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힘들 때 시 읽어요 - 엄마한테 읽어주는 시와 에세이
송정연.송정림 지음, 류인선 그림 / 나무생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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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십니다.
그런데 자식이 읽어드린 그 시를 다음날에도 잊어버리지 않고 계셨습니다. 딸이 전 날 밤 온 줄도 모르고 아침에 "아이고, 왔니?" 하며 다시 반기셨지만 전날 읽어드린 시의 내용은 잊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치매가 왔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명절에나 보던 손녀는 옛적에 까먹으시고 착한 아가씨가 고맙네 하시던 할머니. 그리고 점점 말이 없어지셨다. 자꾸만 확인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는게 두려워서 '내가 누고? 야는 누구고' 하고 묻던 친척들.

할머니는 그저 실같이 얇아진 눈으로 '허허'하고 웃기만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고, 바뀌고, 의심이 늘어날 때 할머니가 좋아하는걸 찾아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내가 누군지, 엄마가 누군지 다 까먹었어도 기억할 수 있는 하나를,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찾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작가 송정연과 송정림 자매가 요양원에 계신어머니께 읽어드리려고 고르고 고른 고운 시들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옛날시도 있고, 근대시도 있고, 서양시도 있고, 한시도 있고 다양한 시들이 섞여 있다. 몇 번 들어본 구절들도 있고, 처음 보고 이렇게 좋은 시도 있었구나 싶기도 말이다. 그런 시와 곁들어 짧막한 에세이를 덧붙였다. 어머니의 추억을 시 한편에 담아, '그때 그랬었죠' 하고 다정하게 속삭이듯 말이다.

시집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내공이 되지 않아 내가 아는 시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들은 시들이다. '나는 이 시를 참 좋아해, 왜냐하면-' 하면서 이어나가면 나도 '아, 이래서 그 시가 좋은거구나'하고 가슴에 하나, 둘씩 담아 두는 것이다. 날 것 그대로 시를 즐기면 좋을텐데, 인생살이 무심해서 그런지 후루룩 읽어나가다 제풀에 지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급하게 후루룩 읽으며 '아,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봐도 좋고, 하루에 한 편씩 읽으며 '아, 이 시는 이런 느낌이구나'하고 천천히 시를 음미해도 좋고 말이다. 시와 에세이와 어우러진 그림도 곱디 곱다. 

엄마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엄마 딸은 시를 읽어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어서 곱게 나온 이 책을 대신 선물한다고 덧붙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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