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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반가운 손님
  • 김지숙
  • 15,000원 (150)
  • 2025-11-17
  •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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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숙이 좀 흔한 이름이라 혹시 헛갈릴 지 모른다. <장수상회>, <바냐 아저씨>, <졸업>을 공연한 유명 연극, 영화배우 1956년생 김지숙이 아니다. 아마 올해 나이 쉰여섯일 듯한 부산 출신 연극배우였던 이다. 단편영화를 하다가 마흔의 나이에 다시 부산으로 귀향해 연극 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 딱 하나, 부산에 터를 잡고 가장 활발하게 연극판을 꾸리고 있단다. 원래 시, 소설 같은 것도 습작을 해, 부산 극작가 김문홍 문하에서 극작을 배우면서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희곡을 쓸 수 있었다고.

  《반가운 손님》이 이이의 세번째 희곡집이다. 모두 다섯 편의 희곡을 실었다. 제일 앞에 “작가의 글”을 놓았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상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이걸 읽자마자 곧장 책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책을 읽으면 얼마나 더 읽는다고 아팠던 기억을 일컫는 문학적 ‘상처’를 파헤치겠는가 싶어서.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아픈 것도 싫고, 상처도 싫다. 거대한 비극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별로 기껍지 않다. 뒷방으로 찌그러졌으면 그저 세상 모른 척하며 조용히, 도서관에나 출근하면서 잔잔하게 숨쉬다가 그냥 그렇게 저물고 싶다. 


  실린 작품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매미가 운다> ㅆㄴㄹ 드라마

  <구워 먹을까요?> 그로테스크 살인극

  <반가운 손님> ㅆㄴㄹ 드라마

  <변신(變身), 변심(變心)> 카프카 클리셰

  <후두둑, 빗소리> 그로테스크한 상처, 어쩌면 ㅆㄴㄹ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한 내 기호에 의해 말하자면, 즉 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관계없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읽은 감상을 소개하면, 정말 안 맞는다.

  표제 작품이며 소극장 이상의 무대를 전제로 쓴 것이 아마도 확실한 <반가운 손님>만 이야기해보자.


  1944년에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사치코. 화장을 해 분골을, 일본인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유골함에 담아 집에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80년의 세월이 지난 202X년 현재, 해방전에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달동네 산복마을의 노인 영숙의 집에 어쩐지 이 사치코의 하얀 유골함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일곱 살에서 한 살도 더 먹지 않은 어린 사치코가 연극의 첫 대사를 한다.

  “집 앞에 별이 한가득이다.”

  달동네 산복마을. 하도 산비탈이라 영숙네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항구에 정박했거나 예인을 기다리는 선박들의 불빛이 마치 별들처럼 빼곡하게 깜박거린다. 맞다. 사치코, 얘가 귀신이다. 그러니 첫 대사부터 ㅆㄴ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산복마을도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황폐화하기 시작한 곳. 거주민들은 거의 영숙처럼 늙은이들이거나 싼 맛에 잠깐 머리 뉠 곳을 찾는 떠돌이 젊은이들뿐. 지금 산복마을에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들로 빈집을 개조하거나 비슷하게 변화시키기 위하여 일본인의 투자를 유치하려 해쓰고 있다. 그래서 등장하는 사람이 담당 공무원인 주무관과 일본인 투자자 히로시.

  히로시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할아버지가 식민지 조선에 와서 토지 사업을 벌여 성공을 했다. 아버지 소년 시절에 아주 귀여워했던 동생, 그러니까 히로시한테는 고모뻘인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그만 일찍 죽어버렸다. 고모 죽은 다음 해에 일본이 패전을 해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됐다. 이때 아버지는 동생의 유골을 이 산복마을 어딘가에 두고 갔던 모양이다. 이후 일본에서 사업을 벌여 성공을 했으나 결국 동생의 유골을 찾지 못했고, 죽어가면서 자기 아들 히로시한테 동생의 유골을 찾아 자기 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해버렸다. 이런 몹쓸 늙은이같으니라고. 자기가 못했으면 말아야지 애먼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래서 히로시가 아빠 죽어 장사 지내자마자 부산으로 날아와 옛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산복마을까지 기어올라와서 80년 전에 죽은 자기 고모의 유골을 찾으러 왔으니, 그 정성을 봐서라도 찾아주기는 해야겠지? 근데 등장인물이 바라는 걸 다 들어주면 현대 연극이 좀 덜 된 것 같기도 하고.

  독자는 딱 안다. 어려서 죽은 히로시의 고모가 사치코인 것을.

  사치코 귀신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영숙이나 기춘처럼 곧 죽을 늙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다. 딱 한 명 등장하는 젊은 바리스타, 근데 웬 바리스타? 좀 난데없는 직업이기는 한데 뭐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하여간 한 방에 거금을 벌어 곧 늘 바라던 대로 산복마을을 떠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남게 되는 철우도 사치코 귀신이 눈에 보인다.

  그저 그렇다. 모두 좋은 게 좋은 결말. 에필로그로 가면 귀신이 하나 더 늘어 둘이 된다. 누군지는 아시겠지? 강릉에서 왔지만 50년 동안 산복마을에서 살았으니 결국 부산 산복마을 토박이 귀신이 되는 영숙. 그리하여 마지막 씬은 감동이 이렇게 몸부림친다.

  “어둠 속에서 영숙(귀신)의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인다.”


  다시 말씀드리는 바이오니,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해 마구잡이로 쓴 독후감에 불과하다. 극작가 김지숙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쓴 것이니 절대 믿지 마시라.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고, 관람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라는 것이 세평이다. 이런 독후감밖에 남기지 못해 극작가에게 미안한 바도 크다. 김지숙은 앞서 이야기한 “작가의 말”을 이렇게 끝낸다.

  “저 역시 희곡을 쓰며 묵묵히 정진해 나아가겠습니다.”

  나도 김지숙의 건필을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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