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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바라모
  • 세사르 아이라
  • 10,800원 (10%600)
  • 2026-05-29
  • : 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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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생 아르헨티나 소설가, 에세이스트, 번역자, 평론가. 대표적인 다작 작가라고 한다. 출간한 책이 백 권이 넘고, 1년에 두 권에서 다섯 권까지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세사르 아이라는 이 책 <바라모>가 유일하다.


  작품의 주인공 바라모 씨를 소개하자면, 1923년에 쉰 살 정도니까 1873년 정도에 파나마 콜론 시에서 그래도 연줄이 좀 있는 파나마 남자 튜뇬 데 바라모 씨와 광동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엄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파나마에서는 운하 개통으로 유럽의 아시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게 반어법인지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운하 건설과 개통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곳과 심지어 동유럽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서유럽에서는 주로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극한 남초 현상이 빚어져 남자들이 결혼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바라모가 나이 들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빌빌 거리자, 아직 살아 있던 아버지 튜논 데 바라모 씨 연줄로 정부 청사의 말단 자리에 넣어주었다. 말단 공무원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나, 그건 파나마도 마찬가지여서 장가도 들지 못하고 이 나이, 쉰이 될 때까지 가장 한심하고 전형적으로 교과서 적인 남자 루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죽, “연줄로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 근근이 살아가며 어머니 집에 들어 앉아 혼자 가족도 없이 살아가는” 형국이다.


  독후감의 시작을 이렇게 했다고, 이 작품을 서사 위주의 중편 정도 분량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오 산이다. 아무쪼록 독자는 처음부터 긴장을 좀 하고 책을 여는 편이 좋다. 미리 이렇게 말해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바라모가 정부청사에서 퇴근하는 길. 날은 한 달의 마지막 날. 봉급 받는 날이라서 퇴근 전에 경리과에 들러 월급을 받았다. 누런 얇은 봉투에 넣은 현금, 지폐와 동전까지 일일이 세서 담은 봉급을 받는 건 과거의 K 스타일이고, 파나마 P 스타일은 봉투도 없이 그냥 지폐와 동전을 건네주면 그걸 손에서 손으로 받아 그냥 주머니에 쑥 집어넣고 갈 길 가면 되는 모양이다.

  근데 바라모 씨는 이 시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대략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에 걸쳐 긴 시를 한 편 쓴다. 놀랍게도 이전에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쓰기는커녕 반 세기 동안 읽어본 적도 없다. 이런 사람이 길고 긴 시를 썼는데, 써 놓고 덧붙이거나 수정한 부분 하나 없이 완성한 것도 모자라, 시가 이날 이때까지 “현대 라틴 아메리카 시의 걸작으로 찬사 받는” 위대한 <아기 예수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중판, 3판, 4판… n판까지 영원무궁토록 찍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숱한 평론가와 시인들은 이 작품을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고 단정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놀랠 노자다. 바라모는 심지어 이 한 작품에 자기 문학적 인생을 다 소비해 다시는 시를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곳에서 영혼이나마 편히 안식하기를.

  작품의 시작이 위와 같다. 그러면 독자들은 <바라모>는 바라모 씨가 문제의 시를 쓰게 되는 전말이 작품의 주요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게 맞다. 하지만 어떻게 시를 쓰게 되는지 그 이야기를 납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걸? 그러면 머리에 쥐 한 번 나 보자.


  시작은 바라모가 근무를 마치고 경리과에 가서 월급을 받을 때였다. 그는 월급을 받는 순간 알았다. 월급으로 받은 지폐 가운데 100페소짜리 두 장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바라모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위조지폐를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위조지폐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 외국에 놀러갔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주운 적 있다. 딱 집어 든 순간, 이게 위조지폐구나, 말로만 듣던 100달러짜리 위조 노트구나, 금방, 거의 본능적으로 알겠더라고.) 그러니 바라모의 월급 속에 100페소짜리 위조지폐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건 의심하지 말자(나는 호텔 바에 가서 위스키 한 잔 마시고 위조지폐로 의심되는 돈을 냈다가 무슨 검사를 한 지배인이 위조라고 알려주어 앉은 자리에서 (웃어야 할 거 같아서 웃으며) 박박 찢어버렸다).

