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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거품
  • 마쓰이에 마사시
  • 15,300원 (10%850)
  • 2026-01-15
  • : 3,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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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12월 도쿄에서 태어난 개띠 남자 마쓰이에 마사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들어가 연년세세 높은 고과를 받은 모양이다. 해외문학 시리즈를 론칭하고, 계간지 창간에 힘을 보탰으며 여기저기 편집장을 역임하다가 2010년 퇴직했다. 그의 편집 실력을 알아본 게이오 대학은 2009년부터 몇 년 간 초빙교수로 강단에 세우기도 했다. 마쓰이에는 그러나 퇴직과 더불어 창작을 시작해 2012년에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신쵸샤에서 출간하는 잡지 “신초”에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2013년 이 작품으로 일본 최대의 우익 신문 요미우리가 주최하는 요미우리 문학상을 받았다. 54세에 소설쓰기를 시작했으니 시작은 비록 늦었지만 이후 열심히 작품을 쓰고, 쓰는 것마다 일정부수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인기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등극했단다.

  <거품>을 2021년에 발표했으니 마쓰이에가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62세. 뭐 물론 글을 쓰기 전에 편집 일을 열라 했다니까 글의 흐름, 그러니까 세월에 따른 문법의 변화에 따라갈 수 있기는 했겠지. 그런데 글, 특히 픽션이란 것이 자신이 잡지 또는 작품을 편집할 때와 직접 쓸 때, 이 두 가지 경우는 거의 완벽하게 다른 일일 걸? <거품>이 이이의 다섯번째 장편소설인데, 나는 책을 다 읽기 전에 이이의 나이, 출생지, 가방끈 같은 거 하나도 몰랐으니 지금 전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팍, 느낀 것만 이야기하는 바로서, 작품 곳곳에서 저 오래 전부터 유독 일본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보인 사소설의 경향성이 문득문득 찾아냈다는 거다. 그러면서, 2021년 작품이면 요즘 작가일 터, 거 독특하네. 이렇게 쑤석거렸다는 거 아냐? 58년 개띠 작가한테 말이지. 70년 개띠도 아니고 원조 개띠.


  막이 올라가면 가정집 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은 사람은 십오세 청소년 가오루. 남자 아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욕실만이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는 가오루. 소년은 도쿄에서 나고 자라 지금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다. 재학. 학교에 적을 두긴 했어도 1학기 초부터 등교를 하지 않고 있다. 가오루가 다니는, 아니지, 적을 둔 학교가 유별나게 수컷들의 세상인 밀림, 일찍이 모리스 샌닥이 이야기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서 그런 건 아니다. 군복 같이 흰 플라스틱 칼라를 목에 댄 검정색 교복에 흰 플라스틱 칼라를 달고, 똑 같은 모자를 쓴 채, 딱 몇 시까지 등교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유도와 검도를 필수과목으로 배워야 하는 대학진학 기계들이 모인 곳. 검정 사각형 같이 딱 규격화된 인간들이 규격화된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하여 규격화된 방법으로 애들을 조지는 곳. 이게 너무 싫은 거다.

  이것도 스트레스. 가오루는 습관적으로 공기를 많이 흡수한다. 흡수한 공기가 모두 폐로 들어가면 형관 내 산소농도가 높아져 더 건강하게 될 텐데, 그러지 못해서 소화기관으로 넘어간다. 공기는 위장과 소장을 거쳐 대장에 집중했다가, 가뜩이나 대장에 모인 섬유질 소화물과 유산균이 발효하여 생긴 가스와 함께 다량의 방귀를 생산한다. 정말 이런 이상 기질/병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세상 인구 70억 명가운데 뭐 있기는 하겠지. 하여간 가오루는 욕조에 몸을 구부리고 앉아 배에 힘을 빡, 주면 물 속에서 거품이 뽀그르르 올라온다. 꽤 큰 거품. 그게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폭, 터져 대기의 흐름을 타고 사라질 때까지 가오루의 몸을 형성하는 일부였다니 기분이 새롭겠지? 웃기게도 책에서 가스 거품이 터질 때 폴폴 풍기는 냄새는 1도 묘사하지 않았다.


  가오루의 부모 두 양반 다 학교 교사. 가오루가 집에 가서 나 학교 안 다니고 싶어, 라고 딱 꺠놓고 이야기했다. 잘했다. 확실하게 말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게다가 특히 아빠가 좀 깬 인간이라. 좋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래?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는 거 아냐? 대학은 안 가더라도. 그리하여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친척 가운데 도쿄에서 가장 멀리 사는 사람한테 보내기도 부자간에 합의했다. 엄마의 반대가 좀 있었지만 대가리 다 큰 자식한테 이기는 엄마 봤어?

  아빠가 자신의 막냇삼촌한테 전화를 해 승낙 받았다.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7백km 이상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마을, 사리하마. 그러니 가오루의 막내 종조부가 사는데 거기서 재즈 카페를 열고 있다.

