글맞으며 장난 가득한 듯한 곽수환이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아담이 되어버린 가족을 스스로 처리한 홀로 지독한 투성이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죽어가며 남긴 '살아'라는 메시지는 홀로 남은 넷의 소년에게는, 겨우 글자 적힌 메시지조차 알아볼 없을 정도로 방치되어 컸던 소년에게는 회한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살아왔다. 총알받이 신세인 레인보우 시티의 군인으로, 100명이 넘던 동료가 4 남은 상황까지 그가 아담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얼마나 험하게 살아왔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는 최전선에서 아담을 상대하는 자였고,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싸우고자 가슴의 불꽃을 숨기는 자였다.


스스로가 가진 힘으로 살아남았던 그에게 누군가를 지킨다는 생경한 임무는 짐짓 불쾌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군인이 무슨 경호냐며 다른 시키라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 경호 임무는 한달간만이라는 한정을 두고서 받아들인다. 자신과는 다른 체력0 박사는 그로서는 이해할 없을 정도로 허약한 존재이다. 식사 중에 픽픽 쓰러지기도 정도였으니 경호하기에 얼마나 손이 많이 가겠는가. 게다가 그가 의식은 하지 못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다른 감각을 느끼게 하는 자였다


곽수환에게 누군가를 지키는 일은 생경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사로 인해 타인을 지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추운 가벼운 차림으로 돌이나 줍고 다니는 '모지리' 알아서 양말을 벗어주는 오지랖을 부렸고, 석화를 보며 몸이 번이나 자연적으로 반응했었고, 약한 석화를 기절시킨 것에 대해 어색한 사과의 마음도 있었다.


곽수환은 석화는 굴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말을 십분 수용하여 이제는 박사 아닌 박사 부른다. 모든 것은 위의, 무표정한 석화에게서 극적인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도발이기도 했다. 물론 석화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는 언어가 가진 인식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석화를 부르는 곽수환의 호칭이 점차 변화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 박사' 석화에 대해 타인이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다. 하지만 ' 박사'라는 것은 '석화'라는 이름의 내력을 공유하는 상태로서의 곽수환이 다가간 단계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 말은 힘이 있고 항상 언어로 규정되고 정의되는 것들은 대상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곽수환에게 석화의 사적 영역이 공유되었다는 , 그로인해 곽수환이 석화를 알아가는 범주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굴 박사'에서 '자기야'로 몇 단계를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전개가 인상적이다. 


'자기야, 자기야, 일어나. 레드 구역으로 데이트 오자며'


둘이 얽혀들어가는 지점은 상당히 재미있다. 석화는 영문을 모른 오양석 박사의 죽음 때문에 갑작스럽게 여의도로 불려 올라왔고, 곽수환은 헌병대 컨트롤러라는 비밀스러운 신분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의 진상에 가까운 자였다. 석화는 뛰어난 두뇌( 아름다운 외모) 외에는 다른 부분에서 객관적인 장점을 찾기 어려운 종류의 인간이다. 그에 비하면 곽수환은 대부분의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곽수환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석화라는 것이 느껴진다. 특별한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석화에게도 곽수환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도 느낄 있다. 둘에게 부재한 것은 가족이었고, 사소한 감정을 전해줄 있는 대상이었다.


넷에 홀로 남겨진 곽수환에게는 돌아갈 집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뜻하게 맞이해 가족도 없었다. 가족은 아담이라는 미지의 존재가 되어 인간이 아니게 되었으니 이상 공존할 수도 없었다. 감정이 결여된 것이 아니냐는 평을 들었던 석화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알게 했던 존재인 석화의 어머니 역시 스물 후반에 갑작스레 세상을 등졌으니 모두 급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에게 부재했던 사소한 따스함과 새삼스러운 애정은 변이 아담과 에덴동산이라는 사이비 종교와 얽혀들어가는 위험 속에서 피어난다.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석화의 괴벽을 곽수환만이 자체의 특성으로서 받아들여 주었고, 그가 좋아할 만한 돌을 신기하게도 찾아다 주었다. 그리고 만남 때부터 뭔가 경험하지 못한 감각을 일깨우는 석화였지만 아담에 물려 양성 반응이 나왔던 그때를 기점으로 곽수환에게 확실하게 특별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강한 곽수환이었지만 그가 가진 유일한 패배는 아담으로부터 가족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석화는 상황에서 약하디 약한 신체로 아담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것이다. 그것은 곽수환에게 거의 구원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담 바이러스로부터 해결책이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물리친 석화는 곽수환이 잃을 뻔했다가 다시 찾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누구도 없었던 일이었다. 질병의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은 희망이 없다는 것과도 같다. 그랬기에 석화는 자체가 희망이며, 곽수환의 유일하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곽수환과 석화의 부모 세대의 인연, 혹은 악연은 곽수환과 석화의 필연이었고, 석화가 곽수환보다 연상이라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고통이면서 희생이었다. 하지만 석화는 연약한 신체와는 반대로 단단한 심지를 가졌으며,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전한다. 석화는 그야말로 강인한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으며 스스로가 있는 최선을 다하는 빛나는 사람


