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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인 이렌 네미롭스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을 듯. 다만 아우슈비츠에서 이이의 영혼이 굴뚝의 흰 연기로 빠져나가지 않고, 한 달 만에 디푸스에 감염되어 죽은 것만 조금 다르다. 이 때가 1942년. 여전히 나치의 전성기, 거꾸로 말하면 이제 전장마다 연속적인 패전만 남았을 시절. 결국 독일이 완전히 패배해서 거의 유일신 비슷한 자리를 누렸던 히틀러조차 지하 요새에서 권총 자살로 시신마저 찾지 못할 줄은 전혀 몰랐다.
전쟁이 터지자 네미롭스키는 자신이 본 전쟁의 모습을 원고지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약 1천페이지 분량의 5부작으로 구상했단다. 이 5부작의 제목을 <프랑스 모음곡>이라 정했다고. 첫 작품이 지금 독후감을 쓰려 하는 <6월의 폭풍>이고 두번째가 <돌체>. 두 작품은 완성이라기보다 초고를 써서 출간은 하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둔 채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3, 4, 5부 <포로>, <전투>, <평화>는 메모만 있거나 제목으로만 남았다.
네미롭스키의 두 딸은 가방을 물려받고 차마 열어보지 못한 채 20세기 끝 무렵까지 그저 보관만 했단다. 원고를 발견한 후에도 엄마가 직접 퇴고하지 않은 작품을 출간하기가 망설였다가, 집필 65년 만인 2004년에 <프랑스 모음곡 Suite Fransaise>라는 제목으로 빛을 보았다고. 짧게 말해서 작가 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의 작품이다.
작가도 기구한 운명을 맞았고, 작품도 기구한 세월을 보내다가 늦게 출간했으니 이런 비극적 내력을 가진 작품이라 당연히 굉장하겠지, 이런 기대는 일단 접고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나도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 기대가 크면 의례 실망하게되더란 것을 익히 경험해봤기 때문에. 근데 말이 그렇지,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작품마다 독자의 심금을 콕콕 찌르는 네미롭스키의 미완성 5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라는데 그걸 기대하지 않기도 쉽지 않잖아?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
작품은 1940년 6월 4일 밤부터 8월까지.
1940년 5월 10일에 프랑스 국경을 침범한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눈에 보이는 프랑스군을 거덜을 내며 파죽지세로 전진, 6월 13일에 파리를 함락한다. 함락을 눈 앞에 둔 파리 시민은 전쟁이 터졌으니 당연히 지대지, 공대지 폭격을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 파리는 잿더미가 될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어제, 6월 3일 밤에 개전 이래 처음으로 파리에 폭탄이 떨어져 건물이 폭싹 무너지고 사람도 여럿 상했다. 여기에 전선에서 프랑스군의 퇴각 소식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자, 파리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일제히 파리를 벗어나 서부 또는 남부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다. 부르주아와 고급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차에 고가의 가구며 은식기 등을 싣고,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국도를 거의 메우다시피해 피곤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근데 문제는 이 장면이 새롭지 않다는 것. 피에르 르메트르가 쓴 <우리 슬픔의 거울>에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오르부아르 3부작” 마지막 작품인 만큼 범죄 스토리를 곁들인 전쟁 개시와 피난 행렬,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조건들의 모습을 르메트르 만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작가도 드물 터, <6월의 폭풍>에서 가장 중요한 피난 장면을 읽으면서, 어째 좀 싱겁다, 간이 덜 됐네, 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도 어려울 듯. 이해하시겠지, 지금 뭔 말을 하는지.
6월 5일 아침에 몇 대의 차를 몰고 파리를 떠날 첫번째 페리캉 가족.
노 페리캉 씨가 이 집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여러가지 사업을 벌여 대단한 자본을 마련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돈이 노 페리캉 씨를 좇아오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단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재산이건만 리옹의 말테르 가문에서 또다시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파리 굴지의 부르주아로 우뚝 섰지만 그것도 옛 이야기, 지금은 너무 고령으로 걷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신의 안식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 게다가 정신도 온전하지 못해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신공을 갖는 수준에 올랐다. 말테르 가문의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여동생과 재산 다툼을 벌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얼마 안 있어서 죽을 예정인데, 죽음의 침상에서는 그 여동생에게 마른 지역이든가 하여간 지방의 넓고 넓은 토지와 성에 육박하는 저택을 유증하고 숨이 넘어간다.
