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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칠레 산티아고의 가난한 변두리에서 제빵사 페드로 마르도네스와 비올레타 레메벨 사이의 아들로 난 페드로 세군도 마드로네스 레메벨은, 칠레의 작가, 연대기 작가, 행위예술가 또는 간단히 연기자, LGBTQ+ 운동가로 알려져 있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이이의 나이 30대 중후반의 한 시절, 아버지의 성인 마드로네스를 버리고 어머니의 성 레메벨을 자기 이름으로 선택했으니, 이것은 자신이 남성이기는 하되 성정체성 상 여성성을 좇는 성향을 따른 결정이었다고. 즉 몸은 남성이되 여성, 이 책의 주인공 ‘로카’처럼 ‘앞집 미친년’처럼 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다.
대개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는 시기가 2차 성징이 발현되는 때라고 한다. 스페인어 판 위키피디아에는 나오지 않는데, 영어판 위키를 보면, 산티아고 산업대학 부설 교육기관에서 적성하고 무지하게 맞지 않는 금속가공을 일컫는 단조와 목공 가구를 배울 때 드러나기 시작한 성 정체성 때문에 작지 않은 고생을 했을 것 같다. 기능을 포기하고 정규 고등학교로 옮겨 하여튼 고교 졸업장은 땄다.
이후 1970년에 칠레대학교 부설 교육학연구소에 입학해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78년에 졸업, 79년부터 산티아고 외곽 두 개의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4년 동안 지나다가, 1980년대 초반 가톨릭 국가의 교육자들이 남자 동성애 가운데 충실한 바텀이었던 레메벨의 외모를 트집잡아 두 학교 모두에서 해고당하고 다시는 교육계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그리고는 문학 워크숍 등 예술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름도 레메벨로 바꾸고. 울고 싶은데 학교가 대신 따귀 한 대 때려준 거겠지.
이때부터 레메벨은 본격적으로 문화 사업에 뛰어든다. 글도 쓰고, 공연도 하고, 글과 공연을 위한 집단에도 참여하며, 짙은 화장과 여장을 하고 다닌 것처럼 보인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내 추측이다. 믿지는 마시라. 이이가 지지하는 좌파 집단 속에서도 “좌파 정치권 내 동성애를 혐오, 비판하는 세력”을 향한 선언문, “Manifest, I Speak for My Difference”를 이야기했다고 칠레판 위키에 나온다.
이이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때가 1980년대 중반. 당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정치가 말기를 향해 가던 시기로 레메벨 역시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확실히 공산주의자에 가깝지만,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 분위기에서는 성소수자를 반기지 않았던지, 공산당에 가입은 하지 않은, 이른바 정치적 프리랜서. 이러저러한 여러 활동을 했음에도 이이의 첫 소설 작품이 나온 시점이, 이미 피노체트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10년이 지나버린 2001년에 출간한 <두려워요, 투우사여>이다. 1986년 9월에 있었던 피오체트 암살 미수 사건을 앞뒤로 40대 여장 게이와 20대 남성 대학생 사이의 연애 혹은 사랑, 아니면 오해. 즉 40대 게이 ‘앞집 미친년’ 로카는 틀림없이 스무 살 잘 생긴 남자 대학생 카를로스를 사랑해서 무엇이든지 그가 원하기만 하면 할 수 있지만, 카를로스가 정말로 로카를 사랑했는지, 그저 이용만 하려다가 인정에 끌려 (사랑은 아니지만 그것과 가까운)좋은 감정까지 갔던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무대는 산티아고의 보통 시민이 모여 사는 살림집, 1986년 봄. 남반구 칠레에서 봄이라고 함은 8월 말부터 9월을 건너 10월까지. 작품에서 콕 짚으면 9월초이다. 작중 주인공, 별호를 “앞집 미친년”이라 하는 마흔 언저리 늙은 게이 로카는 이 건물의 3층과 비둘기집 같은 다락방에 산다. 당연히 혼자 살기에 넉넉한 3층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살며, 다락방에는 빨래를 널 수 있는 난간 하나만 덜렁 달려 있다. 며칠 후부터 이 다락방이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처음엔 전혀 몰랐다.
