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7년생 닭띠 아저씨, 안드레이 야로슬라보비치 마킨. 이름 보면 딱 안다. 57년생이니까 소비에트 연방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났다. 몽골 위, 훨씬 높은 위도. 예전 같으면 유배형 받아 가는 곳이다. 열 명 가면 여덟 명 죽고 두 명도 유배형이 끝나봤자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이동권이 제한된 주민으로 살다가 죽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안톤 체호프가 자연 경관에 홀딱 반한 도시. 지도 보니까 눈대중해보니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4천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래도 자란 곳은 모스크바 기준 남동쪽으로 7백km 이상 떨어진 펜자 시. 이이의 외할머니가 (지금 읽고 있는 다른 작품 <프랑스 유언>에 나오는 것과 같이) 프랑스 태생이어서 프랑스어도 러시아어만큼은 아니겠지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마킨의 능숙한 프랑스어가 문제였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교사 교환 프로그램을 명목으로 슬쩍 프랑스로 넘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그곳에서 눌러 산다. 도착하자마자 열나게 소설을 발표, 네번째 작품인 <프랑스 유언>을 발표해, 프랑스 문학사상 처음으로 1995년 한 해에 공쿠르상과 메디시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검색을 하다가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안드레이 마킨이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아시아 제바르의 자리를 물려 받았다는 거였다. 아니, 제바르가 갔어? 2015년 78세의 나이로 영면했단다. 팬으로서 아쉬운 일이다. 그곳에서 안식하기를.
<어느 삶의 음악>. 시작은 화자 ‘나’의 조국, ‘나’가 태어난 인구 2억4천만의 나라에 대한 신조어에 관해. 이 신조어新造語는 뮈헨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지노비예프가 만든 말,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일컫는다. 이 용어야말로 러시아 사람과 러시아의 문제를 푸는 진정한 열쇠라고.
‘나’는 저 극동 지역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랄의 한 도시에 들렀다. 이제 집이 있는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 페테르부르크에 가려면 모스크바애서 환승을 해야 할 터. ‘나’는 열차 정거장의 대합실에 앉아 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차가 여섯 시간 연착할 거라는 방송이 나온다. 여섯 시간. 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 시민이라면 어떻게 여섯 시간 연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랄 지역 사람들한테는 여섯 시간은커녕 여섯 날, 6주라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대합실의 후줄근한 사람들은 오직 ‘나’ 빼고 아무 불만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게 전형적인 호모 소비에티쿠스. 전쟁이 나면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 총 맞아 죽고, 여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도 전쟁이 터진 거니까 그런가보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한 밤중에 잠자리에서 끌려가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즉결처분 당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사람들. 그렇게 만든 유구한 역사. 세계사의 바깥에 자리한 나라. 비잔틴 제국의 뿌리 깊은 유산이며, 두 세기 동안 짊어진 타르타르의 멍에이고, 5세기에 걸친 노예상태와 혁명에 이은 스탈린 치하를 겪으며 저절로 습득하게 된 무념무상의 상태.
기차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새벽 세시 반. 역사驛舍에 흘러드는 건반 소리에 ‘나’는 설핏 든 잠에서 깬다. 그 소리의 무심함에 이라니. 철학적 분노를 철저히 무용화 하는 소리. 그저 하나의 경계선일 뿐인 것. ‘나’는 그것을 따라 역사에 이어진 복도를 걸어 한 홀hall의 열린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 의자 옆에 모서리를 니켈 도금한 짐 가방. 그는 건반을 누르지 않고 그 위를 손가락이 오가기만 한다. 아주 미세하게 손톱이 건반에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군데군데 사이를 두다가 활기를 띠더니 조용한 흐름에 박차를 가하며 종내 열띤 분노의 달음박질을” 펼치는 광음의 열정. 소리 없는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있고, 노인의 손가락 뼈가 그렇게 투박한 것에 또 놀란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서 관자놀이까지 세월이 표백한 깊은 흉터와 그의 눈물을 확인한다. 정말 눈물이 늙은 눈에서 방울졌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 같다.
‘나’는 피아노에 앉았던 노인에게 그가 한 타건 없는 피아노 연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우랄의 한 도시에서 썰렁하기 그지없으며 난방조차 변변하지 않는 강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모스크바 집으로 가는 늙은 남자 피아니스트 한 명이 떠올랐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아, 이 책이 리히터에 관한 것이구나. 그가 종종 그러했으니까. 러시아의 시골 변방을 다니면서 공연장이 크거나 작거나, 관객의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 관계없이 기꺼이 연주회를 하고 조용히 열차를 타고 돌아온 외로운 노인. 나도 그 시절에 녹음한 음질이 열악한 바흐 음반을 한 장 가지고 있다. 리히터가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이제 음악 이야기가 쏟아질 거야. 이렇게 기대했다.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대합실에서 여섯 시간 기다렸던 인파와 함께 승강장으로 뛰어갔지만 승객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객석은 발 하나 꽂을 곳이 없다. 그래도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객차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나’도 덩달아 어깨로 힘껏 밀어보지만 곧이어 객차 담당이 와서 이제 더 이상 못 탄다고, 내일 열차를 타라고 악을 쓴다.
이때 피아노 노인이 그를 소리쳐 부른다. 오랜 연착 후에는 아주 오래되어 거의 고물이기는 하지만 종종 객차 끝에 스페어 객차를 다는 법이라며, 이번에도 그런 것일 뿐이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노인과 구닥다리 삼등칸에 여유있게 앉아 모스크바까지 편안히 여행한다.
그리고 이어서 노인의 삶을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그 당시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오.”
1920년생의 노인. 아, 리히터 이야기가 아니구나. 여기서 알았다.
극작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의 외동 아들. 어머니를 탁했는지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재질을 보여 학교와 음악원을 동시에 다녔다. 스무살이던 1941년, 이이는 5월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을 무릅쓰고 관청 앞의 게시판에 붙은 벽보를 보고 있었다. 벽보에 자기 이름, ‘알렉세이 베르그’가 들어 있는 것을 머리 속에 사진으로 찍어 놓았을 정도로 골똘하게. 1주일 후에 볼베어링 공장 문화원에서 첫번째 연주회를 연다는 알림.
그러나 1920년생 소련 사람이 1940년까지 오는 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알렉세이도 마찬가지. 극작가지만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한 대 숙청 기간에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라는 혐의를 받을 것이 두려워 집안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바이올린을 부엌 화덕에 집어넣어 불살라 버렸다. 가족의 친구이자 훌륭한 바이올린 협연자인 투카체프스키 사령관이 처형당해 부모는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었던 시기.
대숙청이 1937~38년까지를 말하지만 이후에는 숙청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게다가 군 사령관의 친구이니 언제나 불안했을 터. 1940년 5월이 왔다. 알렉세이가 음악원에서 연주회를 위하여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 같은 건물에 사는 노인이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를 불렀다.
“집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네. 어디 멀리 떠나.”
이렇게 알렉세이 베르그의 앞에도 길고 긴 험한 여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디로 도망할 수 있었을까? 들어가기는 쉽지만 결코 나올 수 없는 곳이 소비에트 연방이었는데. 그를 살린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독일군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그는 역사의 폭풍에 자진해서, 고문과 유형을 피해, 살기 위하여 이미 죽은 소련군의 군복과 군화를 신고, 다른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며 휩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될 뻔한 노인 알렉세이 베르그의 한 평생을 담은 짧은 소설.
기대했던 것과 달리 단 한 곡의 특정한 음악 이야기도 없었다. 제목 <어느 삶의 음악>은 알렉세이 베르그한테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를 의미한다. 그걸 차마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