노 페리캉 씨의 아들 아드리양 페리캉은 국립 박물관의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보수주의자이며 가톨릭적 사고에 젖은 인물로, 마흔일곱 살 먹은 고집 센 아내 샤를로트와 금슬도 좋지, 이제 겨우 두살배기 다섯째 아이이자 넷째 아들 에마뉘엘을 두었다. 아내가 마흔다섯 살에 낳았으니 그 시절에 힘들었겠지? 에마뉘엘 말고, 첫째가 생각이 바른 필리프로 부르주아 신분에 맞지 않는 교구 신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필리프는 할아버지가 세운 소년보호시설 ‘프티 르팡티’의 아이들 서른 명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섰다가 책에서 제일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둘째는 열여덟이었다가 며칠만에 열아홉 살이 되는 철없는 위베르. 피난길에 애국심에 불타 가족으로부터 도망해 프랑스군에 접촉했다가 괜히 민폐만 끼치고, 도망 중에 애먼 총각딱지만 떼는 인물. 3, 4, 5번 아이들은 소개할 만하지 않다.
이 집안의 유모가 아들 셋을 두었다. 유모는 세 아들 모두 전쟁터에 보내, 한 명도 징집당하지 않은 페리캉 부부가 결코 곱게 보이지 않지만, 자기 손으로 키운 아이들이라 차마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한다.
유명하고 잘 팔리는 쉰 살배기 소설가 가브리엘 코르트. 그리고 그의 연인 플로랑스. 젊은 플로랑스는 솔직하다. 자기가 늙고 아랫도리 힘 빠진 꼰대와 어울리는 건 가브리엘이 적어도 플로랑스의 복지와 사치를 부담한다는 조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확고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
이 유명하고, 자기가 자신을 판단할 때 대단히 고귀한 신분인 속물 덩어리 소설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최고급 대접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피난길에 나서도 마찬가지. 첫 숙박지인 여관에 가서도 지붕 밑 더운 다락방을 얻자 주둥이가 댓발이 나와 그냥 뛰쳐나오는 바람에 개고생을 한다. 이렇게 손에 물 안 묻히고 살던 인간들은, 전쟁이나 피난, 이런 곤혹스러운 시절을 만나면 살기가 팍팍해진다. 평소에 뭘 해봤어야지. 엄청나게 돈이 많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작가가 멀리 걷기를 해봤나, 풀밭 위에서 야영 한 번을 해봤나, 이래저래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어떻게 연줄이 닿는 장소에만 가면 꼭 캐비아에 상파뉴로 목젖을 적셔야 마땅하다.
코르뱅 은행의 최고 주주 코르뱅 씨. 물론 아내도 있지만 정부 아를레트도 있다. 코르뱅의 입맛에는 무조건 무용수가 딱이다. 아무리 예쁜 외모를 가졌어도 무용수가 아니면 접수하지 않는다. 이 하층계급 출신의 부르주아는 자신이 신세를 고칠 때 부잣집 딸인 아내와 결혼한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계기였던 만큼 절대 헤어질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아를레트는 일단 코르뱅의 피난 차를 타고 안 내리며 버틴다. 그래서 결국 피난길에 나서는데, 이 아를레트 때문에 차에 타지 못해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하는 직원이 있었으니 잔과 모리스 미쇼 부부.
아를레트는 파리를 벗어나 저 멀리 가서 코르벵 가족과 만나기 전에 알아서 차에서 내려, 잘 아는 동네의 잘 아는 호텔에 여장을 푼다. 거기서 다시 파리로 귀환하기 전에 귀엽게 생긴 프랑스군 지원병이었던 위베르 페리캉 군을 만나 아이를 유혹하여 기꺼이 딱지를 떼준다.
