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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옌롄커. 이제 물리기 시작한다.
<일광유년>의 무대는 옌롄커의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바러우 산맥의 깊숙한 산골마을. 때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옌선생의 소설 속 시간과 장소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라기보다 무대가 되는 마을의 촌민들도 어째 비슷하다.
<레닌의 키스>는 촌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 장애인. <딩씨 마을의 꿈> 마을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주사바늘을 사용해 매혈을 하는 바람에 거진 에이즈 환자, <해가 죽던 날>에서는 집단 몽유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광유년>은? 주민들이 오랜 세월 물속 불소함량이 규정보다 17배 이상 높은 물을 마셔서 40세 생일 이전에 목구멍 막힘 현상이 발생해 조기 사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아마도 근대 중국에서 한 번 있었던 일을 옌롄커가 바러우 산맥 속 가상 마을 산싱촌에 적용했던 거 같다.
<레닌의 키스>, <직렬지>, <사서>는 1950년대의 극심한 한발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일광유년>에서 산골마을 산싱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시작한 전대미문의 한발을 극복하는 일과 주민들의 수명을 마흔 이상, 쉰, 예순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게 만드는 과업이다.
작품의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물처럼 단단하게>의 가오아이쥔, <작렬지> 밍량, <사서>의 주인공 아이, <레닌의 키스>는 류잉췌. 이들 모두 출세 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권력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일이라면 눈이 뒤집힌다. <일광유년>의 쓰마란(司馬藍)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司馬小小)를 필두로 역대 산싱촌의 촌장들은 자신이 촌장이 되기 위하여 별의 별 쇼를 다 한다. 쓰마란은 이럴 적부터 사랑해마지않던 연인 란쓰스 대신 현직 촌장의 비쩍 마르고 못생긴 딸 두주추이와 혼인한다.
그러니까 옌롄커의 바러우 산맥 속 작은 산골마을을 무대로 하는 작품의 특징이 <일광유년>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인데, 옌렌커 소설 읽기에 열심이었던 독자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일광유년>이 중국 근현대사의 궁상스러움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읽혔다는 말씀.
또 있다. 옌롄커와 비슷한 연배의 중국 작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 거의 대부분, 예컨대 찬쉐 같은 골 아픈 포스트모더니스트와 츠쯔젠처럼 서정적 여성 작가들 말고는 어쩌면 그렇게 소재와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한지, 내가 지금 옌롄커를 읽고 있는지, 류전윈인지, 또는 거페이나 위화, 쑤퉁인지 막 헷갈리는 거였다. 당연히 건국 이후 기근과 문화혁명을 소년기에 거친 영향 때문에 그렇겠지만 중국 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인기있는 작품 좀 읽었다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제 물린다. 그리하여 젊은 중국 작가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세계관과 시각을 갖고 작품을 쓰며, 옌롄커 시절의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필력을 보이고 있어 나름 부러웠다.
<일광유년>은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1년, 1년이 뭐야, 한 2~3년 담고 있다가, 그래도 옌 선생인데 싶어 읽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옌롄커 소설의 종합선물세트인 줄은 몰랐고, 960쪽에 달하는 속칭 벽돌책이라 어느 날인지 모르게 보름에 한 번 희망도서가 쏟아져 틈새 독서로는 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제 독후감 써 놓은 것도 많아 이 책을 비롯해 벽돌 또는 두 권짜리 장편도 읽어야겠다, 싶기도 했고. 문제는 술이다. 술을 덜 마시니까 시간이 남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책만 파게 된다. 아무래도 꾸준하게 알코올을 들이켜야 책 읽는 것도 적당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거 뭐야, 아직 작품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서론이 이렇게 길었다고? 좋은 얘기 하나도 없으면서? 그럼 시작해보자.
역시 바러우산맥 속 깊숙하게 자리한 인구 2백명가량의 작은 마을 산싱촌. 우리말로 하면 삼성촌(三姓村)이다. 란, 두, 쓰마(藍, 杜, 司馬) 이렇게 세 성씨로 구성된 씨족마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첫 촌장이 두과이즈. 이후 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로 이어진다. 즉, 두, 쓰마, 란 씨 집안에서 돌아가며 촌장을 맡았는데, 란바이수이 다음 촌장이 책의 주인공 쓰마란이다. 두씨 집안은 쓰마란의 윗대 두옌이 별 볼일 없지만 촌에서 기중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 촌의 상급 단위인 현의 주방장으로 진출해 이른바 공직에 오른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현과 산싱촌 사이의 통신원 역할도 하게 되어 촌 사람 입장에서는 촌장에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권세를 틀어쥐기 시작해, 그의 아들 두바이에게 통신원 자리를 물려주어 굳이 촌장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했듯이 상신촌의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이슈는 기근 탈출과 주민들을 마흔 살 너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최초의 처방은 두과이즈 촌장 시절에 쓰마샤오샤오가 얻어온다. 지나가는 길에 명 짧은 산싱촌에 거쳐 간 꼬부랑 할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그렇게 늙게까지 산 사람이 없어 아이들은 옛이야기로만 듣던 흰 수염의 산신령을 닮은 쪼글쪼글한 노인을 처음 보는 거라 몽땅 몰려나가 구경을 하고, 한 아이 쓰마란이 동네로 뛰어가 아버지한테 이를 전했다. 쓰마샤오샤오가 곧바로 노인을 쫓아가서 묻기를, “노인장은 어떻게 이리 오래 사십니까?” 흰 수염의 노인이 답하기를 “잘은 모르지만 집안 대대로 유채꽃을 키워 유채 나물, 잎, 유채기름을 늘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하오.”
