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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 모란테. 1912년 8월에 출생한 이탈리아의 소설가, 시인, 역자, 소년도서 작가. 출생이 좀 헛갈린다. 위키피디아에는 엘사의 어머니가 어떤 가계에서 출생했는지가 먼저 나온다. 교사 일을 하던 아르마와 아우구수토 모란테의 딸이란다. 그런데 어머니 아르마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모데나의 유대인이다. 그럼 엘사 모란테 입장에서 보면 외할머니가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반 유대인. 아버지는 엘사 모란테가 10대 소녀가 되었을 때 알게 되었는데, 동네 이웃 프란체스코 로 모나코 아저씨였단다. 그래서 엄마의 성 모란테를 갖게 된 모양이다. 이런 특별한 출생 비화는 <라 스토리아> 우리말로 역사, 이야기, 사연이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의 내력과 비슷하다.
아버지인 이웃 아저씨가 엘사 모란테를 제대로 지원해 줄 수는 없었겠지. 옆집 아줌마 보는 눈도 있었을 터이니. 그리하여 거의 독학 비슷하게 공부를 해서 1930년대 중반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66번으로 나온 <아서의 섬>을 발표해 스트레가 상을 받는 성공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이탈리아에서는 알아주는 작품인 <라 스토리아>를 출간한다.
1941년에는 동료 소설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와 결혼하는데, 1941년. 아무래도 좀 불안한 것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의 일 두체, 두령님 무소리니가 히틀러의 유대인 박멸작업을 돕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 반의 반 유대인인 엘사 모란테 입장에서는 검거되어 죽음의 수송열차를 타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을 테고, 그리하여 로마 외곽의 허름한 피난 창고 건물에서 일정 기간 머무는데, 이것 역시 책 속 한 장면으로 들어 있다. 근데 이이의 남편이 알베르토 모라비아였구나. 음. <경멸>을 읽고 고구마 백개 먹은 듯한 답답함에 질려버린 작가. 그리하여 정작 대표작인 <순응주의자>를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려만 놓고 수 년째 곁눈질도 하지 않은 작가. 핑계김에 조만간 읽긴 읽어봐야겠다.
<라 스토리아>는 1941년부터 1947년까지 7년간 이탈리아 로마와 로마 부근의 피난처에서 살던 이다 만쿠소 부인 주변의 이야기이며 이이의 시각에서 직접 경험한 로마의 2차세계대전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1941년 1월. 다하우가 고향인 독일 병사 군터가 등장한다. 몇 년 후 다하우는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생체실험 및 대량 학살로 크게 이름을 떨칠 생체실험실이 있던 장소로 기억되겠지만, 사실 군터가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는 5~6천 명의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치료하는 이상적인 의료기관이어서 오히려 고향 사람들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하여간 금발의 훤칠한 키와 절도있는 몸가짐을 한 앳된 외모의 독일군인은 절망적인 눈빛을 한 185cm의 늘씬한 몸에 맞지 않는, 독일군치고는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소매가 깡충하고 바지 기장도 많이 모자란 군복을 입을 건 뭐람? 그건 입대 후에 키가 자랐기 때문이다. 로마에 온 건 아프리카로 파병하기 위하여 잠시 대기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시골 출신 군터 입장에서 아프리카라니, 그건 마치 지구를 벗어나 은하계에 접어드는 듯한 기분을 갖게 했다. 놀라운 흥분감.
군터는 독일 사창가에서 딱지를 떼 적이 있다. 로마에서도 사창가를 찾아 나서서 골목을 배회하다가 들어간 곳이 반지하 선술집. 이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독일군인에게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나 보다. 선술집 남자들이 혐오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군터는 그래서 더 호기롭게 포도주를 시켜 벌컥벌컥 마셨고, 한 잔 더 시켜 다시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래도 남자들의 눈매가 기분 나빠 추가로석 잔의 포도주를 연달아 들이켰더니 이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던 거다. 그렇다고 쪽팔리게 총독의 병사가 토해버릴 수 없으니까 일단 술집에서 나와, 한 건물 계단 옆에 쭈구리고 앉아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다. 마침 이 건물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 이다 라문도가 군터와 마주쳤다. 남편의 성씨는 만쿠소. 서른 일곱 살. 과부. 외모로 보면 빈약한 상체와 투실한 하체가 균형이 맞지 않는 중년여성. 당시에 30대 중반이면 충분히 중년이었다. 그래도 아직 내면은 어린 아이 수준이다.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 빼고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1903년생 염소자리. 산업, 예술, 예언, 광기, 어리석음의 별을 타고 났지만 별로부터 받은 건 조금의 광기과 어리석음 뿐이었다.
아버지는 공산주의자. 엄마는 유대인. 원래 이름을 ‘아이다’라고 지으려 했지만 행정절차 중에 알파멧 A가 빠지는 바람에 아이다에서 이다가 되었다. 1919년인가 20년에 교사시험에 합격하고, 마지막 여름방학 때 지참금 없이 약혼한 남자 알피오 만쿠소와 혼인했다. 시칠리아 메시나 출신 1898년생 남자로 방문 외판원이어서 돈을 잘 벌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사이에 씩씩한 말썽꾸러기 아들 안토니오, 애칭으로 니노, 닌누추, 또는 닌나리에두를 낳았다.