미쇼 부부한테는 전쟁터에 나간 아들 장마리가 있다. 미쇼 부부는 걸어서 피난을 가야하는 처지지만 부부, 특히 엄마 잔의 마음 속에는 늘 장마리가 걸려 속이 쓰리다. 장마리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트럭에 실려 퇴각하던 중, 곳곳에 포탄이 터져 망가진 도로 위를 달리는 트럭이 이곳 저곳에 쾅쾅 부딪힐 때마다 머리에 충격을 입고, 다리의 상처도 터져버려 곧 죽어도 별스럽지 않을 위급상황에 떨어진다. 이 상태로 시골의 한적한 동네에서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죽을까 살까? 미쇼 부부한테는 은행장 코르뱅의 미션이 있었다. 언제까지 피난지의 지점에 도착해 업무를 계속하라. 그러나 파리 시민 거의 대부분이 쏟아진 피난길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폭격도 수시로 있었는데 어떻게 가나? 게다가 사실 거기도 폭격을 맞아 다 불타버리고 말았거늘. 그리하여 8월에 다시 파리로 도착하여, 코르뱅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사유로 부부 두 명 다 장렬하게 해고당하고 만다.
이런 이야기들. 등장인물이 몇 명 더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돈과 골동품, 미술품에만 관심있는 샤를 랑줄레. 평생 부르주아로 살며 없는 사람들 내려보며 그들을 천박하다고 여겼던 인간이 피난 길에서 기꺼이 야비한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 광경. 죄를 받았는지 결국 대가리가 터져 폭포수 같은 선지피와 골수를 흩뿌리며 죽는 라스트 씬까지 다양하게 연출하는 한 세상 등등.
고집세고, 배타적이고, 가끔 잔인하게 변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사람들을 도와야 할 때가 되면 그렇게 하기를 서슴지 않는 시골 사람들도 등장하고, 부르주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중산층 사람들은 시골의 드난살이 하는 아가씨와의 사이에 애정도 생기고 그렇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는 섬세한 이렌 네미롭스키가 아무래도 르메트르보다 윗길이겠지? 그렇다.
지금 깊게는 아니지만 조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 <6월의 폭풍> 다음 작인 <돌체>를 읽어? 말아? 하는 것. 하, 이걸 우짜까?
이 책에서 제일 웃긴 장면. 고명한 소설가 가브리엘 코르트가 애인 플로랑스한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한 마디 꽝.
“소설에서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이런 겸허의 교훈보다 더 유익한 건 없어. 생각 안 나? <전쟁과 평화>에서 시골 아가씨들이 웃으면서 길을 건너다가 앙드레 왕자의 자동차 앞을 지나가. 그러다가 그 아가씨들이 자기들에게 말을 거는 왕자를 발견하지. 운운” (p.43)
앙드레 왕자? 웃겼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을 말한다. 러시아의 공작 또는 공을 불어는 모르겠고 영어로 하면 Prince라고 쓴다. 그걸 그냥 왕자로 번역한 것. 그러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서 유로지비급 주인공 미시킨 공작도 미시킨 왕자냐? 알렉산드로 보로딘의 <이고르 공>도 왕자여?
하나 더 있지?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 앙드레 왕자는 1812년 나폴레옹 전투 때 기치를 높이 들고 “올라!”를 외치며 전장을 누빌 예정이다. 거기서 심한 상처를 입고 연인이며 간호병으로 참전한 나타샤의 보살핌 속에 죽을 운명의 남자인데, 그 시절에 웬 자동차? 모르긴 해도 ‘쿠페’라는 마차의 종류일 터. 역자 이상해 씨는 <전쟁과 평화>를 읽어 보셨을 터인데 우짜 이런 실수를 하셨을꼬? 그것보다 편집부는 교정도 안 보고 뭐 했니?
아니, 어쩌면 몰라. 네미롭스키, 또는 가브리엘 코르트가 플로랑스의 무식함을 비꼬느라 일부러 왕자니, 자동차니 했을 지도. 그렇다면 이런 것 좀 각주 달아 가르쳐주면 안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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