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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케예의 이스탄불을 유럽의 동남쪽 끝자락으로 본다면, 알바니아는 그리스의 북서쪽에 위치해 내가 알기로 세계사에 단 한 번도 주역으로 등장한 적 없는 변방 가운데서도 변방 국가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변방국가. 늘 다른 나라한테 침략을 당했고, 다른 나라들의 싸움터가 되었던 나라. 그리하여 알바니아 어느 땅을 파도 주변 열강 군사들의 뼈가 나올 수 있다고 농담하고는 한단다. 이런즉슨, 필연적으로 다민족, 다종교 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을 터. 그러니 별의 별 문화가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북쪽 산간지역에 독특한 관습법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공동체를 무대로 삼았다. 관습법이라면 흔히 불문법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 산악 공동체의 관습법은 “카눈”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삶의 거의 모든 양식을 일일이 지정해 놓았다. 카다레는 이런 관습법 가운데 특별히 복수 관습에 주목했다. 가족의 일원이 살해당했으면 다른 가족이나 친척이, 원래는 가해자이지만 세월이 가면서 가해 가족의 남자 구성원 한 명을 살해할 수 있다는 관습이다.
주인공은 베르사가家의 그조르그. 갈등 관계에 있는 가문은 크리예키크가家.
이 가문이 서로 죽고 죽이는 원한 관계를 먼저 이야기해보자.
아주 오래 전, 아마도 70년 정도의 세월을 거꾸로 돌리면, 산골 속에 묻힌 브레즈프토호트 마을에 한 나그네가 걸어 들어왔다. 뭔가 불안한 듯 보이는 손님이 문을 두드리고 자신을 객으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그래서 그조르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정도 되는 양반이 기꺼이 손님으로 받았고, 역시 관습법에 의하여 차릴 수 있는 최선의 식사와 잠자리와 기타 모든 수발을 다 들었다. 뒤에 설명하기를 한 번 손님으로 특정 집안에 받아들여졌으면 그 순간부터 손님은 집안의 반half신의 위치 정도가 된다고.
베르사가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길을 떠날 때, 관습으로 집안의 소년 하나가 그를 마을 끝까지 배웅을 했는데, 이 손님이 뭔가 나쁜 짓을 했는지, 그리예키크가 사람한테 총을 맞아 그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바로 마을 경계를 한 발 정도 앞두고. 경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때부터 방문 가족의 손님 신분을 벗어나지만, 경계 안에 있으면 손님 역시 가문의 일원으로 여겨야 하면, 가족의 일원이니 당연히 베르사 가문은 손님을 죽인 그리예키크 가문의 당사자에게 복수, 즉 소총을 이용해 죽여야 했다.
이때부터 두 가문의 서로 죽고 죽이는 불행한 고리가 만들어져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고 있던 상태. 어이없어 보이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누구나 다 납득하고, 당연히 피의 보복을 해야 하는 관습법.
그렇다고 손님을 가려 받기도 뭐하다. 이슬람 문명도 그렇거니와 북동부 유럽 지역에서도 손님이 찾아오면 일단 최선을 다해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니까 베르사 가문도 그를 문밖에서 안으로 들이지 않고 내칠 수는 없었을 테니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피의 복수를 당한 가문은 죽을 때 피가 묻은 셔츠를 굴뚝 꼭대기에 걸어 놓고, 셔츠가 짙은 갈색이 되기 이전에 복수를 해야지 안 그러면 불명예라고 여겼다. 그리예키크 집안의 제프가 그로즈그의 친형을 죽였을 때도 어머니가 굴뚝에 걸어 놓은 셔츠를 가족 모두 하루에 몇 번씩 올려다보며 복수의 마음을 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많이는 아니고 조금 오해. 그로즈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의하여 경사지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제프가 지나갈 때 한 번 저격을 했으나, 목에 작은 상처를 냈을 뿐이었다.
이것도 불행 가운데 하나. 죽이지 못하고 부상만 입히면 총알이 지나간 부위에 따라서 목 위는 죽음의 값의 절반, 허리 위는 얼마, 아래는 얼마 하는 식으로 배상금을 피해 가족에게 주어야 했다. 이때 가족이 일년 내내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원수 그리예키크 집에 가져다 준 적이 있어서, 아버지의 두번째 명령을 어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서진 사월>의 막이 오르면, 그로즈그가 덤불이 무성한 경사지 뒤쪽에 매복해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해가 떨어지기 직전까지 버티고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침내 인기척이 나고 아버지가 말 대로 제프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살인에 성공한다.
