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바벨의 도서관
 

산이 일곱 가지 빛깔로 물들 때


                                허만하



가을 산이 일곱 가지 빛깔로 물들 때

숲은 능선에서 펄펄 날고 있는

낙타색 바람을 생각한다

우리의 무지개는 언제나 일곱 가지 색이지만

영어권 무지개는 여섯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그들 말이 잃어버린 한 가지 색은 슬프다

이승에 태어나지 못한 한 빛깔의 행방을

가로등 불빛을 적시는 는개는 모른다

한 해 내내 눈바람 흩날리고

얼음덩이 표류하는 지대가 지상에 있듯

슬프다는 말이 없는 언어를 가진

종족이 지구별 어디엔가 있다고 한다

슬픔을 모르는 정신이 있다는 사실이

낯선 도시 젖은 별빛보다 슬프다

피아골 물소리가 일곱 가지 빛깔로 물들 때

숲은 서리 내린 겨울 들녘 새벽을 생각한다

한겨울에 싱싱한 물이 오르는 실가지 끝

천을 헤아리는 싹과 같은 숫자의 잎이 피지만

낙엽은 벌써 같은 수의 목숨을 잊고 있다

이제 우리는 숲을 생각해야 할 때다

지는 잎이 기름진 부식토 윤기를 머금고 있는

직박구리 은빛 지저귐이 앞뒤에서 날고

바람에서 진초록 풀숲 냄새 물씬거리는

원시의 숲을 생각할 때다

지구에 최초의 인간이 출현하기 이전의

야생의 숲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