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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디윗은 2000년에 장편소설 가운데 제일 먼저 발표한 <최후의 사무라이>가 제일 유명하다. 이 책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 가운데 29번째 자리를 철퍼덕 깔고 앉았다. 헬렌 디윗이 비록 외교관의 딸로 유소년기에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같은 라틴 아메리카를 누비며 성장해, 옥스포드 대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을지언정, 졸업 후 소설 <최후의 사무라이>를 쓰는 동안, 부모가 독립한 자식을 지원해주지 않았는지, 디윗 자신이 도움을 바라지 않았는지 하여튼, 1957년생이니까 PhD까지 빠르면 1985~7년 정도에 공부를 마쳤을 터이니, 소설을 완성한 1998년까지 사전에 실린 단어에 딱지 붙이기, 회사 복사 담당, 던킨도너츠 직원, 변호사 사무실 따가리, 세탁 잡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단다. 위키피디아에 그렇게 써 있다. 던킨 도너츠 파는 박사님. 우리 같으면 생각도 하기 힘들 텐데, 이거 참 뭔가 부럽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여간 좀 낭비인 건 확실한데 거 생각이 복잡하네. 하여간 끝이 좋았으니 됐지 뭐.
여차하면 유명세를 타게 해준 <최후의 사무라이>에 이어 1999년에 두번째 장편소설 <피뢰침>을 완성하고 2003년에 출판 계약서에 엄지손가락에 인주 듬뿍 묻혀 지장을 꾹 누른다. 그런데 이게 책이 안 나오는 거라. 결국 좀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 2011년에야 다른 출판사 인쇄기를 통해 책이 나온다. 그리하여 비록 2011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난 세기에 완성한 작품답게, 작의 무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이다. 작품 속에 테스크탑도 나오지만 1990년대니까 PC와 별도로 워드프로세서라는 문서 작성기도 등장하고, 1분에 몇 글자를 오타 없이 타자하느냐 하는 것이 특히 여직원의 능력 척도 가운데 하나인 장면도 나온다. 좀 후진 동네, 후진 직장이었던 듯하다. 80년대라면 이해가 가는데 말이지.
우리나라는 아직 십년 정도의 세월이 더 필요했지만 이때 미국의 기업에서 상당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 사업장 내 성희롱 문제였다. 앗,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자. 주인공 먼저 등장시켜놓고 보자.
주인공 조. 막이 올라가면 장소는 미국, 미주리 주의 유레카. 조는 32세, 외판원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판다. 12권짜리와 15권짜리. 미주리에 유레카라는 도시가 정말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한 조는 6개월 동안 한 질은커녕 한 권도 팔지 못한다. 맨 농사 짓는 집만 있는데 누가 책을 보고, 책을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등장인물이나, 나오는 배경 같은 것이 궁금해 백과사전을 들춰보겠느냐고? 조가 생각해보니 이건 자기 잘못도 아니고, 상품이 후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전하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만 모인 것이 첫째요, 그들이 배운 게 없는 것이 둘째요, 도무지 호기심이란 걸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 합해 미주리 유레카 인간들 한테는 안 되는 거다. 그러나 기백이 하늘을 찌르는 조. 그는 생각을 달리해 빛나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일렉트로눅스사의 전기청소기의 가까운 대리점을 찾는데 그게 하필이면 플로리다에 있다. 어쨌냐고? 거기까지 갔다. 가자마자 트레일러 한 대 임대해서 숙소로 삼고 과감하게 대리점으로 직진, 그날로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얼마전에 플로리다에 허리케인 에드나가 휩쓸고 지나가 거의 모든 집이 홀라당 떠내려갔거나 완전한 침수피해를 입어 모든 가전제품을 싹 교체해야 하는 처지가 됐고, 모르긴 해도 중앙/지방정부에서 보조를 해주었겠지, 집을 수리하는 것과 동시에 전에 썼지만 이젠 못 쓰게 된 전기청소리를 신품 일렉트로눅스 청소기로 썩 개비 해버린 상태였다. 아뿔싸, 조가 한 발 늦었다. 플로리다 주민들은 조가 청소기를 들고 나타나면 일렉트로눅스 전기청소기가 얼마나 튼튼하고 성능도 좋은지 정말 잘 쓰고 있다고, 커피와 차, 호박 와플 같은 걸 대접해주어 호박 와플이라면 이젠 질려버릴 정도였다나? 그래서 청소기 딱 한 대 팔았다. 새로 플로리다로 이사온 집에.
