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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스테이션 일레븐
  •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 14,220원 (10%790)
  • 2016-07-08
  • :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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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리 세인트존 페어뱅크스는1979년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머빌 섬에서 캐나다인 사회복지사 엄마와 미국인 배관공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번째 이름 세인트존은 할머니의 성씨 성 요한에서 가져왔다는데, 엄마의 엄마인지 아빠의 엄마인지는 영어로 알아낼 수 없다. 이 사람들이 그런 개념이 별로 없다.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가족은 역시 작은 섬인 덴먼 섬으로 이사해 청소년기를 홈스쿨링으로 통과한다. 학교도 다녔는지 위키피디아에 18세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유명한 토론토 댄스 시어터 학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지만 잘 안 된 모양이다. 그래 이이의 사진을 보면 작은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체형이 무용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졌는지, 기대치를 재능이 받쳐주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무용을 그만두고 소설쓰기를 시작, 2002년부터 작품을 발표해 <스테이션 일레븐>이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이 내셔널 북어워드, 펜 포크너 소설상, 베일리스 여성 소설상 후보로 지목되었다가 미끈덩, 바나나 껍질을 밟았지만 대신 공상과학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아서 C 클라크상과 토론토 도서상을 받았다고. 받은 문학상의 상금보다 더 대박을 친 것은 HBO Max가 <스테이션 일레븐>을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했다는 거. 그게 펜데믹 신드롬 중이던 5년 전, 2021년 12월이었다.

  에밀리 세인트존 페어뱅크스는 “Executive Recruiter”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잘 나가는 회사원 케빈 맨델과 결혼해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로 이름이 바꾸고 딸 하나를 두었지만, 2022년 갈라섰다. 이혼 후 뉴욕에 살고 있다는데 2025년에 한 책방에서 로라 바리소지라는 사람과 재혼했다. 배우자의 이름만 보면 동성 결혼인 것 같다.


  이 책은 2014년에 출간했다. COVID-19 이전 시절이지만 이미 세상은 SARS를 겪은 후. 인수공통전염성 바이러스 질환으로 중국 윈난성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SARS-CoV-1이라 명명했다. 약 1년간 지속한 펜데믹에 8천4백여 명이 감염되었으며 치사율은 11%였다. 이후 17년만에 중국 우한에서 두 번째 변종 바이러스 SARS-CoV-2를 확인했으니 이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라 했다.

  에밀리 맨델은 바이러스로 인한 인간의 소멸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 이것을 소재로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쓴 사람이 맨델 한 명은 아니겠지만 그런 작품들 가운데 돋보이는 수준이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중국과 인근 동남아시아를 제외하고 SARS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가 캐나다였다. 251명의 환자가 발병해 이 가운데 43명이 사망, 평균보다 높은 치사율인 17퍼센트를 기록했으니 이런 작품이 나올 만했을 듯하다.


  작품은 한겨울 밤 <리어왕>을 공연하는 토론토의 엘긴 극장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리어 역을 맡은 배우는 51세의 아서 리앤더. 연극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배우로 더 명성을 높였다. 한때 잘 나가던 영화배우답게 세 번 결혼했고 지금 세 번째 이혼 소송중이다. 이이가 맨델처럼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속한 작은 가상 섬 델리노 출신으로 (작가처럼)무용이 아니라 연기를 배우러 뉴욕으로 향했다가 젊은 시절엔 사서도 한다는 고생 끝에 단역에서 시작해 한때 스타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찌그러져 이제 뉴욕 브로드웨이도 아니고 토론토에 와서 리어를 공연하고 있는 신세다.

  공연일. 아침부터 아서는 피곤했다. 사흘 동안 불면증이 심했다. 나른하고 탈수증세가 있는 아서. 그럼에도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어 먹고 샤워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극장에 출근했다. 눈보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맞는지 회색빛으로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아있다. 아서는 <리어왕> 공연만 끝나면 캐나다와 미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스라엘로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두번째 처 엘리자베스와 아들 타일러가 살고 있는 곳. 함께 살지는 못하겠지만 자주 타일러를 보고, 함께 여행하고, 캠핑도 가고, 영화 속 행복한 부자관계를 연출할 생각이다. 그러나 아서에게 행복은 주어지지 않는다.

  4막, 왕이 실성하는 장면에서 머리에 꽃을 꽂고 남루한 넝마를 입은 리어왕, 아서는 대사 없는 배역인 어린 시절의 코딜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글로스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기둥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지만 거리가 맞지 않아 팔이 기둥에 세게 부딪혔다.

  “허리 아래로는 켄타우로스야.” 아서가 엉뚱한 대사를 하고 있는 것을 관객석 제일 앞자리에서 보고 있던 전직 파파라치, 연예담당기자이자 지금은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하여 배우고 있는 건장한 남자 지반 차드하리가 알아챈다. 지반의 머리 속에는 생명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차올랐고, 객석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뒷자리에 앉은 관객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망설이지 않고 무대로 뛰어올라가, 아서를 똑바로 눕히고 맥이 없음을 확인하더니, 기도를 확보한 다음 심폐소생술, CPR을 시작한다. 곧이어 객석 중에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무대에 올라 지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다. “심정전문의 월터 지코비요.”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얼마 없다. “지반 차드하리입니다.”