둘은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빌어먹을 세계의 종언을 고한다


무수한 유전자 편집을 통해 아담 바이러스에 대항할 존재를 만들었던 시티의 연구원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에덴동산이 만들어지고 안의 주축 멤버들 간에도 이견이 생긴 것이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은 그럴싸한 대의명분으로 감추고 오랜 시간 인류를 농락했다. 권력과 지배욕에 사로잡힌 시티의 상층부가 초개처럼 버린 인생과 오만함이 희생시킨 생명들이 거기에 있었다.


완전한 신인류. 석화로 인해 탄생할 있었던 아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곽수환.


이들의 사랑은 그러하기에 안타까움과 눈부심으로 충만하다. 서로를 위해 살고자 했고, 홀로 견디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돌아 것임을, 그에게 돌아갈 것임을...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집착이 아닌 심장이 빚어낸 상대를 향한 강렬한 마음은 바로 사랑이었다. 어떤 시국에도 사랑이 피었다는 가슴 벅찬 명문장은 그들에게 차고 넘친다. 어떠한 것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 빛나는 사랑을, 그들은 살아남음으로써, 함께 살아남음으로써 증명해 내었다. 이토록 생을 갈망하게 하는 하나의 이유를 우리는 곽수환과 석화의 사랑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사랑, 이토록 빛나고 찬란한 .

영원토록 빛날 .


그러하기에 장밋빛 인생을 염원하며 다시금 벅차오르는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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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배경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매혹적인 곽수환과 석화의 이야기는 소설의 본편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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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패션 PASSION (총6권/완결)
유우지 / 더클북컴퍼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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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

정태의의, 정태의를 위한, 정태의에 의한, 그리고 인간 정태의의 수난곡. 

마치 통곡과도 같았던 수난은 다가올 부활과 영원함을 예비한 찰나의 고통이었던 것과 같이 정태의의 운명은 어떤 절연의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기의 천재 정재의를 쌍둥이 형으로 둔 지극히 평범한 듯 비범한 정태의는 정재의의 복록 그 자체로서, 길상천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이어진 재의와 태의의 빨간 실은 태의의 운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 빨간 실을 재의의 자의로 끊었던 순간 둘을 묶고 있던 운명은 방향을 달리 하여 구르기 시작했다. 

혹은, 정태의라는 연은 빨간 실이 끊어지고서 일레이 리그로우라는 바람을 만난다.

잠시간 UNHRDO라는 나무에 걸렸던 정태의는 생각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바람을 만난다. 


일레이 리그로우. 그가 누구던가. UNHRDO 유럽지부의 미치광이 릭. 리그로우 가의 둘째 아들, T&R 기동대의 수장. 너무나 멀쩡한 가문에서 튀어나온 규격 외의 인간병기.

정태의가 그와 얽히게 된 것은 삼촌이자 생물학적 아버지인 정창인의 UNHRDO 단기 복무 제안 때문이었다. 정태의의 수난은 정창인이 가족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정재의가 무기 개발자였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정태의는 정체 수상한 기구와 수상한 삼촌과 미지의 형 정재의를 두고 UNHRDO에서 부탁받았던 역할을 수행한다. 무사히 합동 훈련이 끝나길 기대했지만 재의가 잘라버린 빨간 실이 일레이 리그로우를 만날 운명을 이어버리고 원치 않았던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정태의를 빠트리고 만다.