우리의 늙은 게이 로카. 아버지는 로카더러, 물론 진짜 이름은 로카가 아니었지만, 하여튼 엄마가 아버지를 벌주려고 남기고 간 게이 골칫덩이라고 했다. 여차하여 마음에 조금만 안 들어도 ‘사내답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두드려 팼고, 다른 아이들과 억지로 싸움을 붙였다. 학교에서도 로카한테 신경정신과 적으로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아버지더러 좀 오라고 했지만, 그는 콧방퀴만 뀔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군대만 가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하면서.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입대절차를 밟았다. 그래서 군대에 갔느냐고? 아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거길 어떻게 가. 그냥 집에서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산티아고로 흘러 들어왔다. 수도에서의 삶은 여느 다른 나라의 큰 도시에서 사는 외톨이 게이들의 것과 다르지 않아 주로 몸을 팔아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했는데, 정말로 운이 좋아 당시 벌써 나이가 많아 뒷방을 차지하고 앉은 흑인 게이 라나의 눈에 띄어 같은 집에 살았다. 여기서 라나한테 손수건, 식탁보, 침대보, 슬립, 리본 등에 자수를 넣은 법을 배우기 시작해 실력이 일취월장, 라나의 비싼 손님이 저절로 로카한테 주문을 넣게 되기에 이른다. 둘의 사이 역시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사달이 나 폭발했으며, 얻어 터지고 걷어 채이고, 발로 밟히는 폭행을 당한 로카는 독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사건 하나로 엄마나 다름없는 라나와 완전히 척이 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교통을 하면서도 예전 같은 사이로 회복하지는 못했다. 지금 로카는 막강한 군부 실력자의 아내로부터 식탁보, 침대보 같이 비싸고, 화려한 자수를 주문 받아 적어도 전혀 팍팍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로카에게 남은 건 추억들. 지나간 연인들과,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하던 드래퀸 쇼, 노랗고 커다란 모자, 그리고 고양이 눈 같은 선글래스.
전문 자수 디자이너. 앞집 미친년 로카의 직업이다. 대통령궁하고는 거래하지 않지만 대통령을 직접 초대하여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열 수 있는 장군의 아내들이 수공 요금을 한 푼도 깎지 않고 비싼 가격으로 주문을 하는 침모. 침모針母? 아무리 보수적인 칠레공화국이라 해도1980년대에 침모? 말이 그렇다는 거다. 장군의 아내들은 남편의 직급보다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인간 취급을 안 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은 안 그러리라고 믿지만. 그래서 비록 많은 돈을 받아 마음은 넉넉하지만 식탁보나 침대보를 납품하러 갈 때는 정문으로 가지 못하고 부엌문으로 출입을 해야 했으며, 미리 시간 약속을 하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만일 납품하러 간 시간에 손님이 와 있으면 몇 시간이 되든지 그 손님 갈 때까지는 하는 일 없어 부엌에서 말라빠진 빵 쪼가리를 얻어 씹으며 멍때려야 한다. 그러니 침모지 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여장 게이라면 그게 정말 사람으로 보이긴 했겠어?
사람은 누구나 외롭지. 장군의 아내도 알고 보면 외로울 거고, 현직 내부무장관도 외로울 거야. 10대 초중반에 집에서 뛰쳐나와 하늘 아래 찾을 피붙이 하나 없는 여장 게이는 이 중에서도 제일 외로운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을 듯. 그런데 하필이면 시절도 잘 못 만나, 86년 봄, 피노체트가 아옌데를 사살하고 사실상 권력을 잡은 1973년 9월의 쿠데타가 있는지 어언 13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칠레의 지리적 상황, 안데스 산맥을 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망명할 수 있는 길고 긴 국경선을 지닌 나라답게, 벌써 학생운동은 물론이고 피노체트 암살과 내전 발발 등 폭력 행위를 위하여 정규군만큼은 아니지만 무장도 갖추기에 이르렀다. 도시는 날마다 시위와, 삐라와, 방화와 정전, 화염병, 최루탄, 물대포, 기타 등등 1980년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것으로 더할 나위없이 흉흉했다.
