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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만 에르펜베크의 책을 세 권 읽었다. <카이로스>가 2024년에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해서 관심을 두었는데 정작 인상깊게 읽은 책은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였다.
딱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읽었다.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역, 그러니까 중부와 동유럽 지역의 현대사를 지낸 한 아기, 소녀, 청년, 중년, 노년의 이야기. 시대는 프란츠 요제프 1세 시절, 1902년 봄과 여름 사이에 태어난 여자 아이.
아이는 스페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시아에서 열여덟 살의 유대인 어머니와 가톨릭 교도 즉 유럽 원주민 아버지 사이에서 맏이로 난다. 유대 어머니가 갓 태어났을 때 이 가정의 비극이 시작했다. 유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1902년에 난 아이의 어머니.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그녀와 남편이 거실에 있고 아이는 보모가 아이방에서 돌보고 있을 무렵 어수선한 기척이 나 창 밖을 내다보니 집 밖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순간 덧문도 닫지 않은 1층 창문에 첫번째 돌이 날아 들어왔다. 남편이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니까 그곳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안드레이가 있어 그를 불렀더니 안드레이는 못 본 척해버렸다. 두번째 돌이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 남편이 부모한테 졸업선물로 받은 괴테 전집 9권 책등에 맞았다. 그래서 조금 상처를 입은 괴테 전집 9권은 <모든 저녁이 저물 때>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한다.
이어 안드레이와 청년들이 집 현관문 앞에 들이닥쳐 도끼질을 하기 시작한다. 부부는 피신할 수밖에 없다. 2층 아기방을 두드렸다. 보모는 문을 걸어 닫은 채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를 건네주는 것도, 아기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거부했다. 긴박한 순간에 부부는 할 수 없이 2층과 지붕 사이의 다락방으로 피신했고, 그 순간 도끼질에 산산조각이 난 현관문을 박차고 청년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사정없이 박살내기 시작했다.
다락방에 숨었다 해도 발각나 폭행을 당할 것이 틀림없어 부부는 맨손으로 천장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금 구멍을 낸 사이에 다락방까지 다가온 청년들이 문짝을 도끼질했다. 겨우 뜯어낸 지붕으로 먼저 아내를 올려보낸 남편이 점프를 했고, 순간 다락방의 방문이 도끼질 두어번에 조각이 나버렸으며 뛰어오른 남편의 팔을 붙잡은 그녀가 힘을 주어 끌어올리는 바로 그때, 안드레이와 함께 들이닥친 청년이 남편을 향해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러 그를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녀가 죽을 힘을 다해 남편의 팔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쑥, 남편의 팔만 아내가 있는 지붕 위로 불쑥 솟아오르고 그냥 고기 덩어리가 된 나머지 부분은 2층 창문에서 거리로 내던져졌고, 지나가던 행인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에 유대인 과부가 된 여인은, 아이에게, 훗날 1902년에 난 아이에게, 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마도 미국으로 갔을 거라고, 미국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이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사실 미국에도, 파리에도, 베를린에도 가지 않고 유대인 거주지역 안에 있는 집에서 안드레이를 비롯한 폴란드 청년들에게 난도질을 당한 채 죽어버린 다음 어머니가 남편의 상점을 이어 운영했는데, 아이가 점점 자라 당연한 듯 상점에서 일을 도왔을 것이다.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었을 때, 갈리시아 지방 칼 루드비히 철도의 35km 구간을 책임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하위 그러니까 11등급 철도 공무원 청년이 상점에서 유대인 여주인의 딸을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청혼했다. 청년은 매우 가난했으며 그럼에도 살기 위하여 이곳저곳에 빚을 질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결혼하면 유대인 여인이 내줄 혼인 지참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작 오직 법률적으로만 결혼하는 날, 청년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없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어도, 주변에 침묵이 퍼지는 걸 확인하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그건 보편적으로 종말과 관련한 ‘무엇’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혼 때도, 아기 그러니까 아버지의 손녀가 출생했을 때도 오지 않았다. 길이 너무 멀고 돈이 많이 든다고만 했다. 아내, 그러니까 아버지가 미국이나 아니면 파리,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있던 아이가 커서 혼인을 한 여자의 외할아버지도 오지 않았다. 손녀가 이교도와 결혼하는 날. 그는 길을 떠나 손녀를 축복하는 대신,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신부를 위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례인 시바를 치루고 있었다. 조상의 신이 보자면 그녀 또한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이 젊은 부부가 법률적으로 혼인을 하고, 아홉달이 지나 딸을 낳고 나서, 이제 아빠가 된 청년은 자기 주변에 침묵만 깔린 것을 확실히 알아챌 즈음해서,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으로 자기 빚을 다 갚을 수도 없고, 최하위인 11등급 공무원에서 10등급으로 승진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점점 자라 벌써 세상에 나와 여덟 달이 되고 처음으로 겨울을 맞았고, 그리고, 죽었다. 자다가 담요가 두꺼웠나, 똑바로 누워 재웠는데 사레가 들었나, 아팠는데 그것을 몰랐나. 그렇게 죽었다. 유아돌연사. 그건 지금도 잦은 빈도로 일어난다.
