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거나 공연 실황을 볼 때 악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 안 해 보았다. 공연을 보거나 실황을 볼 때 보면대 위에 버젓이 놓여 있는 악보에 대해서도.
난 솔직히 말하면 그냥 '공구' 하는 줄 알았다. 지휘자가 출판사 정해주면 단원들이 알아서 구하는 줄.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됐을 때 책 소개 글을 읽고 약간 과장해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아, 그렇구나, 악보위원이란 직무가 있을 수 밖에 없구나. 서둘러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했고 드디어 읽었다.
악보는 공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임대를 한다. 그리고 악보위원이 하는 건 단순히 지휘자가 지정한 악보를 찾아서 빌려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론 찾아서 빌려오는 과정도 간단하지는 않다. 악보 버전도 여럿이거니와
출판사도 그렇고, 대여료와 각각의 저작권도 신경 써야 한다. '창작자(작곡가) 사후 70년'의 원칙이 대부분 적용되긴 하지만 출판사의 2차 저작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연권은 물론이고 혹시 방송을 하거나 실황을 유튜브 등에 게시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저작권 문제는 꽤나 복잡해진다.
악보를 구해서 실물을 손에 쥐었다고 끝이 아니다. 혹시 한번도 대여된
적이 없는 새 악보라면 중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철저히 검증해야 하고 새 악보가 아니라면 지난 흔적들 –
지난 연주자/지휘자의 해석 표기가 연필로 남아 있다고 한다 – 을 살펴 원래의 악보와 그 위에 덧입혀진 부분을 분석해야 하며, 지휘자가
총보를 보고 분석한 내용을 파트보에 옮기기도 해야 한다. 때로는 아예 조바꿈을 해서 새로 작성해야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연주 도중 페이지 넘기는 시간(4초)까지 고려해 악보를 편집해야 한다. 그야말로 악보위원이 일을 해내야
비로소 연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악보위원을 ‘librarian’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이 책에는 이렇게 일반 청중들이 몰랐던 악보위원의 일 자체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외에도 각
출판사별 특징과 구하기 힘든 악보들을 구하는 요령 등도 서술되어 있어 앞으로 악보위원이라는 직업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또한 유명 작곡가들, 유명한 곡들의 악보에 대한 이야기, 진은숙이나 정명훈, 조성진 등 유명 음악인들과의 일화, SM과의 협업, 서울 시향의 해외 투어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클래식에
관심이 없더라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 꽉 차 있다. 정말 ‘풍부하다’라는 표현이 기꺼운 책이다.
읽는 내내 너무나 재미있어서 책이 얇게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공연 한 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대 뒤에서 노력을 하는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막연히 오케스트라 운영실이나 무대 관리
등의 업무들을 떠올렸지만 실상은 훨씬 세분화되고 또 다양하리라. 이 모든 비하인드가 다 궁금해졌다. 무대 뒤의 다른 직업들을 가진 분들이 이런 책들을 많이 써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