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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그날 저녁의 불편함
  •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 14,220원 (10%790)
  • 2021-11-22
  • :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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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생 네덜란드 작가의 데뷔작. 이이는 데뷔작으로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남부 노르트브라반트 주의 독실한(것처럼 보이는) 개혁파 개신교 농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네덜란드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 했다가 시, 소설을 쓰는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해 중도에 때려 치웠다고 위키피디아-영어판에 나온다. 소년 같은 외모와 성격을 가져 논바이너리를 선언했단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 나는 이 책을 읽는 게 불편했다. 원래 네덜란드 사람이 좀 우울하다.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는 화가 고흐의 초기작품에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게 많은데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같이 좀 음울한 분위기의 색상과 피사체, 그게 사람이 됐든 물체가 됐든 간에 하여간 우울하다. 이 책은 화자인 주인공 ‘나’ 야스 뮐데르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바로 전 시기까지의 소년기의 한 시절, 2~3년 간을 시간적 공간으로 하고 있으나, 야스가 처절하게 앓고 있는 변비처럼 답답하고, 뭔가 마음에 걸려 묵지근하고, 간혹 콱콱 얹힌다. 그러니 데뷔작이면서 다른 문학상도 아니고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덥석 미끼 물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시라. 아하, 그러고보니 부커-인터내셔널은 이것처럼 좀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좋아하나비여? 고기 안 먹겠다는 딸 입을 억지로 벌리고 탕수육 한 조각을 쑤셔 넣는 아빠 같은 거.


  이야기의 시작은 화자 야스가 열 살 때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벌어진다. 야스는 좀 더딘 아이였다. 학교 담임도 이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린 듯했다. 하긴, 시계보는 법을 익히는 데만 1년이 걸렸으니 사실 야스 본인도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숫자만 나왔다 하면 정신 헷갈리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이 뮐데르가家로 말할 것 같으면, 작가 레이네펠트네 가족보다 훨씬 더 진지한 개혁파 개신교 집안으로 부모, 특히 아버지가 권장하는 책은 딱 한 권, 성경 가운데서도 특정 파 판 성경이 유일했다. 당연히 일요일이면 가족 모두 잘 차려 입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했고, 거의 모든 일상에 성경”말씀”은 인용했다. 이건 가족 모두 마찬가지다.

  부모는 순서대로 아들-아들-딸-딸을 두었는데 각각 맛히스, 오버, 야스, 하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큰오빠 맛히스. 맛히스? 거 참 재미난 이름일세. 이렇게 휙 넘어갔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마티스”를 굳이 “맛히스”라고 우리말로 쓴 거 같다. 역자 ‘아밀’이 좀 재미난 사람이긴 하다. 맛히스. 맛히스. 그것 참.

  하여간 맛히스 오빠가 야스를 잘 돌보았던 모양이다. 야스가 제일 좋아하는 가족 구성원이 맛히스 오빠였으니. 큰 키에 힘도 보통이 아니라서 농사와 목축을 업으로 하는 집에서 벌써부터 제 몫을 단단히, 단단한 수준을 너머 대단히 단단하게 한 몫 하고 있었다. 언필칭 집안의 기둥감. 공부도 제법 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스케이트에 관한 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이번에도 친구 두어 명과 함께 동네 스케이트 시합에 나갈 예정이다. 호수에서 벌어지는 20마일짜리 경주가 출전 종목. 우승자에게는 겨자를 넣은 소 젖통 스튜 한 그릇과 올해 연도인 ‘2000’이 박인 금도금 메달을 준다.

  맛히스가 야스한테 말한다. “오늘은 호수 건너편으로 갈 거야. 쉿, 이건 비밀이다.” 하고는 야스만 보면 늘 짓는 다정한 미소.

  “나도 가고 싶어.”

  맛히스가 말한다. “네가 더 크면 데려가줄게.”

  이 대화를 읽는 순간, 독자는 짐작한다. 뭔가 큼지막한 게 있겠군. 호수에서. 특히 호수 건너편 쪽에서. 어쨌든 오빠는 야스한테 손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호수로 가고, 이날 손인사의 기억은 두고두고 되풀이해 떠올릴 것이란다. 그것 봐, 내 뭐랬어.


  여기서 하나 더.

