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손을 찬양하다
  • 헤수스 카라스코
  • 16,200원 (10%900)
  • 2026-04-22
  • :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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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수스 카라스코는 1972년 스페인의 에스트레마두라 주의 가장 큰 도시 바다호스 시 아래 올리벤사에서 태어났다. 카라스코가 쓴 책에 의하면 올리벤사가 시골지역이어서 본인도 어린 시절에 닭한테 모이를 준다든지, 짚을 나르는 일 등의 농사일을 도운 기억이 남았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청년이 되어 체육교사, 포도 수확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2년에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최종적으로 작가라는 직업에 정착한 것 같다. 2005년에,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처럼 세비아로 이주하여 적어도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는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 정보에는 이이의 세번째 책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손을 찬양하다>는 네번째 책으로 2024년 2월에 스페인의 유수 문학상이라는 비블리오테카 브레베 상을 받았다고 책갈피에 쓰여 있다. 비블리오테카? 흠. 어감이, 비블리오 패혈증하고 비슷해서 어찌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책가게 알라딘이 하도 오랫동안 이 책이 나하고 맞을 것 같다고 추천을 거듭하는 바람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도서관 자체에서 구입 예정이 있다고 반려되었던 책이다. 근데 시내 다른 도서관에 먼저 들어와 상호대차 신청해서 먼저 읽고 반납하려니 동네 도서관 신간코너에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헤수스 카라스코


  독후감 본문을 쓰기 전에 미리 밝힐 것이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2010년 경부터 거의 10년간 버려진 집을 그의 처남 후안루와 함께 수리, 보수하면서 일종의 별장 겸 셸터 비슷하게 사용한 기록이라는 점. 화자 ‘나’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누구나 헤수스 카라스코 본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고, 아내 아나이스, 두 딸 마리와, 알투디투에서 베르타로 개명하는 둘째 딸의 이름 모두 가명이라. 아내와 아이들은 카라스코가 쓰는 소설 <손을 찬양하다>에 나오는 것은 동의했지만 진짜 이름을 밝히는 건 반대하여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손위 처남 후안루 역시 가명일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출연진, 출연하지는 않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름을 밝혀야 하는 배역 모두 가명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초두에 밝힌다. 자기 기억에 의하여 쓴 작품이기는 하나, 기억은 언제나 왜곡되어 변형되는 것이라서 50퍼센트 정도만 사실일 것이고 나머지 반은 사실 부근에 있거나 자기가 잘못 들은 내용일 수 있다는 거.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은 스토리에 적당하게 자신이 창작해 넣었다는 것도 고백했다.

  소설 초입에 쓰인 여기까지 내용을 읽자마자 책을 탁, 덮었어야 마땅했는데, 이틀씩이나 소비해가며 꾸역꾸역 다 읽은 게 아까운 생각이 밀려든다.

  작가는 무지하게 낡은 집, 거의 10년 이상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을 처남 후안루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감당하기 벅찬 수선이나 공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수선공, 베관공, 전기공 등 업자를 고용해 직접 자기들 손으로 살기 편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나마 불편하지는 않게 살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자존감, 만족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직접 자기 손으로 못을 펴고 나무 판자 위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망치, 아마도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써온 망치를 두드려 나무와 나무, 나무와 벽을 고정시키는 일을 한다. 크고 무거운 용접기와 전압, 볼트가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용접기만큼 무거운 변압기까지 가져와야 하는 불편 속에서도 생전 처음 해보는 용접으로 철판에 구멍을 숭숭 내기는 하지만 하여간 햇빛 가리개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돌보는 이 없어 굵어지기만 하고 열매를 매달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를 직접 쳐준 다음 해부터는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포도나무 아래에 테이블을 가져와 책도 읽고, 노트북을 올려 자판 두드리는 일, 작업도 할 수 있고,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줄 수도 있고, 음식도 만들 수 있게 했다.

  허벅지까지 빽빽하던 잡초도 모두 손과 삽, 호미 같은 것을 사용하여 다 제거한 후에 목적상 필요한 화초를 심어 그럴듯하지는 않지만 보기 괜찮은 정원 비슷한 것을 만들어 딸들에게 라틴어 학명을 가르쳐주고 학명을 외웠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지만 그런 일은 아주 가끔만 일어나는 일이고, 기억하는 시간도 극히 짧은 것 같다.