쓰마샤오샤오가 이 말을 촌장 두과이즈한테 전해, 유채꽃 심기를 권유했지만 두존장의 나이 벌써 서른여덟, 얼마 가지 않아 꼴딱, 죽어버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도 촌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과이즈의 딸과 혼인한 쓰마샤오샤오는 촌장이 되자마자 유채 심기를 독려했다. 음식이 약이고 독이다. 유채 열매와 기름을 먹기만 하면 마흔을 넘어 쉰, 예순은 물론이고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들판 가득 유채를 심게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거대하고 거대한 메뚜기 떼가 바러우 산맥 일대는 물론이고 산둥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주식인 옥수수는 물론이고 유채까지 몽땅 거덜이 났다.
이때가 두옌의 말에 의하면 갑자년이라는데(p.762) 좀 이상하다. 20세기의 갑자년은 1924년하고 1984년이라 전혀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허구같다. 중국의 메뚜기 습격으로 시작한 기근이 펄 벅의 <대지> 1부에서 보듯이 1920년대에 확실히 있었지만 <일광유년>의 시대적 배경하고는 맞지 않는다.
하여간 그리하여 유채로 만수무강은 다음으로 하고 당장 생존하는 것이 크고 큰 위협이라, 읽기 참혹한 장면이 마구 등장한다. 어린 아이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내다 버리고, 이 아이들이 굶어 죽어 까마귀 밥이 되고, 어른들이 까마귀를 잡아 포식을 해 크게 배탈이 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현의 화상병원으로 가 돈 많은 환자에게, 장가든 남자 어른의 허벅지 피부를 도려 파는 것 등등. 질린다.
쓰마샤오샤오는 결국 기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 죽음의 그림자가 덥쳐 서른 후반의 나이로 죽는다.
이어서 촌장이 된 란바이수이는 촌민들의 조기 사망 원인을 땅의 악한 기운으로 자란 곡식으로 보고 400무畝(약 400마지기, 약 8만평)의 계단식 전답을 개간하려 한다. 근데 기근에 살아남은 촌민이 다 합해 백명 조금 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쓰마란의 꾀를 빌어 현의 루주임에게 별의 별 아부와 성접대를 통해 현 주민들을 대거 투입해 2백무 정도의 계단식 전답을 만들기는 한다.
그러나 개간한 땅에 심은 곡식을 먹어도 주민들은 여전히 마흔이 되기 전에 죽어버려, 란 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감한다.
마지막 촌장이 주인공 쓰마란.
쓰마란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곡식이 아니면 물이다. 물을 갈아 마시면 마흔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믿었다.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던 쓰마란 촌장이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고,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쓰마 촌장은 산싱촌 남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남자들을 모아 허벅지 피부를 팔게 했더니 도시로 나가 피부를 팔고, 도시 구경을 한 남자들은 촌의 수로 공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 식구들을 위해 촌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 셋짜리 기와집을 올려버린다.
이에 낙담해 세월을 죽이다가, 서른아홉 살이 되어 곧 죽을 처지에 달했을 때, 다시 주민들을 소집해 인정사정없이 수로 공사를 재개한다. 이번에도 돈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첫사랑 란쓰스에게 땅에 고개를 박으며 부탁한다. 도시에 가서 인육장사를 해달라고. 인육장사? 매춘을 말한다. 이 장면도 옌롄커 세대의 인기있는 작가들이 많이 사용해 질리는 건 마찬가지. 하여간 쓰스는 도시로 진출, 터미널 근처에 방을 얻어 맹렬하게 몸을 팔고, 에초 자기와 약혼했던 촌장에게 돈을 보내 소규모 운하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폭탄 같은 것을 살 수 있게 한다.
가진 고생과 역경과 주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촌장 쓰마란의 나이 서른아홉살도 막바지에 이른 날, 드디어 수로 공사를 완공, 링인천의 물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만, 어떻게 됐을까? 안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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