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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현대문학사에서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7번으로 나온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 읽었다. 이번에는 “을유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137번으로 나온 《러브크래프트 걸작선》. 모두 다섯 개의 중∙단편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세 편이 현대문학사 책과 겹친다.
목차를 보자.
1. 외부자
2. 벽속의 쥐들
3. 크툴루의 부름
4.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5. 우주로부터의 색
이 가운데 2, 3, 5번이 겹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6년 전에 읽은 소설집이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면서도 엽기발랄한 것이 재미있게 읽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싹 잊어버려 아예 처음 읽는 것 같았다. 게다가 3, 4, 5번은 “크툴루”라는 생명체, 아마도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로 신비롭고 악마 같은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이다. 5번에서는 크툴루와 그의 동족이 해왕성 너머 태양의 아홉 번째 행성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때 인류는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 해왕성인 줄 알았거나, 막 명왕성의 존재를 발견한 시점이다.
하워드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생몰이 1890~1937.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던 반유대주의의 편을 들었으며, 이이의 반유대주의는 우월형질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히틀러를 지지하기도 했다. 즉 그때는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인.
미국인 보수주의자라면 외계인은 당연히 지구 점령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울 상대. 그런데 조금 다르다. 러브크래프트의 외계인은 어쩌면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와 있으면서 지구인에게 정체만 밝혀지지 않으면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대신 자기들이 필요한 물질을 채취/채광해간다.
이런 것이 소설이 되려면, 어쩌다 인간의 눈에 외계인이 띄는 아주 드문 경우. 그런 일이 있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 원주민의 토속 종교 속에서 외계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부두교 예식에서도 그렇다.
이들은 비단 육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바다 속에서도 있다.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 섬과 함께 있었고, 섬과 함께 바다로 내려가 그곳에서 터를 잡기도 했다.
육지에 있건, 바다에 있건 크툴루는 자신의 흔적을 인류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은 대개 행방불명되거나, 상당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거나, 자살해버린다. 어쩌면 그들이 죽였을 지도. 간혹 그들과 관계를 맺어 가까워지면, 크툴루에게 설득당해 놀라운 의과학으로 신체에서 뇌만 절묘하게 빼내, 신체는 그들이 싱싱하게 보관하고, 뇌는 시각, 청각, 말하는 장치 등을 연결한 후 금속함에 담아 크툴루의 별까지 여행하기도 한다. 정말 거기까지 갔다 온 사람은 나오지 않고, 뇌만 살아 생각하고, 주인공을 설득해 뇌를 뽑아 함께 제9 행성에 가자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쨌건 외계인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애초 적수가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그들이 있는 곳에 접근하지 않는 것. 지구에서 특정한 물질을 채취해 간다 하지만, 오랜 세월 그렇게 했어도 지구인이 사는 데 불편함이나 모자람은 여태 없었으니 어쩌면 최선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그저 그렇구나, 이런 생각 하지시? 하지만 읽어보시라. 곳곳에서 섬뜩한 장면이 등장해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미 현대문학에서 나온 책으로 읽어본 전력이 있더라도 어떤 작품에 무슨 장면이 나오는 지는 다 잊었어도, 결코 밤 늦게 나 홀로 있는 방에서 읽지는 않겠다고 작심해, 딱 해 있을 때 다 읽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러브크래프트를 검색하다가, 오랜만에 나무위키에 가 보았더니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 있다.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이자, 현대 호러 문학과 서브컬처 전반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 작가.”
러브크래프트 한테 크툴루가 이만큼 중요한 (아씨, 이걸 뭐라 해야 하는 거야? 등장인물도 아니고, 소재라고 하면 빵점이고, 장치는 말도 안 되고) 하여간 그런 거다. 그러니 을유문화사 책이 “걸작선”일 수는 있겠다.
첫번째 순서로 실린 <외부자>는 괴물 이야기. 성에 사는 ‘나’. 나는 성의 까마득한 탑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또 더 위로 갈 수 있는 듯한 입구가 있다. 테드 창의 데뷔 단편 <바빌론의 탑>하고 비슷하지? 탑 위에 더 위로 향하는 뚜껑. 두 작품의 주인공 다 어렵게 뚜껑을 열어젖힌다.
<외부자>의 ‘나’가 그곳으로 기어 올라가니 완전한 어둠. 앞이 보이지 않지만 편평한 것이 큰 방 같기도 하다. 그래 더듬더듬 짚어가며 더 깊숙이 들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펼쳐지는 광경. 무도회. 온갖 선남선녀가 즐겁게 춤을 추고 있어 ‘나’도 한 자리 끼려고 냅다 달려가니, 그곳의 신사 숙녀들이 화들짝 놀라, 숙녀들의 혼절하기도 하고, 신사들도 아이구 깜짝이야, 혼비백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외치는 말이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나’는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거울을 보니,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할 괴상망측하고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
이 작품 속에 괴물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그건 독자가 생각하는 거, 그게 맞다. 독자 자신일 수도 있고, 누구나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크툴루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나를 차버리고 떠난 마음 속의 악마인 그새끼 또는 그년일 수도 있겠지. 이런 거 아니더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것이라도 괴물이 될 수 있으니 그건 알아서 하시고.
두번째 실린 <벽속의 쥐들>은 현대문학 책에도 나오는 작품이다. 쥐들의 습격. 영화에서도 쥐가 습격해 사람들을 쪼아먹어 죽이는 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이없게도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 즉 마에스트라를 그린 영화 <더 컨덕터>에서 마에스트라의 이름이 Tar. 거꾸로 하면 Rat, 바로 “쥐”다. 이것도 뭔가 있겠지?
종과 관련없이 우생학 적으로 센 놈이 이기는 거. 지하 묘지에서 이번에 바닥 뚜껑을 열고 더 지하로 들어가면 그동안 교회의 벽에서 찍찍거리는 소리의 주인공들을 만난다. 무시무시한 숫자의 쥐들.
아휴, 내 취향 아니다. 큰 아이 어렸을 때 둘이 손잡고 <주라기 공원 II> 보러 갔다가, 음산한 음악이 깔리면서 쥐만큼 작은 공룡이 앉아 쉬는 인간 앞에 나타나, 곧 작은 공룡들이 무수하게 몰려들어 그 뚱뚱한 인간을 마구 쪼아 먹을 거 같아서, 아이한테, 갈래? 했더니 걔도 응, 그래서 부자가 손잡고 영화 보다가 나왔다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이런 작품이 마음에 들겠어?
아직 러브크래프트를 읽지 않은 독자들한테는 권할 만하다. 책을 읽으며 이이를 놓친다면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더구나 이 책은 서울대 영문과에서 SF문학을 강의하는 이동신 교수가 번역하고, 특히 오랜만에 괜찮은 역자 해설이 들어있어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기이한 소설, 즉 “위어드 픽션”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돈내산 하실 독자는 이 책 말고 현대문학을 사셔도 나쁘지 않겠다. 12년 전에 나온 책이라 13편의 단편소설에 역자해설 및 연표 포함 380쪽이 10퍼센트 할인가 14,400원. 을유는 같은 조건으로 5편에 292쪽, 같은 가격이라 가성비가 좋다. 해설 및 번역의 품질 대비에 관해서는 노코멘트. 어떤 책을 고르든지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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