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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 영국 작가가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에 나폴레옹의 육군을 일컫는 대육군의 경기병에서 진짜 있었던 전설적인 결투 실화를 배경으로 중편소설 정도의 작품, 노벨라를 썼다. 흥미로운 건 조지프 콘래드의 나와바리인 바다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 역시 항해가 나오고, 바다도 나오고, 바다를 면한 사람들이 배 타고 해적질과 밀수질도 하면서 육지사람과 모종의 음험한 작업을 벌여야 조지프 콘래드를 읽은 것 같다면 그건 일종의 편견이랄까 일반화랄까?
소설가 미치너가 뽑은 영국의 최고 소설가 네 명을 그의 책 <소설>에 소개했다. 일단 영국 소설가라서 우리나라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자마자 줄창 배우는/배웠던 <더블린사람들>을 쓴 제임스 조이스는 나오지 않는다. 영어로 썼지만 아일랜드 사람이라서. 하여튼 네 명 가운데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은 여성이고, 두 남성 소설가는 영국 밖에서 나서 영국 여권을 가지고 산 사람들, 헨리 제임스와 조지프 콘래드. 조지프 콘래드는 처음 읽을 때 좀 뭔가 불친절한 기분이 들고는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단단한 모험담이랄까, 특유의 이국적 스케일이 재미있어졌다. 어렵게 얘기할 필요 없다. 내가 그의 팬이라는 말이다. 아직도 이이의 전작품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이이를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겨우 한 15년~20년? 이름도 낯설었다니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결투는 통상 결투자들이 각각 입회자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데 이때 그들이 상대의 목숨을 거둘 목적은 아니라는 것. 서로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때, 결투를 벌이지 않으면 명예를 지킬 수 없다는 엉뚱한 인식이 박인 옛 사람들 고유의 문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일 한 편이 완전한 승리, 예컨대 상대방의 무기를 완전히 상실하게 하고 완벽하게 제압했지만 승리자가 패배자를 죽이지 않을 경우, 앞으로 남은 구만리 같은 세월 동안 언제라도 패배자에게 이제 좀 죽여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뜻을 전할 경우 망설이지 않고, 명예를 위하여, 스스로 죽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이런 경우는 거의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미하일 레르몬토프도, 알렉산드르 푸시킨도 결투를 벌이다 치명상을 입고 치료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 양반들이 결투만 안 했어도, 하긴 했는데 죽지만 않았어도 러시아 문학은 훨씬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너무 일찍 갔어!
이렇게 죽는 경우보다는 사실 부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여태 부상으로 끝나도 결투가 종료되는 걸로 알았는데, 콘래드의 <결투>를 보니까 아니다. 부상에서 회복하면 이를 복수하기 위하여, 전에 생긴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고 재 도전이 가능한가보다. 사실 결투라는 행위는 결투로 사건을 종결하려 벌이는 야만스러운 일이건만. 그리하여 내가 아는 장면을 보면 둘 다 죽지 않으면 입회인들이 양 당사자에게 화해할 것을 요구하고 거의 그렇게 한다. 뭐 그렇다고 진짜 이들이 지금부터 우리는 원수지간이 아니라 친구 먹기로 하는 거다, 이런 사이가 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서로 눈길이 마주치면 겁나게 서먹한 사이, 그러나 그놈의 명예를 위하여 서로 째려보지는 않는 그런 관계 정도의 화해를 의미한다.
프랑스 대육군 보병군단 내 경기병 연대의 두 장교. 이들을 소개하겠다.
아르망 뒤베르 중위.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의 부관으로 있으나 원대는 제4경기병대. 큰 키에 밝은 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지닌 잘 생긴 부르주아의 아들. 이따금 폭음을 할 줄 알지만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피카디리의 하늘 아래서 자란 북쪽지방 사람이다. 전쟁의 폭풍 속에서도 상황을 생각하는 냉철한 사고력을 지니고 있으며 품위를 중시하는 전형적으로 잘 교육받은 귀한 집 자재. 이런 집 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무기, 특히 검술에 관해서도 가문의 검술교사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사격 솜씨는 좀 떨어진다.
가브리엘 플로리앙 페로 제7경기병대 중위. 혈관 속에 언제나 펄펄 끓는 피가 흐르는 체질. 작은 키이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뭉친 거친 사나이. 전쟁도 집단 싸움으로만 여기는 인물로 대장간집 아들이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지만 와인이 무르익어가는 지방의 햇살 아래서 취한 채로 태어난 키 작은 가스코뉴 촌놈. 자신이 판단해 비슷한 계층의 사람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한다면 곧바로 결투를 신청해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나운 인간이다. 페로 중위는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장가도 들지 못한다.