  바라모는 말단 공무원. 그냥 시민이라도 그럴 텐데 심지어 공무원이 위조지폐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가지고 있다는 것만 들켜도 당장 감옥행일 것 같다. 바라모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지도 못하는 한심하고 난처한 상태로 접어든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단 한 번도 시를 써 본 적이 없다. 시 말고도 다른 어떤 장르의 문학 작품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다. 이래서 결국 어떻게 위조지폐와 시라는 관계가 상호 개체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작품의 핵심(p.108). 아이고, 나도 지금 “개체성과 보편성”이라고 쓰긴 썼지만 써 놓고 다시 읽어보니까 갑갑하기 그지없다.

  이 두 장의 위조지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나’ 바라모 씨한테 왔느냐, 하는 문제. 이것들은 “새로운 이질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바라모에게 도래했단다. 이질성? 여태까지는 가져본 적도, 손으로 만져보거나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위조지폐라는 금단의 것이 무려 두 장이나, 지금 바라모의 오른쪽 호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이질성.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퇴근하느라 청사의 정문을 나서니 광장. 자기 앞에 8미터짜리 검정색 세단 관용차가 길을 막고 탁, 정지한다. 자동 창문이 아니어서 운전수가 손잡이를 뱅뱅 돌리니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며, 검은 피부의 운전수가 바라모에게, 노련한 도박꾼인 바라모의 어머니가 딴 돈을 건네준다. 1페소짜리 지폐와, 지폐를 감싸 반으로 접힌 종이조각. 검정색의 8미터짜리 관용 세단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지 갑자기 당이 떨어진 바라모는 빨간 젤리를 1페소짜리로 사 먹으려 하다 우여곡절 끝에 먹지 못하고 길가 나뭇가지 끝에 걸어 놓았고(책의 마지막쯤 다시 등장한다), 종이에는 알아보지 못할 암호 같은 것들이 마구 쓰여 있다. 이게 무엇일까? 혹시 복권 당첨 번호? 그러나 숫자는 보이지 않는 걸?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 챘어야 했다. 바라모가 쓴 시가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 그런데 1페소짜리 지폐를 감싼 종이에 쓰여 있는 것이 마치 암호 같은 이해하지 못할 문자들. 아방가르드 시를 읽어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현대시를 읽기 위해서는 암호해독기가 필요하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러니 적어도 시가 이 종이에 쓰여진 암호 같은 문자와 조금은 연결이 되겠구나, 이걸 눈치채지 못한 형광등이 누구? 맞다. 나였다. 아이고, 이런.

  바라모의 직업은 종합청사에 근무하는 말단 공무원. 박봉에 시달리느라 장가들 생각도 못하고 여전히 엄마 집에서 빌붙어 사는 쉰 살 중늙은이. 1920년대 쉰 살이면 꼬부랑 할배인 건 파나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바라모가 선택한 부업이 작은 동물 박제 만들기. 이 부업이 바라모가 책을 내게 만들어주는 신공을 부릴 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1920년대 파나마에서는 저작권 개념도 없었고, 그래서 숱한 인쇄소가 중소 출판사를 겸하던 때인데, 이날, 즉 바라모가 월급으로 위조지폐 두 장을 포함해 받은 그날 밤에, 이 출판사 사장 세 명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자기 부업을 이야기하자, 박제에 관한 책을 내라고, 원고료 2백페소를 주겠다고 해서 그는 나중에 불세출의 시 <아기 예수의 노래>가 될 원고를 쓰게 되는 것.

  그러면 시는 어떤 내용이기에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를 들을까? 아, 이건 결코 알려드릴 수 없다. 이게 핵심이라서. 다만 노련한 도박꾼 어머니의 침대 매트리스 영수증하고 관련이 있다는 말만 찔끔 일러드릴까? 그래도 될까 싶지만 뭐 이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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