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몇 장 남은 부분을 마저 읽다. 발끝만 보고 달리다. 숲길과 비포장도로를 수시로 그것도 지나치게 천천히 달린다. 아베베로부터 마라톤의 훈련은 군조직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었다는 사실들도 알게된다.
서울마라톤 중계가 시간이 되어도 나오질 않는다. 엘리트 선수들 10여명이 달리는 35km 지점이 되어서야 방송이라니 좀 거시기하다. 지난 주말 지인들과 수다, 그리고 금산 5k를 달리고 내려온 길이라 허한 느낌이 뭉쳐있기도 한 주말 아침은 그래도 마라톤을 시청하는 옆 원룸의 티브이 소리로 왁자시끌하다.
에디오피아 선수들이 10여명에서 한 두명이 빠지며 5-6명으로 좁혀진다. 오천미터 선수가 있다는 해설위원의 설명과 함께, 부상인지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으로 뛰는 최장신 선수까지 1-2k를 남겨두고 그야말로 도아니면 모인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오천미터 선수였던 친구가 치고 나간다. 하지만 그룹 제일 뒤편에 있던 작년 우승자는 보란 듯이 이 삼백미터를 남기고 거침없다. 누가 마라톤 선수라고 하겠는가?
그 뒤에 국내 남녀선수, 엘리트 선수들 뒷 모습엔 235-240주자들의 물결엔 아연 실색할 정도다. 저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마스터즈의 30대의 약진 뒤에는 40대의 물결이 스며있다는 걸 알게된다. 서브 3는 이제 옛말인듯, 새로운 러닝문화의 전환을 보는 것 같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도 말하듯이 그 배경에는 506070대의 저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확인하는 듯싶다. 신행철, 최진수 등등 일상을 딛고 버티고 나가는 거인들로부터 이 흐름들은 이어지고 급류로 변해왔다는 걸 알게된다.
볕뉘
1.
아마추어와 엘리트. 엘리트의 구조와 차이에 대해서는 면밀히 살펴본 바가 없어 잘 모르겠다. 다만 육상연맹의 운영틀이나 선수 발굴 육성 등등 짚어볼 부분이 많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된다. 인류학자이자 마라토너가 에디오피아 선수들과 15개월을 함께 훈련해나가고 조사하는 방식들에 대한 지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이렇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저력들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살펴보는 것들이 우선은 아닐까.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자기 분야의 경계는 지극히 좁다. 남녀 모두 세계 100위의 선수 가운데 절반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 저편의 맨발의 나라가 아니다. 우승자의 소감처럼 여기 한국이 3년전부터 모국처럼 포근하고 뭔가 될 듯한 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2.
금산 마라톤에 온 영조형처럼 일반인과 엘리트의 사이에 쓴소리와 함께 뭔가 문제인지 다른 시각들이 난무해야할 때는 아닌가. 엘리트 마라톤을 아끼는 러너의 한명으로 소감을 남겨본다.
3.
삼십분 전에 도착해 워밍업을 하고 5k 달리기를 치고 나간다. 다행히 앞에 달려나가는 선수들이 보인다 싶다. 그렇게 스무명 정도에서 달려보지만, 더 빨리 달릴 수는 없다. 그제 모임을 핑계되어보지만 아니다 싶다. 그래 필요한 게 있다.
4.
그래 인문학이야. 우리가 부족한 건. 여기서부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