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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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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한병철님이 쓴 피로사회라는 책은 출간되자마자 독일사회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철학의 원산지 독일에서 한국에서 유학간 한 학자가 철학이라는 분야로 유명세를 떨쳤다는 것만으로 뉴스가 될 만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피로사회라는 문제점이 신자유주의의 극을 달리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라, 그나마 일과 삶이 균형을 맞추는 사회로 보이는 독일에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전 산업화의 시대와 현대 정보화의 시대를 면역학적 시대와 신경증적 시대로 병리학적으로 나누고 있고, 또한 주체적인 관점에서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로 나누고 있다. 이 두가지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부정성과 긍정성이다. 면역학이라는 학문은 자와 타를 구분하고, 이질적인 타자를 내치는 공격과 방어의 행동에 근거를 둔다. 그와 반면에 신경증적 시대에서는 그런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모호하다. 적대성이 사라지고, 긍정성이 부각되며, 노예와 주인의 구분도 모호해진다. 노예로 위치하였지만, 주인으로 또한 행사해야하는 사회가 바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성과사회이다.

이전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대량생산의 메커니즘은 공장기계화라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인간의 노동을 규격화하고 단순화시켰다. 이런 대량생산의 공정 속에는 작업시간과 규칙이 엄중하게 지켜져야했고 한 개인개인은 복종적 주체로서 행동해야 했다. 일명 도요타주의로 얘기되는 소량다품종을 목표로하는 공정은 이런 공장의 분위기를 크게 바꾸어 놓는다. 이제는 한 개인개인이 주체가 되어서 다음 공정을 예측해야 하고, 언제든지 생산라인이 유연성있게 바뀌어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각 노동자 한 명은 이제 규율에 따르는 복종주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최선의 결과를 내도록 자리매김지어진 성과 주체가 되었다.

언뜻 보면 올바른 시스템의 진화로 보이나,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로 환원시킨다. 예를 들면 한 사회의 실업률이 증가할 때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보다는 성과주체의 개인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많은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직업교육이나, 스펙쌓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 개인들에게는 무한한 능력을 쌓아서 무한한 성과를 거두고, 무한한 보상을 받도록 사회는 강요한다. 이 매력에 개인들은 자신들의 몸을 던지지만, 그 반대급부는 언젠가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의 자기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며, 그 두려움을 직시할 때 느껴지는 우울증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책에서 지적하는 긍정성의 과잉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깊은 심심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깊은 심심함의 상실은 사색의 부족을 가져오고, 오직 효용성과 성과에 의해 양적으로 매겨질 수 있는 부분에만 가치를 두게 한다. 효용성이 없는 가치에는 눈을 돌릴 틈 없이 달려가게 하는 성과사회는 겉으로 멋있을 수 있지만, 개인개인이 숨기고 있는 피로감은 증폭되어가고 언젠가는 큰 눈사태처럼 쌓여 사회적 차원에서 터뜨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마치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입시교육, 성과에 매달려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 그러면서도 성과가 없을 시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조기 퇴직 등.. 그래서 우울한 우등생이라는 별명이 붙은 한국사회를 잘 묘사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이제 유럽에서도 보이고 있다는 징조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피로사회가 점점 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긍정성의 과잉으로 점철된 피로한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한 번 고민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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