  조금 후 응급구조대가 도착해 두 시민을 뒷자리로 밀려가고 아서는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그 전에 지코비 박사는 선고했다. “밤 9시 14분. 사망했습니다.”

  무대 위 응급상황을 알아차리고 심폐소생술을 한 용감한 시민이 누구인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고, 급성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아서 리앤더는 모스크바에서 도착한 여객기 안에서 조지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2백여 명의 치명적 호흡기 전염병 보균자가 득실거리는 종합병원으로 실려갔고, 북미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펜데믹이 시작하는 바로 그날, 그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대부분 이날의 공연에 직간접으로 관련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일이다. 문명의 몰락은 그렇게 왔다. 조지아 바이러스. 인간의 문명을 모두 파괴해버릴 공포의 바이러스가 왜 하필 조지아에서 시발했을까? 이오지프 스탈린의 고향이라서?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순식간에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잠복기간이 겨우 몇 시간.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흘, 보통 사람이라면 이삼일 안으로 몸에서 생명을 뽑아가는 바이러스가 토론토를 덮쳤다. 이건 뉴욕과 LA를 비롯해 모든 미국의 대도시도 마찬가지라는 말과 같다. 토론토 사람들은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메웠고, 이미 가득 찬 공항 행 고속도로 위에서 추운 겨울 폭풍을 차 안에서 견디다 몇몇은 행복하게도 가스 질식으로 죽었으며 몇몇은 가솔린이 다 떨어진 다음에 얼어 죽었다. 대부분은 걸어서 공항까지 도착했지만, 공항에는 “바이러스 감염지로 출입을 금함”, 이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을 뿐이라 기력이 다해 그냥 길 위에 쓰러져 유행병 증상으로 체온이 올라 죽었거나, 얼어 죽었거나, 하도 하가 치밀어 열 받아 죽어버렸다.

  화가 지망생 시절에 아서와 결혼한 첫번째 아내 미란다 캐롤은 이혼 후 선박회사에 입사해 맹활약한 끝에 중요한 경영진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평생 그림 대신 그래픽 노블을 만들었으니 <스테이션 일레븐> 이 책의 제목이다. 작품을 최고급 종이와 잉크로 자비 출판해 2권 열 세트 한정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두 세트를 전남편 아서에게 선물했다. 아서는 이 중 한 세트를 이스라엘에 사는 아들에게 보냈고, 한 부는 가지고 있다가 무대에서 심장질환으로 죽은 후, 대사 없는 어린 시절의 코딜리아 역을 하던 아역배우 커스틴 레이먼드의 손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등장한 주요 인물.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문명의 몰락 이후에 삶을 이어갈 사람이, 이스라엘에 살다가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려고 토론토행 비행기를 탔다가 현지 공항의 바이러스 오염 때문에 아이오와 공항에 내려 목숨을 구한 아서의 아들 타일러. 코딜리아 역을 했던 아역배우 커스틴. 그리고 바텐더를 하면서 응급구조대원이 되기 위하여 생명연장기술을 배우고 있는 지반 차드하리.

  여기에 한 사람을 더 보태야 한다. 아서의 가장 친한 친구 클라크 톰슨. 한 시절 아서와 함께 연기를 공부했지만 도중에 길을 바꾸어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가 된 현명한 남자. 문명 몰락 이후에는 바이러스가 침공하지 않은 새번시티 공항에서 지난 문명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고 책이 끝나는 문명 후 19년, 일흔 살이 될 때까지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지낸다.


  바이러스로 인한 문명의 몰락. 인구의 대부분이 한 번에 사라지면 제일 먼저 닥칠 것은 약탈과 싸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살인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행위 모두 각자가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며, 자기 DNA의 연속을 위한 본능이다. 세상은 또다시 남자가 지배할 것이다. 최선의 미덕은 힘과 무기가 되리라는 건 자명한 상식이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런 야만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터. 이이가 만든 것이 유랑극단. 문명은 이미 사라졌을지언정 아직 예술을 기억하는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전문으로 공연하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아 소규모 단위로 모여 사는 씨족과 부족 수준의 커뮤니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

  물론 이들도 다른 인간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무기를 들고 보초도 서고 경계도 하며 유랑의 길을 떠돌며 산다. 그래도 작가 맨델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문명 몰락 이후에도 누군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대표적인 문명이라고 하면 그것은 “빛”. 아서의 아들인 것이 확실한 새로운 영적 지도자가 찾고자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빛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구하려 하는 빛은 어둠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진정한 빛, 전기였다. 그걸 누가 만들어내는지는 직접 확인하시옵고.

  문명 몰락. 은근히 재미있다. <스테이션 일레븐>도 그렇고, 좀비에 의한 문명 몰락을 그린 콜슨 화이트헤드의 <제1구역>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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