계단참에 쓰러져 침을 흘리며 잠을 자던 독일군 군터의 눈에 들어온 중년 여인. 자기 동정을 가지고 간 매춘부도 형편없이 나이든 여인이었다. 그러니 술이 깨지 않은 군터가 보잘것없는 상체와 풍만한 하체를 가진 이다를 직업 여성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 그리하여 군터는 독일의 히틀러 군대 군인의 위압감으로 이다의 허리를 두른 채 이다의 집으로 억지로 몰고 가서, 물론 이 과정에 이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있긴 했지만 하여간, 했다. 일을 마친 후 가지고 있던 장식용 칼을 나이 많은 아주머니에게 선물인 셈쳐서 건네 주고 그냥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이게 독일군 군터의 마지막 장면이다. 딱 한 장면에서만 나온다. 삼일 후에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전선으로 날아가다 폭격을 맞아 죽을 운명이었다.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는 대신 엉뚱하게 이다의 자궁에 자기 DNA가 절반 들어간 수정란 하나를 착상시켜놓은 건 당연히 몰랐다. 이날부터 아홉 달 후에 이다의 둘째 아들이 태어난다. 아이의 이름은 할아버지와 같이 주세페라고 짓는다. 아이가 옹알이할 때 주세페 대신 우세페라고 해서, 기록자 역시 아이를 우세페라고 쓴다. 우세페의 씨 다른 형 니노 역시 우세페라고 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우의를 갖는다. 기특하게도.
주인공 엄마 이다는 어릴 때 많이 긴장하거나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갑자기 과호흡을 동반한 강박 상태에 돌입하는 이상 상황을 벌였다. 당시 의과학으로는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서 그냥 기질이 있는 것으로 치부했다. 이런 기질을 아빠 이름도 모르는 늦둥이 주세페가 물려 받았다. 물려 받기만 하면 괜찮은데 이를 더 발전시켜 규모를 확장해버렸으니 문제다. 그건 나중에 계속 나올 터. 여기에 좀 유별나달까, 특별하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질도 있고, 어릴 때부터 전시 상황에 살면서 죽음에 처하거나 죽어가거나 하는 모습에 많이 노출된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작품 중의 소아 정신과 의사 누구도 정확하게 진단, 처방하지 못하지만 21세기라면 치유가 가능했을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일종의 정신 질환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아이는 세젤예 소년이며, 가장 명랑하고 사람 잘 사귀는 귀여움 덩어리.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이지만 누구보다 자신한테 친절한 형 니노, 그가 데려온 개와 친숙하게 자라 동물의 심정에 밝은 아이로 성장한다.
하지만 엄마 이다는 자신의 반 유대인 혈통에 관하여 점점 더 큰 불안에 휩쓸리고, 니노는 일찍이 일 두체에 대한 충성으로 자원입대하기로 결정을 하고 집 나간 문제아. 때를 맞춰 로마 공습으로 집이 폭삭 무너지자 로마 시내 외곽 습지의 텅 빈 피난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빠질 수 없지만, 이젠 좀 식상한 홀로코스트. 파시스트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변신한 후 이탈리아 내 반 독일 레지스탕스로 변모한 니노. 이렇게 엘사 모란테는 자기 주변에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던 2차세계대전의 모습을 차곡차곡 작품 속에 담았다.
그게 다다. 다는 아니다. 여기에 이다 가족사도 포함해야 하니까.
이탈리아 예술 장르에 ‘베리즈모’라고 있다. 주로 치정살인극을 말한다. <라 스토리아>에는 치정은 없다. 그러나 참 많이 죽어 나간다. 군인과 유대인은 군인과 유대인이라서 죽어 나가지만, 전쟁의 주변에 있다가 폭격을 맞지 않더라도 참 잘, 다양하게 죽는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내가 이 책을 지겹디 지겹게 읽게 만든 것은 작품 속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왜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느라 지면을 사용했을까, 하는 것. 이 에피소드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무정부주의자 유대 청년이 탄압을 피해 집을 나왔어. 그러다가 잡혀서 고문을 받은 후에 이동 중 탈출했어. 이후에 이다 가족과 잠깐 어울렸다가 오랜만에 들른 이다의 아들 니노를 따라 혁명 파르티잔 집단으로 들어가, 아직 덜 죽은 독일군을 징 박은 발뒤꿈치로 얼굴을 자근자근 밟아 죽였어. 부모 형제가 다 수용소에서 죽었거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부르주아 아버지한테 받은 재산을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삼촌에게 다 주고 로마로 와서 모르핀 중독자로 살며 죽음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려. 근데 왜 독자가 이 남자, 카를로 비발디의 생을 자세하게 알아야 하는 건데? 이런 불만.
읽다가 읽다가 지루할 때쯤, 마침내 나는 책갈피 한 장을 붙였다.
2권 274페이지. 앞에서 말한 카를로 비발디의 유대 본명이 다비데. 다비데와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던 동료 가운데 한 명이 쏘아붙였다. 또 허무한 무정부주의를 일갈했던 모양이다.
“너한테 부르주아는 좇이란 거잖아!”
두 권짜리 장편소설에 딱 한 장 붙인 메모. 나는 거기에 이렇게 썼다.
“좇? 책 읽다, 읽다 이걸 오타 내는 건 또 처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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