복수 살인에 관한 관습법. 첫째 반드시 소총으로 살해해야 하며, 둘째로 총을 발사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사전 경고를 해야한다. 세번째로 정말 죽었으면 시신을 똑바로 누이고 손도 가지런히 모양을 잡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소총을 시신의 얼굴에 기대 놓아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아직도 관습법은 남아 있다. 살인자가 피해자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매장까지 다 보아야 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장례식 후 장례식사에 참여해 차려준 음식을 다 먹어야 하는 것까지.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예상도 못하게, 피해 가족이 그로즈그를 보는 눈이 그리 살벌하지 않다. 그 집에서도 알기 때문에. 죽여야 해서 죽였고, 자기들도 그로즈그를 죽여야 되기 때문이다. 하기 싫어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가문의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지니까.
이 관습법 카눈의 조항도 문제.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복잡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마을의 연장자로 구성한 원로들이 회의를 해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원로들이라 하더라도 이 가운데 늘 솔로몬 왕이 끼어있지는 않아, 결정이 애매하고 힘들 때는 공동체에서 가장 지혜롭고 이름 높은 카눈 해석자 알리 비낙 한테 해결을 의뢰한다.
알리 비낙은 피의 복수뿐만 아니라 마을 간의 경계선 같은 갖가지 소송을 맡기 때문에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의사와 측량사를 대동하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책에서는 지혜로운 알리 비낙이 어떤 공식적인 지위에 있는지, 먹고 사는 건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산악지대의 모든 공동체는 오로시탑塔, 오로시궁에 사는 대공을 마치 작은 군주로 여긴다. 최고 지도자이며 공동체 결속의 중심지이자 지배자. 대공의 밑에 사촌 마르크 우카시에르가 피의 복수를 담당하는 ‘피 관리인’을 맡고 있다. 복수를 위해 피살자의 피를 보았으면 살해 당사자가 직접 큰 돈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대공은 이것 말고도 농사, 과수원, 기타 소공예품 등으로도 수입을 올리는데, 여태까지 가장 큰 소득은 피의 세금이 맡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정말로 피의 복수를 행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세수입도 쪼그라들어 마르크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산악 공동체에 예상하지 않은 인물이 방문한다.
수도 티라나에서 사는 소설가 베시안 보릅시. 이이가 결혼을 해 신혼여행으로 아내 디안과 함께 이 산악지대로 왔다. 이슬람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신혼이지만 결코 한 침대에서 잘 수 없는 곳. 산악지대 출신이 아닌 베시안은 이 산악지대의 관습법을 많이 알고, 이를 소설의 소재로 삼아 책을 낼 때마다 제법 판매부수를 올리는 부르주아, 적어도 쁘띠부르주아 계급이다. 이이의 소설을 읽어봤는지, 아니면 신문에 난 서평 같은 것을 슬쩍 보았는지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 작가가 기특해 대공이 직접, 아무 때나, 아무 시간에나 방문을 해달라고 청해 신혼여행 삼아 과하게 화려하게 치장한 마차를 대절해 한 달 예정으로 이곳에 온 거다.
그래서 첫날 묵을 집에 전보를 치고, 전보가 도착했는지 아닌지도 모른채 일단 쳐들어가 하룻밤 제대로 대접을 받았지만 신혼부부가 다른 방에서 자야 하는 불상사를 당했고, 이튿날 드디어 대공을 만나러 오로시탑으로 향했다. 가다가 도중에 주막집에 들러 밥을 먹고 다시 출발하려는 찰나, 아내 디안의 눈에 그조르그의 잿빛 얼굴이 들어온다. 그조르그도 다른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오로스탑에 가서 피의 세금을 바치고 오는 길이었다. 마치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모습. 이제 다음 번에 죽을 사람이 자신이니까 벌써 다 산 거 같았겠지. 그의 표정과 모습이 디안의 마음에 콱 박혀버린다. 연모하고는 다른 독특한 인상. 저지대 사람이 조금 미치광이들이 모여 사는 곳에 와서 약간 휙 돌아버린 듯하게 조금씩 변해버리는 디안.
이렇게 작품은 산악지대의 피의 복수와, 관습법을 소설의 소재로 했을 뿐 진정한 관심 없이 그저 작품을 위해 관찰 목적으로 방문한 작가 부부가 소설의 두 축을 이룬다.
아다시피 이스마일 카다레는 오랜 세월 동안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있다가 결국 받지 못하고 세상을 뜬 작가.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의 많은 작가들이 그가 노벨상을 끝내 받지 못하고 죽은 것을 아쉬워할 정도였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럴 듯하다고 생각이 들긴 한다.
이런 작가가 2차 세계대전의 이탈리아군, 독일군, 산악지대 사람들로 구성한 자신의 다양한 작품과 달리 관습법으로 대표하는 산골 종족의 문화로 비극을 쓴 것이 색달랐고, 특히 첫 무대, 관습법에 의한 피의 복수와 이어지는 관례가 독특하게 재미있다. 설마 아직도 피의 보복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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