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저명한 지식인이자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의 소설론 <실험소설 외>(책세상, 2007)가 출간됐다. 표제작을 따라 '실험소설론'이라고도 많이 알려진 그의 '자연주의' 소설론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소개에 따르면 "총 8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첫 번째 글 '실험소설'은 졸라가 주창한 자연주의 소설 이론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어서 '현실 감각'이란 제목의 글은 작가의 기본 자질에 대해 역설하며, '묘사에 대하여'에서는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환경 묘사를 강조한다. '사실주의'는 자연주의자 졸라의 문학 이론을 보완하는 글이다."
역자는 국내에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 졸라 전공자 유기환 교수이고, 이미 드레퓌스 사건의 기폭제가 됐던 <나는 고발한다>(책세상, 2005)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내가 아는 또다른 졸라 전공자는 원로 불문학자인 정명환 선생으로 <졸라와 자연주의>(민음사, 1982)란 저작이 있다. 염상섭과 졸라를 비교하는 평문 등을 쓰기도 했다(일견 서로 모순돼 보이는 자연주의자 졸라와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졸라의 책은 지난주에 구내서점에서 나온 걸 확인하고 아직 구입하지는 않았는데, 주말의 언론리뷰에서 너무 소략하게 다루어진 감이 있어서(문고본이기도 하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 드물게도 이 책에 주목한 한겨레 고명섭 기자의 소개를 잠시 옮겨오면:
졸라가 말하는 실험소설을 난해한 현대소설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문학에서의 상징주의나 심리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졸라의 실험소설론은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이라는 의학서의 결정적인 영향 아래 입안된 것으로 자연과학적 접근을 커다란 특징으로 한다. ‘과학적 실험을 수단으로 해서 일정한 유전 조건과 환경 속에 놓인 인간의 운명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실험소설의 핵심이 된다. “실험소설은 추상적 인간, 형이상학적 인간의 연구를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르고 환경의 영향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적 인간의 연구로 대체한다.”(37쪽)
졸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일정한 조건 아래 놓으면 그들의 향후 반응과 행동, 운명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무생물을 다루는 화학자와 물리학자, 생물을 다루는 생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작가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써 살아 있는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사적 상식으로 '자연주의'란 (쇼핑몰 이름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이 유전과 환경이라는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작가적 세계관과 창작방법론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영국의 토마스 하디, 그리고 프랑스의 에밀 졸라(이미지는 마네가 그린 초상화 1868)와 기 드 모파상 등이 있고, 드라마작가로는 헨릭 입센이 자연주의의 거장이다. 그 정도의 상식을 갖고서 졸라를 검색해보면 빈곤한 리스트에 좀 실망하게 된다.
당대의 벽화를 꿈꾼 그의 필생의 대작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목로주점>이나 <나나> 같은 대표작 정도만 중복 번역돼 있으며 <제르미날> 등을 포함하여 몇몇 더 소개된 작품들 대부분은 품절이거나 이미 절판된 상태이다. 새삼스럽진 않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닌 것이다.
개인적으론 에밀 졸라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목로주점>이고, 르네 클레망의 영화 <목로주점>(1956)이다(영화의 원제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제르베즈>이다). "1850년 파리의 뒷골목 사업에 실패하고 술독에 빠진 남편 때문에 가난에 찌들리며 살아가는 여인의 슬픈 삶을 그린 멜로물"인데. 억척스런 연기를 펼치던 마리아 쉘(1926-2005)이 기억에 남는다. 찾아보니 이 영화로 당시 영화제의 연기상들을 휩쓸었었군. 하지만, 그녀의 시대도 이미 떠나버렸다...
07. 0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