낙담한 조. 그저 트레일러에 히루종일 박혀 엉뚱한 공상만 한다. 누군지 허리케인 에드나가 물러가자마자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아 온갖 가전제품을 팔아먹은 전임, 몇 대 전임도 아니고 조 바로 앞에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간 운 좋은 세일즈맨을 부러워하다가, 진짜로 엉뚱한 공상을 시작한다.
(여기서 정중하고 진실하게 말씀드리는 바, 허리 아래 이야기 싫어하시는 분과 만 19세 미만이신 분은 나중에 다른 말씀하지 마시고 이쯤에서 읽기를 마치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상 시작.
예를 들어 담벼락이 있다고 치자. 담벼락 위로 어여쁜 여인네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더하여 눈웃음이라니. 보는 거 하나로 눈이 뱅뱅 돌아간다. 그림이 그려지지? 좋다. 그러나 담벼락 아래, 이 금발의 눈부신 아가씨의 블라우스 밑으로는 타이트한 미니 스커트에 손바닥 만한 팬티 한 장만 입고 있다. 때로는 아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을 수도 있다. 다 공상하는 놈 마음대로.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가씨 뒤에 털이 숭숭한 웬 쇠도둑놈 같은 사내가 한 명 서 있는데 벌써 아래도리를 훌렁 벗어 큼직한 것을 내놓고 있다가 그나마 미니 스커트를 위로 훅 올리고 앙증맞은 팬티를 아래로 쑥 내려버리거나, 처음부터 아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맨궁둥이 사이에다, 흠, 그만하자. 어떤 광경인 줄 아시겠지? 32세의 조, 이런 공상을 하며 열심히 자위라도 하려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두드려 패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니 이걸 어째? 겨우 서른두 살인데.
비슷하지만 다른 공상.
TV 쇼. 흰 벽면에 구멍 세 개가 있고 구멍마다 어여쁜 아가씨가 목과 팔을 내밀어 손짓을 하며 방실방실 웃고 있다. 5미터 앞에는 대여섯 명의 패널이 앉아 아가씨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얼굴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한다. 뭔가를 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손톱에 메니큐어를 칠해보라는 등. 근데 벽면 뒤에는 적어도 한 명, 어떤 때는 세 명 전부 다 앞에서 했던 공상 속의 쇠도둑놈 같은 털이 북슬북슬한 사내가 서 있어서 마찬가지로 궁둥이 사이로 흠흠. 패널들은 아가씨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몸짓의 비정상을 찾아내 어떤 아가씨가 지금 삽입 중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한 명일 수도 있고, 두 명, 세 명 다일 수 있지만 한 명도 없을 때는 없다. 역시 이런 공상을 하며 자위라도 한 번 해보려는데 도대체 그게 제대로 서야 뭘 하든 할 거 아닌가비여?
이제 간략하게 이야기하자.
다시 플로리다 벌판에서 세일즈에 나선 조. 도중에 차를 세우고 오줌을 누다가 팍 떠오른 것이 요즘, 그러니까 1990년대 미국 기업에서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이슈 가운데 하나인 성희롱, 성추행 문제.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가 좋은 남자 사원들일수록 스트레스가 쌓여 성희롱과 성추행을 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여직원들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낄까, 안타깝다, 에서 시작해, 만일 특정 여직원, 대단히 높은 급여를 받는다면, 완벽한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조건으로 누구인지 모를 남자직원에게 딱 거기, 뒤 궁둥이 사이 모종의 장소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런 여성을 찾는 일이다. 마치 화장실에 가거나, 코를 푸는 것을 당연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듯이, 리비도가 넘쳐 폭발할 지경의 남자 직원을 한 번 사정하게 해주는 대신 월급을 왕창 받는 동시에 회사 업무도 훌륭하게 수행하는 직원. 이들을 번개를 예방하는 피뢰침이라고 칭한다.
그래서 조는 인력 회사를 만들어 업무수행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과 생각을 공유하는 여성들을 뽑아, 고객 회사에 취직을 시켜 업무 시간에 고과우수자들만 대상으로 익명의 피뢰침을 통해 성적 불만족을 해소시켜 궁극적으로 업무 향상을 꾀하는 프로젝트를 이끈다. 반드시 지켜야할 것은 익명성.
