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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쓰기 깝깝하네. 다른 이도 아니고 작가가 조지 엘리엇, 여성 가운데 (오정희 빼고)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서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거 알고는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는데, 푸시시… 김이 새 버린 거다. 책 표지부터 자잘한 글씨를 이용해 큰 해골바가지 하나를 그려 놓아 이 책이 저 바다건너 잉글랜드 대표작가인 조지 엘리엇이 쓴 고딕 소설이라는 걸 광고하고 있어, 그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읽은 다음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희망도서 신청할 때부터 이게 뭥미? 했었다. 그래도 거부감은 없었다. 이이가 활동하던 19세기에는 작가의 젠더를 불문하고 고딕 소설 쓰는 게 일종의 붐을 이루었으니 대표적인 작품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잖아?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개스켈도 고딕 소설을 썼음에야! 이 전통은 20세기까지 흘러 미국의 국가대표 소설가 이디스 워튼 역시 한 고딕 했고.
또 하나 엘리엇의 특기라고 하면, 청춘 남녀, 간혹가다 청춘은 아니지만 하여간 남녀가 오진 고생 끝에 그들은 “결혼해서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 아니라, 굴곡을 겪으며 결혼에 도달한 커플이 결혼한 다음에 복닥복닥 부부끼리 갈등을 겪어가며 서로 미워하고 뒤를 밟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 수 있을까, 마치 세기의 원수들이 만나 살을 대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그려내는 데 관한 한, 진짜 세계 챔피언 아닌가? 하여간 조지 엘리엇, 하면 은근히 속으로 기대하는 게 저절로 생긴다는 말이지. 이제 더는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읽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새롭게 그이의 단행본이 나왔으니 이 아니 기뻤겠느냐고? 아이쿠, 미끼였는 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던 거다.
<벗겨진 베일>과 <제이컵 형> 단편소설 두 편을 실은 소설집.
<벗겨진 베일>의 클라이맥스는 죽은 자 가운데 삼일만에…, 아니고 죽은 자 가운데 삼십분 만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죽음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장면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아니, 내가 뭐라고 부른다고? 그렇다. ㅆㄴㄹ. 이왕 심판하러 그 멀고 먼 길을 돌아왔으면 심판 당해 마땅한 인간 하나 정도는 목이라도 댕거덩 처 죽이고 다시 자빠지든지 뭘 하든지 했어야 좋을 텐데, 그리곤 그만이다. 물론 이렇게 ㅆㄴㄹ이 되도록 일이 꼬이는 게 만든 건(어떻게 꼬였는지는 안 알려드림) 조지 엘리엇의 특기가 십분 발휘되었다고 쳐도 아이고,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고, 괴기스럽기는 한데 촌스럽게 괴기스럽고, 그리고 이거야말로 이미 우리나라 모 종교에서 실용신안 특허를 낸 일종의 “피내림”이란 거 아니었을까?
<제이컵 형>은 고딕 소설의 또다른 전형 가운데 하나인, 약간 기형적인 체구와 완력을 소지한 인물의 등장이 돋보인다. 이 인물이 주인공의 친형인 제이컵. 어깨에 쇠스랑을 짊어지고 다니는 막강한 완력의 소유자. 말 그대로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의 사나이. 기억하시지? 대서양 건너 미국 땅의 카슨 맥컬러스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딕 소녀. 엄청 키가 크잖아. 열 서너살 밖에 되지 않은 꼬마 아가씨가. 근데 제이컵은 지체장애까지 있어서 천하장사의 몸에 열 살 수준도 되지 않은 지능밖에 없어 사탕 같은 단 것을 좋아하고, 형제 중에서도 제과 수업을 받은 데이비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아뿔싸, 데이비드로 말하자면 나중에 쫌스러운 사기꾼이 될 예정이다. 여기서 제이컵이 맡은 배역은 당연히 데이비드 포에서 에드워드 프릴리로 성공적으로 변신해 자그마한 출세가 눈 앞에 닥쳤을 때 다정하게 나타나 깽판을 치는 역할. 뭐 재미는 있지만 스타일이 좀, 조금 오래 전 스타일이라 별로 즐겁지도 않다.
뭐 그렇다는 거다. 여러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최고의 평점을 매겼으니 유독 이 책이 나하고 맞지 않을 뿐일 확률이 높다. 괜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분들한테 기회를 뺐을 수도 있는 쓸모없는 독후감이 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2백쪽에 이르는, 각 1백쪽임에도 한 글자도 메모하지 않고 읽은 오랜만의 책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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