  야스는 토끼를 키운다. 이름도 있는데 뭐 소개할 정도는 아니고, 하여간 자기를 두고 혼자 스케이트를 타러 간 오빠가 좀 밉다. 나한테 허용되는 스케이트 얼음은 축사 뒤편의 좁은 두엄 배수로뿐. 열살 나이가 애매해서 그렇다. 호수로 가기엔 어리고, 두엄 배수로 가기엔 쪽팔리고.

  야스의 토끼가 클 만큼 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식탁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대신 올릴 칠면조도 없으니 야스는 불안하다. 내 토끼, 내 토끼. 그래서 하느님한테 기도한다.

  “하느님, 내 토끼 대신 맛히스 오빠를 데려가시면 안 될깝쇼?”

  그래, 소설에서 불길한 소원은 언제나 이루어지는 법. 맛히스 오빠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압도적인 속도로 추격집단과 까마득한 차이가 날 정도로 선두를 질주했으면, 평소 화물선이 다녀 빙질이 무른 호수 건너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야스의 소원대로 된 거지만 야스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맛히스 오빠는 다음날 찬 시신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옆집 린 아주머니에게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를 좀 없애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했고, 대가로 시장에서 산 바삭바삭한 크리스마스 비스킷 전부와 라이스 푸딩, 아빠가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 그걸 묶은 80미터짜리 실뭉치까지 모두 옆집에 주어버렸다.

  야스는 말한다. 이때부터 공허가 시작되었다고. 맛히스 오빠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냄비와 텅 빈 샐러드 통 속에 담긴 채 떠나가버린 이틀 간의 크리스마스 때문에.

  오크 관에 담긴 오빠를 보며 동생 하나가 속으로 말한다. 함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다.

  “자, 이만하면 됐어. 장난 그만 쳐, 오빠.”

  청바지와 평소에 제일 좋아했던 스웨터를 입은 채 오크 관 속에 담긴 오빠는 그렇게 묻혔다.


  가족의 상실은 남은 자에게 당연히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이 집도 그랬다. 특히 부모에게. 보통 자식을 잃은 부부는 자주 거칠게 싸우고 많은 부부는 이혼을 선택한다. 자식 상실 책임을 서로에게 지우려 손톱을 세우다가, 갑자기 자기 잘못인 것 같은 진짜 고통의 시간을 서로가 위안해줄 여유가 없어서.

  이 가정에는 남은 삼남매가 있어 부모가 갈라서진 못해도 이후 야스-하나가 보기에 일체의 피부 접촉도 없고 부모간 “짝짓기”도 없다. 엄마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 것처럼 보여 날이 갈수록 여위기만 한다. 그리고 주인공 야스와 남은 오빠, 맛히스 오빠하고 비교하면 체격과 힘은 보잘것없지만 성격이 거친 오버 오빠의 주변에 자잘한 죽음이 생긴다. 야스가 열살 때부터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

  오빠가 키우던 기니피그도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여서 냄새가 나기 전까지 오빠 방에 숨겼다가 묻었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간 많은 동물이 죽는다. 이 죽음들에 오버 오빠와 야스가 개입되어 있다.

  야스는 지독한 변비로 고생한다. 아빠가 야스를 엎드린 상태에서 엉덩이를 들라 하고, 야스의 항문에 초록색 비누 조각을 굵은 손가락으로 집어넣는다. 네덜란드의 민간요법인 모양이다. 그래도 여간해 똥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여기까지만 하자.

  죽음과 배변, 사춘기를 앞둔 시기에 맞게 짝짓기와 2차 성징의 발현 등에 관한 관심. 이 모든 것이 맛히스 오빠를 상실한 가족을 덮치는데, 어쩌면 이보다 더 엄청난 시련까지 몰려온다.

  구제역.

  집에서 신경 써야 하는 가장 우선순위. 수백 두에 이르는 소들을 일시에 집단 살처분해야 하는 참담을 당해야 한다. 그렇게 당했다. 오버 오빠는 항의의 표시로 송아지 한 마리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버렸다. 그러나 방역원들은 모른 척 소의 머리에 충격총을 쏘고 죽었거나 덜 죽었거나를 가리지 않고 트럭에 싣고 떠났다.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았겠지.

  죽음, 죽음, 죽음은 또다른 죽음을 부르고, 또다른 죽음은 대규모 살상을 불렀다.

  과하게 우울하다. 죽음과 변비라니.

  흠. 이렇게 써야 부커상을 받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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