<패션>을 읽다 보면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창인의 방에서 연결된 화상 통화의 하얀 손이 아니라, ‘태의’라며 끈기있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했던 어린 정태의의 목소리에 이미 일레이는 이 존재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미치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통제불능에 상식 선에서 많이 벗어난 일레이인데도, 유난히 정태의에게는 특별한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패션>의 현 시점에서, ‘일레이’라며 자신의 퍼스트 네임을 가르쳐 준 것부터 시작일 테다. <패션> 본편 6권 내내 정태의와 일레이는 천천히 스며드는가 싶다가도 첫만남의 강렬함은 둘 모두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둘이 겪는 일들을 좇다 보면 이 길고도 긴 장편이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


특히 정태의라는 인물이 가진 특유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움, 체득된 체념이나 내려놓음이 극도로 긴장되고 비상식이 난무하는 배경에서 이상하리만치 안정감을 준다. 그러고 나면 왜 정태의라는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납득하게 된다. 태의는 비상식적 세계의 상식선이자 안정제라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류의 약간은 무심한 듯한 태도. 그러면서 적당히 참견하기도 하고 적당히 포기하기도 하고, 그 어느 선의 지극히 ‘적당한’ 사람이라는 점은 그를 이다지도 특별하게 만든다. 태의의 도망이 만들어낸 관계의 전복은 짜릿할 정도였다. 그 ‘일레이’를 그렇게까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 ‘일레이’에게 그런 일을 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지극히 적당하고 지극히 평범해서 특별한 정태의는 일레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무슨 일을 겪더라도 끊어지지 않을 혈연인 정창인과는 달리 일레이는 정태의에게 어떤 관계,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유우지 님 소설의 수들이 가지는 특별함은 상대방이 어떠하든지 해탈한 듯한 고요함,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점에 스며들고 눈이 돌아가는 공들을 보면서 독자로서 지독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토록 지독하게 스며드는 사랑이라니. 일레이 역시 정태의에게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적당히 투덜대다 적당히 포기하는 정태의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진 일레이가, 자신은 정태의에게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가.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씹듯이 내뱉은 정태의의 말에 일레이는 그야말로 맹렬한 분노를 느낀다. 모든 것에서 특별했던 정태의의 도망은 일레이의 감정을 정확하게 일깨운 동시에 정태의를 잃고 싶지 않다는 일레이의 욕망을 정확하게 되살려 낸다.


<패션> 본편에서 백미인 사건은 정재의가 끊어낸 빨간 실도, 불운처럼 다가온 정창인과 UNHRDO에서의 복무도, 일레이 리그로우의 등장과 만남도 아닌 바로 정태의의 도망 사건이다. 그리고 세링게 섬에서의 일은 정태의에게도 일레이가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징은 믿음이라는 말은 반향이 컸다.


-너는 내 거다. 

-잘 기억해, 태이. 오늘부터...이제부터 매일, 너는 내 거다.

-<패션> 6권 중 발췌


이렇게 말하던 일레이를 떠올리면서, 정태의는 자신의 무의식 아래에 깔려 있던 일레이에 대한 마음을 점차 자각한다. 뭔가 남아있던 중요한 그 무언가도, 확인해야 할 것도 다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정확하게, 자신의 감정을 자각한다.

“야, 나 혹시 너 좋아하는 거 아닐까.”

이 말은 일레이의 귓가를 울리는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일레이가 세링게 섬에 정태의가 감금(?)되어 있던 라만의 별저를 날려버린 일, 그 일은 정태의와 일레이의 조우를 알리는 요란한 축포였다.


국제수배자가 되면 어떠한가. 정태의는 보통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들을 겪고도 맥주 한 캔이면 그냥 잊고 털어버릴 터인데. 

남들이 미치광이라 힐난하며 두려워하며 떨 때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비인간성마저도 정태의 안에 일어난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는데 말이다. 일레이가 싫어지지 않는 이 상황도, 이제는 일레이 리그로우의 범주 외에는 벗어날 수 없는 이 상황도 ‘나쁘지 않다’며 또 그렇듯 받아들일 것이다. 


정태의가 겪은 여러 기상천외한 일들은 어쩌면 일레이를 만나기 위함이었을까. 그리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으로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였을까. 일레이 리그로우를 만난 정태의는 이전과는 달리 이리저리 흘러가며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을 날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저 창공을 나는 연이 자신을 얽매는 듯하지만 자유롭게 날게 하는 바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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