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씨, 씨 없는 수박이라며 ?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김수박이라는 만화가가 있다. 그네 이름을 부를 때는 그 이름이 주는 어감 때문에 종종 웃는다. 수박 씨 있어요 ? 수박 씨 없어요 ?! 속초에서 만난 스무 살 말괄량이 아가씨 이름은 < 재미 > 였다. ( 아, 성은 모르겠다 ! ) 만나면 가끔 술도 마시고 영화도 함께 보는, 나이를 초월한 친구였다. 영화가 끝나면 항상 재미에게 물었다. 영화 재미있어? 재미없어 ?! 재미없어 ? 재미 있는데 왜 재미없다고 하냐 ? 재미'는 성격이 좋아서 내 썰렁 개그에 대해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호탕하게 호, 호, 호 ! 나는 재미에게 사람 이름 가지고 노는 < 이름 개그 > 를 선보이고는 했다. 나름 교양 유머'라고 생각하는 이름-개그 가운데 하나가 " 허만 " 이었다. 성이 허 씨요, 이름이 만'이었다.

 

매우 평범한 이름이지만 병원이나 은행에 가면 빛이 난다. 창구 직원이 이름을 호명한다. " 험한(허만) 손님 ! 3번 창구로 나오세요.... " 졸지에 험한 손님이 된 허만은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단다. 이 글을 쓰다가 느닷없이 생각난 이름이 있다.  조은솜' 이다. 참말로 예쁜 이름인데 이름 다음에 氏를 붙이면 더 근사한 이름이 된다. 좋은 솜씨'군요 ? 내 성은 ● 씨인데 박 씨, 방 씨, 마 씨'만큼 촌스러운 성'이어서 아무리 예쁜 이름을 갖다붙여도 예쁜 이름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누이는 성이 쎄에에에에련된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고는 했다. 누나가 데리고 온 남자는 한 씨'였다. 최선은 아니었으나 차선에 만족했다. 누나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 이름에 골몰했다.

 

한아름 어때 ? 한하은, 한은혜, 한물결, 한겨레, 한숨결, 외자 이름도 근사하지. 한결 어떨까 ?  몸풀달이 다가와 친정집으로 온 누나는 어머니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시부모가 이미 아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항렬에 따른 돌림자를 쓰다 보니 태어날 조카 이름은 정식'이 되었다. 한, 정, 식 ! 누나는 식당 이름도 아니고 한정식이 뭐냐며 울었다. 결국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한연식이 되었지만 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누나는 친정에 올 때마다 두고두고 그 얘길 했다. " 아니, 그 많고 많은 예쁜 이름 중에 한정식이 뭐야. 한정식이..... 서 씨'였다면 서양식이 될 뻔했잖아 ! 이름대로 산다고 손주가 주방에서 땀 뻘뻘 흘리면 좋겠어 ? " 나는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고 했는데, 사촌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라고 누나를 위로했다.

 

내 사촌 이름은 첫째가 오세종대왕과 막내가 오창조의불'이다. 성이 오 씨고 이름이 세종대왕과 창조의불'이다. 하지만 오세종대왕은 세종대왕이 되지 못했다. 작문 실력도 형편 없다. 입시 교재를 여럿 저술했는데 공교롭게도 영어 교재'다.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름따라 사는 게 아니니, 내 아이 이름은 자유롭게 짓고 싶다. 氏와 함께 하면 근사한 딸기, 살구, 사과와 같은 과일 이름이나 덕분과 다행도 좋으리라. 사람들은 다행이를 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다행이네 ! " 수박씨에 대해 말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사실.... 미안한 소리이지만 이 글은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목적이 아니다. 씨 없는 수박에 대해 쓰려다가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고승덕 버전으로 " 미안하돠아~~ "

 

씨 없는 수박을 볼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너절한 존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배부른 소리이지만, 먹고 살 만하니깐 인간은 작은 불편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씨를 고르는 것도 귀찮아서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걸 보면 새삼 징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인간 편리한 대로 자연을 조작하면 안 된다. 씨 뱉는 게 얼마나 불편하다고 씨 없는 수박을 만드나. 그것은 달콤한 맛을 선사하는 수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 한번 묻힌 적 없는, 공주처럼 자라난 박근혜는 양손에 단물 묻혀가며 수박을 먹지는 않을 것 같다. ( 고상하니까 ! ) 더군다나 교양 없게 먹다 남은 씨를 함부로 뱉지도 않을 것 같다. 먹는다면 네모반듯하게 조각낸 씨 없는 수박 따위나 먹지 않을까 ?

 

수박씨는 쓸모없거나, 형편없거나, 볼품없거나,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씨를 잘 말려서 그늘 진 땅에 심으면 싹이 나온다. 박근혜는 먹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사회를 씨 없는 수박으로 개조하려고 한다. 그르지 마라 ! 이 세상 모든, 작고 사소한 것은 위대한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말년에 수박 정물을 자주 그렸다. 위 그림 제목은 << 삶이여, 영원하라 >> 이다. 나는 프리다 칼로의 수박 정물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수박씨'였다. 수박씨는 칼로의 트레이드마크인 눈물을 닮았다. 이 그림에서 수박씨가 빠진다면 아무 느낌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작명할 때 사람 이름으로 수박도 고려했는데 철회해야 할 것 같다. 수박 씨가 어른이 되서 결혼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애가 없다고 치자. 사람들은 수근대리라.

 

수박 씨, 씨 없는 수박이라며 ?

 

 

 

 

 

 

 

 

 

 

p.s 프라다 칼로 그림을 모방해서 그린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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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qur 2014-07-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네누나 얘기에 은근 찔리네염. 저도 씨가 귀찮아서 수박은 물론 참외도 안 먹거든요. 고상하니깐! 호호..
여튼 씨 없는 수박은 주로 맛이 없어서 더 싫고.. 제 스타일은 아예 안 먹는 스탈.
이 글에 대입하면 씨 없는 개한민국 되기 전에 탈출, 이민이 답이군요. 진짜 돈 많이 벌어야겠당..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4-07-08 18:44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수박 참외 잘 안 먹습니다. 손에 묻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 이거 모순적 발언이죠 ? ㅎㅎㅎㅎ ) 과일 자체를 싫어합니다. 유일하게 먹는 게 토마토인데 이 토마토도 익은 건 안 먹습니다. 안 익은 새파란 토마토만 먹습니다... ㅎㅎㅎ 지금 터앝에 토마토 심었는데 아니 이놈이 꽤 많이 열매를 맺었어요.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호기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