  이렇게 지금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전업 작가가 되었어도 땅과 가축과 집이라는 흙, 나무, 철제,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가설체를 직접 손을 사용하여 계속 인간이 살 수 있는 안식처, 쉼터, 그것도 아니라면 자연의 공습을 막아낼 수 있는 피난처 정도로는 만들어가는 일, 그걸 찬양하는 이야기이다.


  2010년에 화자의 아내 아나이스의 오빠 후안루는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친구 이그나시오와 함께 말라가 해변 앞바다에서 세비야까지 항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파도가 거칠어져 요트 주인 이그나시오가 항해 중단을 선언하고 인근 정박지로 배를 끌고 가 묶었던 모양. 거기서 차를 빌어 세비야로 가려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오래 전에 투자목적으로 매입해둔 집이 있으니 불편하나마 그곳에서 하루 밤을 지새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깜깜한 밤에 처음 도착한 곳. 오래된 집과 인접한 36헥타아르 넓이의 초지. 이그나시오가 공격적 투자를 감행해 휴가용 아파트와 초지 안에 고급 방갈로를 몇 채 지으려 했다가, 두 해 전인 2008년에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져 계획을 무기 연기해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다고. 후안루는 프로젝트가 중단된 동안만 자신이 집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집이란 것이 사람이 살지 않으면 빠르게 폭삭 무너지는 것이라 이그나시오도 흔쾌하게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우리’ 즉 화자와 아내 아나이스와, 마리와 처음엔 알투디투였다가 베르타가 될 두 딸도 꽤 오랜 세월 주말마다 부모를 따라 넓은 초지와 낡은 집에서 마치 시골 소녀처럼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자는 곧바로 책을 한 권 구상한다. 주제는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책.”


  집이 있으면, 아무리 외딴 집이라 하더라도 이웃이 생긴다. 이 집이 길의 제일 끝까지 가야 바라보이는 막다른 집이고 곧바로 초지와 산으로 연결되는 외진 곳이지만 딱 이들끼리만 살 수는 없는 법. 첫 날에 한 남자가 고삐를 쥐고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간다. 별명이 우스바르나라고 하는데, 머리부터 목까지 죽 이어진 주름진 큰 상처가 흉하게 아문 모습 때문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보물선>에 출연하는 선장 빌리 본즈를 닮아 본즈라고 불릴 예정이다. 어딘지 모르게 매혹적인 본즈는 주로 말과 나귀 같은 큰 동물 전문으로 코르크 나무의 껍질 벗기는 일을 하다 전기톱 사고로 경정맥이 절단된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본즈의 아버지가 끝까지 훌륭하게 지혈을 해주어 목숨을 건진 사나이이다. 이이는 십년 후, 낡은 집이 결국 부동산 업자에 의하여 개발될 때까지 이 가족들과 긴 인연을 이어간다.

  또 옆집에는 할머니 라파엘라, 할아버지 마누엘 부부가 살면서 온화하고 정 많고, 부드럽지만 서로의 자유와 개인생활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한 8년 정도 지나면 친절한 라파엘라 할머니는 세상을 뜰 예정이지만 화자의 가족들은 세월이 지나도 이 노부부와의 인연을 잊지 못할 듯. 이렇게 사는 이야기.


  작품의 주제가 엄연히 “손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독자 내가 해본 세상 살면서 제일 아름답고, 중요하고, 조심스러우며 행복했던 손으로 하는 일은, “자는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이었다. 두번째가 웬수 같은 아내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더듬는 일이었으며, 세번째 역시 아내의 몸을 만지는 일이었다. 이 세가지는 나 혼자 살면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할, 제일 중요한 작은 공동체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작고, 작고, 작지만 가장 행복한 일이었으리.

  손과 도구와 널린 재료를 써서 가족의 피난처, 휴식처, 놀이터를 만들고, 이웃과 관계를 구축하며, 함께 살 다른 생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찌 손을 찬양하는 항목에 아이의 손톱을 잘라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만지는, 하다못해 샤워하는 배우자의 욕실에 들어가 등을 밀어주는 행위가 빠졌는지, 나는 많이 아쉬웠다. 물론 책을 일정분량 이상으로 뽑기 위하여 픽션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수다한 수다를 읽어주는 것도 예상 외로 지루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종의 지식, 경험을 이용해 경구를 만들려 애쓰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아서, 그것도 여기저기에 자주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이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할까? 숱하게 의심을 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그래도 결국 화자가 둘이나 되는 딸아이의 손톱을 깎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하는 일이라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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