이들은 평생 다섯 번의 결투를 벌인다.
첫번째 결투. 뒤베르 승리.
두번째 결투. 페로 승리.
세번째 결투. 무승부
네번째 결투. 뒤베르 승리
최후, 다섯번째 결투. 안 알려줌.
또 웃기는 게, 군인들끼리 결투할 경우에는 계급장의 차이가 있으면 안 된단다. 처음 1라운드에서 만났을 때는 둘 다 중위.
군부 고위층이 판단해도 교육을 잘 받은 뒤베르가 확실히 참모 능력이 있고, 작전 계획과 실행에도 탁월해 페로보다 진급이 빠르다. 이것 또한 페로가 불만을 품는 이유가 된다. 첫번째 결투를 시작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보태, 뒤베르의 이른 진급이 이를 더욱 증폭시켜 뒤베르가 분명 상관들에게 정직하지 않은 수단을 써서 진급한 것이라 주위 장교들에게 구라를 풀면서 페로 역시 본격적으로 진급을 위해 더 용맹하게 공을 세운다. 오직 하나. 뒤베르한테 얻어 터진 것을 갚아주기 위하여.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래서 두 번째 결투 당시에 둘의 계급은 대위. 페로가 성공했다. 뒤베르의 옆구리를 칼로 폭 쑤셔 몇 달 동안 침대 신세를 지게 만들었으니.
세번째 결투는 여러명이 입회한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칼을 써서 죽기살기로 칼부림을 해대는 거친 싸움이었다.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베었는지 두 사람의 군복도 전부 찢어지고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칠갑 한 귀신 꼴을 한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겠던 입회인들이 강제로 뜯어 말렸다. 무승부.
다음 결투 역시 페로가 자기 입회인을 보내 끝장을 보자고 신청해서 벌어졌다. 이번엔 정말 아예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한다는 의미로 경기병의 말을 타고 창 또는 검을 써서 와다다 달려가 붙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 일격에 뒤베르의 검이 페로의 이마를 깊게, 그러나 치명상은 아닐 정도로 베고, 얼굴 조직엔 신체 어디보다 혈관이 조밀하게 얽힌 관계로 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너무 피가 많이 흘러 페로가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뭐가 보여야 더 싸우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뒤베르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별로 없이 승리. 네 번째 결투할 때 이들의 계급이 대령이었다.
네번째 결투와 최종 다섯번째 결투 사이에 있던 것이 1812년 러시아에서의 회군. 숱하게 많은 병사들이 희생된 엄동설한 속 후퇴 당시 이들은 임시로 재편한 병제 아래 같은 대대 속 전우가 된다. 러시아 전장에서 고생을 하며 맞닥뜨린 카자크 병사를 퇴치하기 위하여 둘은 평생 처음으로 함께 협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건 아니고.
프랑스로 돌아온 이들은 장군으로 승진한다. 전투에서 치명상을 당해 뒤베르가 누이의 집에서 요양을 하던 동안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돌아와 백일천하, 잠깐 동안의 권세를 쥐었다가 워털루에서 극적으로 역전패를 당해 세인트헬레나로 다시 유배를 가고, 친 황제파 군인 특히 장군들을 대상으로 살생부가 만들어진다. 이 살생부에 페로의 이름이 들었다는 걸 알게 된 뒤베르. 그는 경찰장관에게 찾아가 겨우 페로의 목숨을 구한다. 자기가 그를 두려워해 죽게 만들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저 중부지방,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곳에 유배 비슷한 처지에 떨어진 페로가 이런 소식을 알 턱이 없다. 세월만 죽이다가 관보에서 다시 뒤베르의 이름을 본 순간, 아차, 생전의 맞수 뒤베르를 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페로는 즉각 주변에서 두 명의 입회인을 그에게 보낸다.
하필 이때 뒤베르는 마흔 살의 장군으로 누이의 장원에 칩거하며 누이가 소개한 어여쁜 스무살 아가씨와 혼인을 준비하고 있던 순간인데, 죽음의 입회인이 도착했으니, 그렇다고 결투에 응하지 않으면 자기 명예가 땅에 떨어질 터, 이제는 진짜로 죽기 살기의 단판 싸움을 피할 수 없어, 자기가 사격에 약한 것을, 아니지, 페로가 명사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각자 총 두 자루, 두 번의 사격이란 조건으로 마지막 전투장소인 결투지,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야기가 짧고 재미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내가 첫빠따로 읽었다. 도서관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기분좋다. 차마 5별을 주지 못했다. 4.5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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