아이의 엄마, 아버지가 미국으로 간 줄 알며 산,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산 엄마는 그냥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등에 책가방을 메고 집은 나설 어린 여자 아이, 열살 먹어 쉬지 않고 조잘대는 꼬맹이, 청년들의 눈길을 한 없이 즐기는 처녀애, 그리고 늙은 여자가 될 자기 딸이 흙 세 줌과 함께 땅에 눕혀지고 그 위에 흙을 부은 거였다. 그렇게 땅 속에 죽은 아이를 묻고 돌아온 젊은 엄마는 유대인 관습에 따라 현관문 앞에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녀의 할머니한테 유일하게 물려받고 싶어했던 발 받침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앉곤 하던 발 받침대를 옆에 두고 꼬박 일곱 날을 기대 앉아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죽었나, 싶었을 때, 그녀는 집안의 물이란 물은 모두 바깥으로 쏟아버렸다. 죽음의 검은 천사가 검을 물에 담아 씻을 테니까. 담요로 거울을 덮고 모든 창문을 열어 놓았다. 아기의 영혼이 되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아기는 가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젖이 돌아 가슴이 뭉쳤다. 땅 속에 묻혀버린 아이를 위한 젖.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젖 때문에 그녀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만일 가능하다면 조상들의 신과 거래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녀의 몸에서 태어난 생명을 교환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신은 그녀가 건넨 것을 결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여기서 막간극이 벌어진다.
만약 예를 들어, 아이가 죽어가던 순간 그날 밤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바깥 창틀에 쌓인 눈을 한 줌 퍼다가 아기의 옷 속으로 밀어 넣었더라면, 그 순간에 창을 열고 은은하게 빛나는 눈을 바라보거나, 추위에 오그라든 창틀이 삐걱대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런 영감이 떠올랐을 수 있었을 텐데, 만일 정말로 창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한 줌이라도 퍼다가 아기의 가슴 그러니까 심장 부위에 밀어 넣어 자극을 했더라면 아마도 아기는 불현듯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소리를 지르며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둘 가운데 뭐가 됐든 아기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아기의 피부는 온기를 회복하면서 눈은 아기의 가슴에서 녹아버렸을 것이다.
다만, 만약이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작가는 결심한다. 창작자의 권한으로 만약이었던 것을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결심해버린다. 그리하여 때는 1918년. 아이는 16년 전인 1902년에서 190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죽은 것이 아니라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의 겨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전 국민이 곤궁의 골짜기로 떨어졌을 무렵, 이제 극도로 좁아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전근해 온 아버지를 따라 여전히 고도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조금의 식량을 얻기 위하여 밤새도록 배급소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 나이가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했던 시기. 그렇다고 아이에게 당연히 연인이 생기는 건 아니다. 패전해 곤궁에 떨어진 왕년의 제국 도시 빈에는 스페인 독감이 돌아 아이의 절친한 친구도 죽어버리고, 도시에서 넘쳐나는 빈에서 운구용으로 쓰이던 전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죽은 친구의 애인, 전장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돌아온 남자를 연모하던 아이는, 남자에게 온몸을 던졌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 주일을 견딘 후에, 1919년 1월 26일, 23시 17분경, 알저 거리 4번지, 북위 48.21497도, 동경 16.35231도, 빈 종합병원 앞에 멈춘 택시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의대 3학기에 재학 중인 페르디난트 G. 씨로 하여금 서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아이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갖다 대고, 정확히 그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짖는 소리에 화답하듯, 정말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게 해서, 죽었다.
이렇게 아기는, 소녀는, 젊은 여성은, 중년 부인은, 노인은 다섯 번의 삶을 20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프라하, 모스크바, 동베를린을 거쳐 역사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문장, 글이 매혹적이다. 배수아의 가필이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전에 인상깊게 읽은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떠올리게 만드는 빼어난 글과 20세기, 한 문장도 허투루 읽지 못하게, 그렇게 몰입하게 되는 작품. 이런 걸 뭐라 해야 하나? 아름답다고? 비슷한 느낌이다.
에르펜베크, 이제 이이의 단행본은 한 권 남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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