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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기차의 꿈
  • 데니스 존슨
  • 15,120원 (10%840)
  • 2025-12-10
  • : 2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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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헤일 존슨. 미국 국무부와 미국 정보부, CIA 등에서 일한 아버지 때문인지 1949년에 서독 뮌헨에서 출생해 필리핀, 일본, 미국 워싱턴 DC 교외에서 살았다.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인 아아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레이먼드 카버를 사사하며 예술석사 MFA를 취득했다. 그러나 20대 시절 존슨은 약물과 알코올에 흠뻑 젖어 살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창작마저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약물과 알코올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중독자들도 그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 그러나 존슨은 스물아홉 살 때인 1978년에 완전 금주를 시작해 성공했고, 83년엔 기타 약물도 끊어버렸다. 여간한 독종이 아니다. 시, 소설, 단편소설, 희곡, 에세이 등을 남겼다. 이름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두 번 퓰리처 상 최종심까지 올라갔다. <기차의 꿈>도 두 권 가운데 하나.

  지긋지긋하지도 않나, 세 번 장가들었고, 좋아했던 술이 나중에 심통을 부렸던지 2017년 5월 캘리포니아에서 간암으로 죽었다. 죽고 나서야 미국 의회도서관 소설상을 받았다. 출판사 다산책방은 당연히 판매 목적이겠지만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 믿거나 말거나.


  <기차의 꿈>은 장편소설이라 주장하지만 노벨라, 중편 정도로 봐야 옳을 듯하다. 주인공은 로버트 그레이니어라는 남자. 막이 올라갈 시점은 1927년 여름. 아이다호 팬핸들 스포켄 국제철도 공사장. 흑인 노동력을 대신해 철도 가설을 위하여 대거 수입한 인력이 중국인. 이 현장에서도 중국인 노동자가 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을 받아 그를 죽여버리려는 백인 노동자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세 명, 철도회사 간부 시어스와 노동자 젤루이스 그리고 그레이니어는 모이강에 건설중인 50피트 높이의 다리를 중국인을 끌고 올라가 다리 아래 흐르는 급류에 던져 버리려 했다. 다리 꼭대기까지 끌고 가기는 했는데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에 중국인이 잽싸게 철골 빔을 타고 내려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어스 씨가 권총을 네 발 발사했지만 이미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레이니어는 찜찜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가 중국인을 직접 처형하려고 해서? 천만의 말씀. 그레이니어가 가책을 느낄 만큼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도망치면서 자기한테 강력한 저주를 내렸을까봐 그게 걱정이 될 뿐이다. 그 다음에야 자신이 괜히 광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을 알아차렸다. 아내 글래디스가 갓난 딸 케이트를 넉 달 전에 낳았다. 애 키우는 젊은 남자가 옳고 바른 일만 해도 아차 하는 사이에 부정탈 게 많고 많은데 함부로 처형 팀에 합류하다니. 이거 뭐가 잘못된 건 확실하다.

  아니나 다를까, 큰 산불이 나고, 그게 자기가 힘들여 번 돈으로 마련한 1에이커의 땅에 지은 오두막과 밭까지 번져 아내와 딸은 흔적도 없이 타 재가 되어버렸다. 그건 좀 나중 일이지만.


  1917년 여름이면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레이니어가 일하는 철도 공사현장에는 전쟁 이야기도, 참전하자는 동요도 없이 지나갔다. 그런 세월이 아니라 그런 장소였다. 중국인 처형 미수가 있고 41일이 지나 이들이 만든 다리를 기관차가 빽빽거리며 달려 지나갔다. 깊이 60피트 협곡 위 112피트 길이의 허공을. 이 다리를 건설해서 철로를 11마일 단축할 수 있었다. 그레이니어는 일이 끝나 한편으로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동료들처럼 환호와 환성을 질렀다.

  이어서 1920년에 워싱턴주 북서부 로빈슨협곡 다리 보수공사를 거쳐 심슨 컴퍼니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 목재 운반일을 했다. 이때가 35세. 여름 일이 끝날 무렵 그간 받은 돈을 모두 집으로 보냈는데도 성실한 그레이니어가 받을 돈이 무려 4백달러에 달했다. 때마침 오한 환자가 급증해 1897년 독감유행처럼 번질까봐 산꾼대장이 보너스 4달러를 주며 산꾼들을 집으로 보냈다. 집에 가보니 이미 아내와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음.


  유타 아니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레이니어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모두 죽어 혼자가 되었다. 1886년에 그레이트 노턴 철도를 타고 새로운 가족이 될 아이다호 프라이 마을에 있는 고모네 집으로 들어온 소년은 고모부의 성 그레이니어를 따랐고, 이름도 고모부와 같이 로버트 그레이니어로 정했다. 프라이 마을에는 철도 공사를 위하여 백명 너머 중국인들이 살았다. 1893년에 철도가 완공되자 프라이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마을에서 추방해 이들은 서쪽 30마일 떨어진 몬태나로 가 훗날 차이나베이슨이란 동네를 이루었다. 로버트의 고모와 고모부는 이미 세상을 뜬 1899년에 프라이는 이턴빌과 합병해서 보너스페리로 불렸다. 로버트는 보너스페리 학교에서 글과 셈하는 법을 배웠으나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이 소년이 살아온 이야기. 작가 정여울은 그걸 파노라마라고 평했다. 고독한 남자가 살아온 파노라마 같은 삶의 이야기? 20세기 초반에 그런 사람이 한 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뭐 그런가 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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