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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

나와 남편은 밥 먹을 때 가끔씩 <독박투어>를 틀어둔다. 한동안 너무 바빠서 보지를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이집트 편부터 다시 정주행 중이다. 나는 2008년에 이집트를 다녀왔었고 남편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아 근데ㅋㅋㅋㅋ이 멤버들이 이집트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음식도 입맛에 안 맞는 것 같았고 사람한테도 약간 지친 것 같았다. 이집트를 인도랑 많이들 비교를 하는데 우리들 기준에서는 인도가 훨씬 순한 맛이다. 인도 사람들도 황당한 요구를 가끔 하기는 하지만 강하게 맞대응하면 금방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화면으로 느껴지는 이집트 사람들은 그것보단 좀더 매운 맛이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달까. 


그래도 독박 멤버들은 연예인이고 엄연히 방송을 위해 간 거니까 피라미드에서 가이드를 고용해서 편하게 여행했던데 나는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이집트 갔었을 때 피라미드에서 사기 안 당하려고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정작 피라미드 봤던 건 별로 기억에도 없고 누가 피라미드에서 어떤 사기를 당했다더라, 이런 얘기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 당시 피라미드 관람 수칙 1순위는 '낙타를 타지 말 것'이었다. 낙타는 생각보다 키가 크다. 일단 한 번 타면 주인이 낙타를 무릎 꿇리기 전까지는 절대 낙타에서 내릴 방법이 없다. 여성 여행자들이 낙타를 타면 그 뒤에 낙타 주인이 앉아 계속해서 더듬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내리기 직전에 돈을 따따블로 부른다는 거다. 만약에 그 가격을 거부하면 절대로 낙타에서 내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떤 한국인 여행자는 추가금을 거부하고 낙타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한국으로 귀국했다나. 아무튼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도시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으려나.


피라미드를 구경한 독박 멤버들은 그날 밤 16시간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가장 좋은 객실을 예약한 것 같은데 객실이 너무 별로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치앙마이-방콕 밤기차만큼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도 기차보다는 백배쯤 나은데. 아, 나는 왜 모든 이야기가 깔때기처럼 기승전 인도로 빠질까. 이건 인도보다 좋다, 저건 인도보다 별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인도라는 나라, 정말 뭘까ㅎㅎㅎ 


아무튼 그들은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에 도착했고 나도 아스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맞다. 아스완이 되게 별로였다ㅋㅋㅋ. 카이로는 시끄럽고 정신 없지만 재밌기라도 했지. 아스완은 그냥 별로였던 것 같다.


문제는 아스완의 나일강 보트 투어. <독박투어> 멤버들도 처음에만 좀 신나하다가 나중에는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호객 행위도 심하고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라 멤버들이 피곤해하는 게 느껴졌다. 아스완에서 누비안 빌리지로 가기 위해 보트 탈 때는 열심히 흥정을 하더니 돌아올 때는 '귀찮아. 그냥 그 돈 주고 타' 이러는 게 너무 웃겼다ㅋㅋㅋㅋ. 그 마음이 이해는 됐다. 화면으로 보는데도 우리도 약간 지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아스완에서 보트 탈 때 다른 의미로 짜증이 났었다. 나랑 내 동행(여자)은 좀 젠틀해보이는 중년 남성이 모는 보트에 탔는데 보트가 출발하자마자 아주 난리였다. '남편이 있냐, 남자친구 있냐, 내 몇 번째 부인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 끝도 없이 주절거려서 진짜 내리고 싶었는데 보트가 뭍에 닿을 때까지는 내릴 수도 없었다. 우리가 못 내린다는 걸 알고서 더 그러는 느낌이라 진짜 왕짜증.


이 방송 덕분에 나는 이집트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아스완이 정말 별로였던 것도 기억이 났고, 피라미드에서 낙타 타서는 안 되는 것도 기억이 났고, 무엇보다 카이로에서 만났던 여행객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집트에 갔었을 때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호텔이 딱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썬 호텔(Sun hotel)이고 하나는 이스마일리야 호텔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장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이스마일리야 호텔에 묵었다.(그 이름이 맞다면 말이다. 썬 호텔에서 묵지는 않았다.) 도미토리였는데 2층 침대가 아니라 큰 방에 싱글침대를 여러 개 놓아둔 방이었다. 엄청 저렴했었다. 


한국인 여행객이 몇 있었는데 우리는 매일 밤 호텔 공용 공간에 모여서 그날 어떤 수모를 겪었고 어떤 사기를 당했는지 토로했다. 아무리 말을 하고 또 해도 여행자들의 이야기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집트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냥 그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남미 여행하고 이집트로 넘어온 태권도 유단자,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육로로 여행하다가 이집트로 넘어온 사람, 아프리카 어디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는 사람 등등 재미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육로로 여행하다가 근처 나라에서 배 타고 이집트로 넘어왔다고 말한 분은 여자분이었는데 엄청 큰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런 여행은 응당 배낭을 메고 해야한다고 믿었는데 그 분은 가방이 너무 무거워졌다면서 가방을 버리고 큰 캐리어를 샀다고 했다. 본인은 너무 만족한다면서 캐리어 끌고 다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진짜 쿨했다. 어떤 분은(이분도 여자) 태권도 유단자인데 남미에서 칼 든 강도 만난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행히 싸우기 전에 그 강도가 놀라서 달아났다고 했다. 안 그랬으면 손에 든 스카프로 그 놈 목을 졸라버리려고 했다고. 너무 멋있었다. 아, 이집트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하시던 분도 계셨다. 아랍어 잘 하셨는데. 그 분도 여자였다. 나는 이때 정말 멋진 여성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이때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돈을 주고서라도 이때의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옆 그 호텔 공용 공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으리. 


저 예능을 보니까 이집트에 너무 가고싶어졌다. 문제는 돈과 시간. 우리는 만약에 이집트에 가게된다면 그냥 관광만 하고 오지는 않을 거다. 무조건 다합 가서 프리 다이빙을 할 거고 시와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가능하다면 터키까지도 돌아보고 싶다. 그러려면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인생이 그런 건가? 그래서 여태까지 이집트는 마음 속 여행지 순위에서 미뤄두고만 있었다. 그런데 독박투어 보니까 이집트 너무 가고싶네. 우리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않고 반 정도 훼까닥 미친다면 올겨울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집트.


나는 남편에게 내가 만약 이집트에 가면 상형문자를 읽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리고 저건 상형문자가 아니라 '성체자'라고 불러야 하며 저 문자는 소리 글자로서의 기능도 했다고 아는척까지 했다. 이건 다 <신의 기록> 덕분이다. 이 책 진짜진짜 재밌어서 두 번 읽었는데 한 번쯤 더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이걸 읽으면 이집트 문자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헛된 망상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집트 성체자란 말이야, 누가 해석을 했냐면 말이야, 로제타 스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말이지, 이러면서 아는척을 엄청나게 할 수 있게 된다. 전자책을 사놨으니까 만약 진짜 이집트에 가게 된다면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조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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