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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ly, Madly, Deeply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수줍고 차분한 목소리. 누구니? 선생님, 저 ○○이에요. 아, 그래그래. S구나. 잘 있었어? 오랜만이다. 이제 네가 몇 학년이지? 선생님, 저 고3이에요...

 

그렇다. 코로나의 정점을 지나던 즈음, 전근 온 지금 이 학교에서 처음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이 그새 고3이 되었다. 몸집보다 조금씩 큰 교복을 입고 동그마니 앉아 있던 귀여운 중학교 새내기들이 대입 수시 원서 마감 중인 것이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시시때때로 전원 귀가조치 방송이 나오던 그 무렵에도, 우리는 마니또를 하고 벼룩시장을 열고 연극을 하고 소소한 기념일들을 자축하며 성실히 친해졌다. 마스크를 쓴 채, 서로의 입모양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새 학교에서의 첫해를 무탈히 보냈었다.

 

그 사이 세월은 흘러 올해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근무다. 햇수만으로 보면 사실 지난해 떠났어야 맞지만 나에게, 내 주변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S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움과 회한, 속절없음이 복잡하게 스친다.

 

주님의 뜻과 달리 견제와 경쟁이 난무하는 미션스쿨에서 S는 나름 괜찮은 성적으로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에 원서를 넣은 상태였다. 소위 우주상향은 아닌 듯한데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숏컷에 무쌍, 스팽글이 달린 까만 점퍼... 손재주가 좋아서 각종 행사 때마다 재능발휘를 하던 깜찍하고 개성 넘치던 소녀였는데, 그 유니크한 당당함을 좋아했는데, 대학 입시 앞에서는 그저 여느 여고생들과 하등 다를 게 없었다. 얼마나 두렵고 쓸쓸했으면 수년 전 담임을 소환했을까 싶어 빨래를 개다 말고 내가 가진 모든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영어 시간에 관계대명사보다는 관계 맺기에 더 열중했던 그 시기가 아스라할 지경이지만, 마스크가 헐거워질 때까지 즐겁게 썰을 풀던 때가 있긴 했나 싶을 만큼 우리의 대화는 성적, 대입, 망해가는 교육 현실 등으로 우울하게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고1인 내 딸을 위해 참고할 만한 정보는 없을까 싶어 S가 제공하는 정보에 귀 기울이는 나 자신을 보라...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중3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라고, 정말 많이 준비해서 와야 한다고 조언하는 S는 이미 내 기억 속, 장난스런 눈빛을 반짝이던 그 사춘기 소녀가 아니었다. 저는 똑같은 건 싫어요, 라고 말하던 그 당찬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여전히 문과라서 황송하고 의치한약수반도체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행복은 연봉 순이 아니라고 설파하곤 하지만, 이미 세상 다 산듯한 얼굴로 나를 생경하게 바라보는 중학생들도 적지 않다.

 

나는 S에게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입시의 끝을 뜻하는지, 이 시절의 끝을 뜻하는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해주고 싶다. 똑같은 것은 싫다던 네가 어느새 남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때의 네가 사라진 것은 아닐 거라고. 대학 간판이나 연봉이나 스펙으로 설명되지 않는 너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조금만 더 가자. 그리고 다 가고 나면 잠시 멈춰 서서, 그때의 너를 다시 만나면 좋겠다. 마스크 너머로 눈빛을 주고받던 그해의 아이들과, 아직도 세상이 정해놓은 답을 믿지 못하는 나와, 어쩌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S에게. We’re almost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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