프로그램을 짜서 특정한 고과우수자들 한테 내부 전산망을 통하여 알림이 도착한다. 오늘 피뢰침과의 만남이 있으니 시간을 통보하고 그 시간에 장애인 화장실로 가십시오. 회사에 장애인은 없다. 하지만 법령으로 장애인 화장실은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그러니 밀실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남자 직원이 남자 장애인 화장실에 가서 조금 기다리면 창문 비슷한 크기의 문짝 비슷한 통로가 열리면서 여성의 엉덩이가 뒤로 쑥 밀고 나온다. 그러면 부름을 받고 입장한 남자 직원은 아랫도리를 훌렁 벗고 먼저 콘돔을 완벽하게 착용한 다음, 벽면에 두 손을 의지해 하낫둘, 하낫둘, 그거, 만날 하는/했던 거, 열나 하고 일이 끝나면 세면대에 뒤처리를 한 후 모른 척하고 그냥 나와 다시 열심히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엉덩이만 내민 피뢰침은 뭐 했게? 대개 잡지를 보던지, 뜨개질을 하던지, 아주 똑똑한 한 명은 이 시간을 쪼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프랑스어로 읽는다. 이 여직원은 피뢰침이 받는 많은 봉급을 모아 훗날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미국 대법관이 된다. 놀랍지? 이이 말고 역시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소송전문변호사가 되어 연수입 백만달러가 넘는 피뢰침도 생기고.
근데 이게 웃기지가 않다.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리 풍자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험한 방식으로 말이지.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고 성기만 노출해 섹스를 한다고? 기XX가 죽음을 맞은 파고다 극장의 화장실이 그렇게 생긴 건 다 아시지? 홀링허스트의 <스파숄트 어페어>든가 어디서 등장하는 동성애자 전용 화장실도 그렇게 생긴 것도. 헬렌 디윗도 133쪽에 이렇게 실토한다.
“이성애자들이 게이들의 특정한 문화를 파악하고 그걸 베껴 가면서, 정작 그 문화의 가치 있는 요소들은 죄다 놓쳐 버리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헬렌 디윗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해결하기 위한 회사/권력/남성들의 행동을 이런 식으로 비틀었다가 점점 의식을 확장해서 장애인과, 피부색에 따른 인종등에 가하는 모든 차별까지 포함시킨다. 더 웃긴 건 처음엔 피뢰침의 벽 창문 속 엉덩이와 성기 제공으로 배배 틀린 시각으로 시작해, 그런 (분명이 구분되기는 하지만 일종의 매춘) 행위를 통해 다수의 비 피뢰침 여직원들을 향한 성희롱과 성추행이 근절되었다는 주장을 또 뭐임? 그래서 결국은 누이좋고 매부좋은 미국식 결말로 향하는데, 그것 참. 왜 나는 이게 웃겼을까?
아주 묘하게 기분 나쁘게 끌고 가다가 또 한 번 묘하게 좋은 게 좋다고 끝맺는 거.
1999년에 소설 쓰기를 마쳤으니 디윗의 나이 42세. 여전히 디윗은 남자의 섹스를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주장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성기를 누군가의 안에 집어넣는 것을 상대방을 지배하는 행위로 여기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중략) 문제는 그들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지배 욕구다.” (p.41~42)
대부분의 남자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 삽입을 통해 여성을 지배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뭐 완벽하게 틀린 말은 아니다. 지배욕 충족을 아주 안 느끼지는 않지.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즉 삽입과 사정을 끝낸 후에 내가 이 여자를 지배했다는 느낌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남자에게 위안과 보람을 주는 건 “내가 이 여자를 만족하게 했다.”는 기쁨이다.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면 그것 때문에 남자들도 속으로 열폭하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나? 몇 안 되는 자칭 전문가들의 말 또는 쓴 글만 읽고 그렇거니, 하지 마라. 언니도 만족하지 않았지만 오직 파트너가 상심할까봐 아이 좋아, 아이 좋아, 좋은 척해봤으면서 모른 척하고 있어. 하긴 글 목적 상 그렇게 썼겠지만.
요새 독후감이 좀 길지? 조만간에 건강검진이 잡혀 있어 며칠 술 안 마셨거든. 술 안 마시면 이런 꼴이 난다. 독후감 길어지고, 책 읽는 양도 못 말리게 많아져서 어떻게 주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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