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1>
주인집 작은형은 스물일곱에 죽었다
스물일곱 해를 골방에서 살았다
볕을 쬐면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형이 몸을 흔들면 머리카락과 피부딱지가
우수수, 쏟아지곤 했다
형은 언제나 작은 빗자루와 쓰레기를 가지고 다녔다
형은 자기가 지나친 자리를
천천히 감추는 그림자였다
황사가 곱게 내려앉은 어느 봄날,
형은 지상에서 제 몸을 거둬갔다
오후 두시에서 여섯시까지
옷을 걸기 위해 박아넣은 대못 아래서
형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집안에 내려앉은 먼지는 대개
사람의 죽은 피부조각이다
형은 드디어 대낮에도
안방과 건넌방과 마당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28~29쪽
<벗어둔 외투>
내게서 생겨난 이 늘어진 주름은 길이다
접히는 곳마다 생겨난 그 길을 나는
척도 260으로 걸어왔는데
지금 이 육탈(肉脫), 이 빈집,
나는 매장을 원치 않으며 불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때리는 손이며 맞는 뺨이다* 나는 내가 앙상하다
나는 다른 옷을 입고 싶다
이 얇은 피부 안에도
다음과 같은 글은 적혀 있을 것이다
물빨래는 삼가고 그늘에서 말린 후에
60도 이하에서 다림질할 것
* 보들레르의 시 '자기 자신을 벌하는 사람'에서-113쪽
<방광에 고인 그리움>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산 302번지
우리 집은 십이지장쯤 되는 곳에 있었지
저녁이면 어머니는 소화되지 않은 채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귀가하곤 했네
당신 몸만한 화장품 가방을
끌고, 새까맣게 탄 게
쓸개즙을 뒤집어 쓴 거 같았네
야채나 생선을 실은 트럭은 창신동 지나
명신초등학교 쪽으로만 넘어왔지
식도가 너무 좁고 가팔랐기 때문이네
동네에서 제일 위엄 있고 무서운 집은
관 짜는 집,
시커먼 벽돌 덩어리가 위암 같았네
거기 들어가면 끝장이라네
소장과 대장은 얘기할 수도 없지
딱딱해진 덩어리는 쓰레기차가 치워갔지만
물큰한 것들은 넓은 마당에 흘러들었네
넓은 마당은 방광과 같아서
터질 듯 못 견딜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짐을 이고지고 한꺼번에 그곳을
떠나곤 했던 것이네 -120~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