  가오루의 할아버지가 아홉 남매 가운데 맏아들이다. 다 합해 아들 여섯, 딸 셋. 가네사다가 막내. 가네사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당연히 육군에 징집되어 만주 괴뢰국에 주둔했다가 패전과 동시에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 있었다. 불쌍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일 불쌍한 처지로 떨어졌던 인종은 소련에 전쟁포로로 잡혔던 패잔병들이었다. 독일군 포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혹은 중앙아시아 벌판에 그냥 떨궈놓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 포로들이 몇 년이 지나 거의 해골바가지 수준이 되어 어떻게 독일에 있는 집으로 갔는지 아시나? 걸어갔다. 일본 패잔병들은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가네사다의 경우에 바이칼 호수 근처로 데려가 벌목 작업을 시켰다고. 소련 병사가 하는 이야기가 기막히다. “너네 나라에서 너네들을 돌려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아.” 패전 일본은 자기들 살 방도를 찾기에도 바빠 쉼 없이 눈알을 굴렸을 뿐 아직 살아있는 병사들의 안위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군에 잡힌 병사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소련군에 잡힌 병사들은, 일본 정부에서 생각하기를,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이들이 일본으로 복귀하면 일본 적화의 분자로 활동하게 만들기 위해 철저한 빨갱이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돌아와도, 만일 돌아온다고 해도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거나 시행하는 직위에는 절대로 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세상은 냉정시대였거든.

  1950년대 초에 귀국한 가오루의 막내 종조부 가네사다가 이런 포로 출신이었다. 어디서도 가네사다를 고용하지 않았다. 큰형 구와타로를 비롯해 남매들도 가엽게 생각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막둥이를 바라봤다. 이러니 어디 사람이 살 수 있나. 성격은 살면서 여러 번 바뀐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거. 고쳐 쓰지도 못하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 박힌 거는 아니잖아?) 가네사다는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곳이 저 남쪽의 해안도시 사리하마.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동네에 가서 선뜻 지원한 곳이 보험회사 외판원. 자기도 말주변이 이렇게 좋았는지 몰랐는데 작은 도시에서 거의 탑 급으로 실적을 올렸다. 기본급 외 성과수당으로 상당한 돈을 벌어, 벌어봤자 외판원 수입이니 큰 돈은 아니었어도 처자식 없이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한 가네사다는 번 돈을 계속 모아 50대 초에 원래 우유판매점이었던 건물을 사 거기다 재즈 카페 ‘오부브’를 열었다.

  그렇다고 도쿄의 사나이 가문, 사나이가 “진짜 사나이”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의 가문 이름이 그렇다, 사나이 가문에 완전히 돌아선 건 아니고 중요한 관혼상제 때는 참석하려 애썼다. 그렇게 살았다.


  ‘구두 くつ’의 러시아 말인 ‘오부브’를 혼자 운영해온 가네사다. 여름에는 해수욕객이 많아 손이 좀 달린다. 말이 재즈 카페이지 점식에 간단한 식사와 커피, 저녁에도 간단한 식사와 주류 같은 걸 파는데 큰 돈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 죽는 비용, 즉 병원비와 숨 넘어갈 때까지의 간병비만 있으면 된다. 그래 세상 살면서 이젠 아무 바라는 거 없이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여유작작하게 사는 데, 우울한 표정을 한 30대 정도의 남자가 카페에 들어왔다. 세번째 주인공 오카다.

  오카다는 불쑥 나타난 것처럼 어느 날 불쑥 사라질 수도 있는 사람. 그게 5년 전이었다. 5년이 흘렀지만 아직 떠나지 않았다. 물론 소설이니까 가능하겠지만 마치 카페에 최적으로 맞춤한 솜씨와 부지런함을 갖춘 인물이다. 게다가 잘 생겼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니까. 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가네사다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카다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이거 뭐야? 독자로 하여금 오카다의 정체가 사람 죽이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거야? 아니면 살인범 또는 살인범에 가까운 범죄자인데 지금 몸을 숨기고 있다는 암시야? 끝날 때까지 작가는 이이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는다. 카페를 떠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결국 가네사다는 자기가 죽으면 카페와 모든 재산을 오카다에게 물려줄 생각도 한다.

  이때 가오루가 막내 종조부에게 몇 달만 신세를 지겠다고 연락을 했고, 기차타고 해변에 도착해 세 남자의 자잘한 살림을 시작한다. 가오루는 당연히 짬짬이 구두 카페에 나가 서빙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고, 조금씩 오카다에게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운다. 15세 사춘기면 이제 이성에 관한 호기심도 지극할 때. 한 여성에 대한 환상도 생길 만하다. 물론 아직 대장에 가득 고인 가스 때문에 방귀가 뿡뿡 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한 소년은 성장하고, 종조부는 늙어가고, 오카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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