이런 정치상황에 전혀 관계없이 지나간 옛노래를 즐기는, 사실상 무명씨들. 이 가운데 최고의 무명씨들 가운데 게이, 이중에도 짙게 화장하고 드레스와 하이힐을 하고 다니는 여장 게이가 있었다. 앞집 미친년 로카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식탁보에 화려한 수를 놓다가 해가 저물기 시작해 눈이 침침해지면 즐거이 동네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지방 토속주나 가벼운 칵테일 같은 걸 즐겼겠지. 늘 그렇듯이 이미 익숙한 바텐더와 동료들. 원래 앞집 미친년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오랜 세월동안 그래도 정이 생겨 더 없이 친근해진 단골 사내들. 아무리 남자에 환장한 여장 게이일지언정, 이들의 몸을 탐해본 적 없는 로카. 그러니 더 친해질 여유가 있었을 터.
하지만 두 달 전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미남자. 카를로스. 로카와 카를로스는 급격하게 친해진다. 물론 카를로스는 안다. 로카가 게이임을. 그래도 로카에게 착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다. 그리하여 그녀 로카는 사랑에 빠져 버렸고,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사랑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카를로스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이후부터 카를로스는 로카의 다락방에 자기 짐, 종이 상자. 판매금지 서적을 말한다는 정도는 로카도 알아듣는 금서들, 순문학 작품이지만 가지고 있다가 걸리면 골치 아픈 책들을 담은 박스를 몇 개 가져다 두는데 동의한다. 로카는 상자 안에 무엇이, 어떤 책이 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는 것을 이해할 나이라서. 그런데 박스가 나날이 늘어나, 어떻게 보관할까 궁리하다가, 침대 머리맡에 놓고 보를 씌워 협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박스와 박스 위에 널빤지를 대 선반으로 쓰기도 한다. 앞집 미친년 로카가 살림하나는 끝내준다. 그런가보다 했더니, 이젠 통행금지 시간 넘어 학교 친구라는 젊은이들이 우그르르 다락방에 몰려 들어가 밤새도록 공부라는 것도 한다. 로카는 아예 누가 왔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관을 해달라고 가져온 것이 무섭게 생긴 원통형 금속 파이프. 굉장히 가치가 있는 수기 원고 두루마리란다. 뭐 그런가보지.
드디어 다가온 1986년 9월 7일.
피노체트가 휴가지에서 어떤 코스를 택해 산티아고로 진입할 계획인지 미리 알아낸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의 도시 게릴라들은 좁은 도로를 막고 대통령 피노체트와 호송 차량들을 향해 총과 포격을 가한다. 선도차는 포탄을 맞아 길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피노체트가 탄 메르세데스는 노련한 운전수의 기술 덕에 좁은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후진하다가 놀라운 솜씨로 360도 회전,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피노체트의 몸에 기스 하나 생기지 않게 만든다. 비록 바지 속에 똥을 싸질렀을지언정.
이제 사태는 심각해진다. 카를로스가 애초에 그의 본명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던 앞집 미친년 로카는, 뭔가가 들어 있던 종이박스를 9월 7일이 되기 며칠 전에 모두 가져 나갔으며, 금속제 원통도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전부 자기한테는 매우 위험해지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
정말 그럴까? 그냥 카를로스를 사랑해 그가 안전하기만 하면 나는 그대로 앞집 미친년으로 나머지 인생을 조용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하자. 곧바로 결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1990년에 다가올 피노체트의 하야와 반정부 민주화 운동의 과정 때문이 아니라, 앞집 미친년 로카의 대사.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엽기발랄하면서, 쓸쓸하고, 체념적이면서도 희망도 얼핏 보이고, 무엇보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눈물겨운 마음 저림이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어엿하게 심리 소설이며, 상실을 극복하려는 늙은 여장 게이의 독특한 희생에 대한 송가다.
잘 읽었다. 책 읽는 재미에 홀딱 빠지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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