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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물고기》를 읽고 백일이 지나 다시 왕웨이롄을 읽는다. 인상깊은 작가였나보다. 이이의 이름이 눈에 밟히자마자 서슴지않고 집어 들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언제나 기대만큼 미치지 못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책물고기》가 2015년, 《생활수업》이 2022년. 7년 후의 작품들. 그동안 왕웨이롄은 광저우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직업이 있으면 아무래도 긴 작품을 쓰기 힘들겠지. 전작에는 작품이 제법 긴 분량의 단편을 실은 소설집이었던 반면, 이번 책엔 한 편 정도만 분량이 있고 나머지 일곱은 그렇지 않다. 페이지 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뭐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일 긴 작품 <침묵천사>가 제일 기억에 남고 어제 읽었는데 오늘 새벽에 독후감 쓰려니 <침묵천사> 말고는 기억에 남은 작품이, 아쉽게도, 없다. 다시 뒤적이면 생각이야 나겠지. 하지만 탁, 떠오르는 게 없는 바에 새삼스레 또 뒤적이고 싶지 않다. 그제 읽은 주이현의 소설집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는 미리 페이지 표시를 해둔 인용 빼고 전부 기억이 나 바로 전에, 한 십분 전쯤에 독후감을 썼다. 그러니 왕 선생은 조금 더 분발하셔야겠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열 받지 마시라.
<침묵천사>. 대학 다니며 연애를 해, 작가가 말한대로 쓰자면, 섹스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더니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 듣는 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발성 기관에 하자가 있는 거 같다. 너무 젊어서 결혼을 하면, 예전 봉건시대야 의무사항이라 이냥저냥 평생 살 수 있었다고 쳐도, 지금 시대는 한 때의 기분 또는 흥분에 좌지우지된 경우가 많고, 이 커플 역시 젊음 특유의 불길을 감당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까지 이른 전형적인 젊은 부부로, 사는 내내 폭풍 같은 부부싸움으로 일관하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아들이 나온 것에 결정적으로 실망한 아내가, 자기 인감도장 찍은 이혼서류를 내밀고 그냥 나가버렸다. 이래서 홀아비와 어린 아들 둘만 사는 가족과 아파트가 무대.
작가가 남자니까 이 홀아비의 직업도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착해 빠진 남자. 중국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 이 집도 부부가 함께 벌어 아파트 융자금을 갚아 나갔다. 그러다 아내가 나가버려 혼자 벌이로 융자금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아파트를 팔까 했지만, 아들 샤오이한테 엄마의 기억이 담긴 집을 지켜주고 싶어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남는 방 하나를 월세 주기로 했다. 이를 알고 아빠의 절친이 자기 고향 친척 가운데 괜찮은 여성 샤오징을 소개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 한 집에 열 살 정도 먹은 사내 아이와, 아이 아빠, 그리고 비교적 젊은 여성이 동거하는 입장.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지? 게다가 아빠는 여지없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점잖고, 예의 바르고, 영낙없는 책상물림에, 떠난 아내 이후에 다른 여자를 안아본 적도 없는 순정파이자, 아이고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다. 말 못하는 아이야 제목대로 침묵하는 천사니까 착하기 이를 데 없고, 이런 집에 함께 살기로 절친이 보증한 여성이니 또 말 해 뭐할까, 이하 동문이지. 이 정도면 읽으면서 이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대로, 순서대로, 각본대로 똑바로 간다면 어찌 왕웨이롄일소냐, 하는 심정도 든다. 그렇겠지?
중국의 저 북서쪽 끝자락 산시성 사람 윌리엄 왕의 솜씨가 좋다. 읽는 맛도 있고 다 그런데, 전작 《책물고기》 만큼은 아니었다. 혹시 모른다. 저번엔 기대하지 않았고, 이번에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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