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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킨케이드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까 재미있는 가족사가 나온다.
“킨케이드는 1979년에 작곡가이자 베닝턴 컬리지 교수인 앨런 숀과 결혼했는데, 그는 (킨케이드가 1976년부터 전속작가로 일하고 있던) 뉴요커의 오랜 편집자 윌리엄 숀의 아들이며, 극작가 월리스 숀과 형제이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어쩌구저쩌구… 킨케이드와 숀은 2002년에 갈라섰다.”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루시>에서 뉴욕 근처에 입주 보모, 오페어로 들어간 이야기를 한 바 있고, <미스터 포터>는 생물학적 아버지, <내 어머니의 자서전>은 좀 냉정한 어머니에 대하여 말했다. 이제 <지금, 그리고 그때>를 쓰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2013년에 나오면서 앞에 인용한 위키피디아 내용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조금 구설에 올랐던 모양이다. 작중 부부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가 누가 보더라도 앨런 숀하고 너무 닮았기 때문에.
앨런 숀이 작곡가이자 컬리지 교수. 미스터 스위트는 집에 부속한 차고 위에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를 둔 작업실에서 음악에 전념하는 작곡가. 뉴욕주의 주도 올버니에서 관객 스물 댓 명을 모시고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도 연주하는 모양이다. 듀크 앨링턴의 재즈와 현대 음악, 주로 안톤 베베른, 아널드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류의 음악을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장르를 불문해 교향곡, 성악, 현악, 피아노곡 등을 망라하지만, 현대음악이 거의 다 그렇듯 대중의 호응이 거의 없는 불운한 작곡가. 무대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로 보이는데 집안이 뻑적지근하고,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미시즈 스위트와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는 결국 성대한 결혼식을 끝내고 저지 맨해튼 건물의 옥상에서 자유낙하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물론 이 불행한 죽음은 앨런 숀의 경우와 다르리라 믿는다. 하여간 이런 맥락으로 보아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미시즈 스위트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는 백인 인텔리겐치아일 것이다.
처음엔 미시즈 & 미스터 스위트도 좋아서 죽고 못 살았겠지. 하는 짓마다 예뻐 보이고, 잘나 보였을 테지. 그렇게 살다가, 사실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가 투신자살 해버렸으니 사랑과 행복의 시기가 지극히 짧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맏딸,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낳을 때까지는 다른 부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다음에 어린 헤라클레스를 낳았을 때, 미스터 스위트는 벌써 아내를 몹시 미워하는 상태였고, 미움을 넘어 그녀가 얼른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가 허다했다. 아내가 미우면 아내가 낳은 아들도 미울까? 미스터 스위트가 갓난 헤라클레스의 탯줄을 끊자마자 품 안에 안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헤라클레스를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도끼다시”한 시멘트 바닥에 거꾸로 떨어져 두개골이 박살이 나 죽어버리는 광경을 머리 속에서 그리기도 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이혼한지 10년이 넘은 전 남편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렇게까지 악담을 서슴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전작에 비해 유달리 입이 험하다.
“신생아인 아들을 바라보았는데 아기를 품에 꼭 안기가 두려웠다. 품에서 놓쳐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더없이 강렬한 열망이, 몸은 멀쩡하지만 머리가 깨져, (중략) 분만실 바닥 사방에 아이의 뇌가 흩뿌려지는 걸 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p.77)
미스터 스위트가 본 미시즈 스위트는 출신부터 바나나보트를 타고 미국에 들어온 유민. 바나나보트? 칼립소의 황제이자 내 우상이기도 한 해리 벨라폰테의 노래 중에 <Banana Boat Song>이 있는데 이 바나나보트가 아니다. 미스터 스위트가 말하는 건, 서인도제도에서 거렁뱅이들이 사람이 타는 여객선이 아니라 바나나 수송용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한 불법 행위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자기는 마누라하고 씨가 다르다는 건데, 이런 혼인은 시한폭탄 하나를 품에 안고 시작하는 꼴이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폭탄.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
그러면 미스터 스위트는 여태 왜 살았느냐고? 킨케이드 가라사대, “미움은 사랑의 정반대이고 그래서 사랑과 가장 유사한 형태”란다. 그러니 미움을 사랑이라 오해하면서 살 수 있었다는 뜻이겠지.
웃기네. 웃기지?
처음엔 자기와 다른 피부색도 좋아 보였고, 계급이 다른 것도 오히려 그래서 매력적이고, 부모가 특히 엄마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도 재미있었을 수도 있고, 이것 저것 다 합해 남들 앞에서 후까시 잡기도 괜찮은 거 같았는데 살면서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가 너무나 많이 서로 다르니까 처음에 싫다가 결국 미워졌겠지. 이러다 보면 결국 사고 친다. 그리하여 저 뒤로 가면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와 어린 헤라클레스를 앞에 두고 미스터 스위트가 고백을 해버린다. 자기한테 진정한 사랑이 찾아 왔노라고. 꼴값하는 거지 뭐.
그래서 결국 미시즈 & 미스터 스위트는 혼인의 불행한 종말을 맞는데, 이게 주된 내용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은 이런 문장이다.
“현재는 그때이자 지금이고, 과거도 그때이자 지금이며, 미래도 그때이자 지금이 될 것.”
쉬운 이야기로 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지금 벌어지는 모든 것도 영원히 남을 거란 뜻이다.
이 정도면 미시즈 스위트도 깔끔하게 자기 이름에서 “스위트”를 싹 지워버리고 당연히 위자료 넉넉하게 챙겨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살면 될 것을, 서인도제도 사람들의 정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지난 이야기, 심지어 자기 모국 엔티카 바부다의 인정머리 없는 어머니와 얼굴만 아는 아버지 생각까지, 그것만 딱 끄집어 내기 뭐하니까, 괜히 지구가 탄생한 40억년 전부터 무슨 대, 무슨 기, 무슨 세 등을 망라하면서 독자들 해골 흔들리게 만드느라 열심이다.
이 작품 속 최근 미시즈 스위트의 나이가 52세. 만일 미시즈 스위트가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분신이라면 이혼 과정이 완료되기 1년 전이다. 사는 곳은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셜리 잭슨 하우스. 즉 이혼 소송을 하면서 위자료 명분으로 집은 미시즈 스위트 혹은 킨케이드 소유로 한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그거면 됐지 무슨 감정이 남아서. 어차피 처음부터 시한폭탄을 가지고 시작한 결혼이었으니 말이지.
4별은 좀 과한 기분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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