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목욕탕
  • 다와다 요코
  • 12,600원 (10%700)
  • 2023-05-10
  • : 1,406

.

  다와다 요코는 일본 출생이면서도 살기는 독일에서 산다. 독일어로도, 일본어로도 작품을 쓴다. 두 언어 모두 자주 번역해 다른 나라에서도 팔리는 국제어 가운데 하나임에도 그런다.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걸 뭐라 할 수 없지.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시라.

  근데 나는 특히 다와다의 독일 체류.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일본인이 독일에서 ‘작가로’ 살며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조금 야릇하다. “야릇하다”라는 형용사를 선택하기 위해 머리를 좀 굴렸다. 처음엔 ‘우습다’로 시작해서 ‘못마땅하다’를 거쳐 좀 더 순화된 표현이 없을까 고르다가 내 나름대로 애써서 쓴 단어가 ‘야릇하다’인 걸 고백한다. 물론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그것도 작은 고충이 아니겠지만 뭐 그 정도 가지고 유난을 떠는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시인, 작가들. 알제리에서 알제리 언어를 버리고 “적국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아시아 제바르 같은 인물에 비하겠느냐는 말이다. 프랑스는 그래도 프랑스어로 프랑스의 잔인한 정복행위와 통치와 독립전쟁에서의 학살을 비난했던 아시아 제바르를 프랑스 아카데미 종신회원으로 만들어주기라도 했지, 다와다 요코의 모국인 일본 정부가, 일본어로 일본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비난한 글을 썼다면 비슷한 생각을 꿈에서도 못했을 것이다. 당장 불령선인으로 몰아 감옥에서 죽여버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을.

  다와다여, 내 말을 아니꼽게 여기지 말라.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의 후손이 당연히 따져볼 수 있는 문제이니.


  <목욕탕>은 1989년에 발표한 독일어 작품. 상상 이상으로 널찍한 자간, 행간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간신히 100쪽을 넘긴 분량의 짧은 작품이라 2018년에는 같은 책에 독일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실린 새 판본으로도 출간했다고 역자 최윤영이 을유에서 ‘책읽는수요일’로 넘어가며 새로 고친 해설에 쓰여 있다. 다와다 요코가 세상이 다 알아주는 환경주의자, 반핵주의자인데 이 책 편집을 실물로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다와다의 문학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개한 기념할 수 있는 책인데, 1989년까지 다와다는 아직 반핵운동가도 환경주의자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책 속에서 비슷한 내용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이의 다른 책에서는 한 권도 빼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임에도.

  대신 소위 Hiruko 삼부작에서 이야기하는 일본의 건국신화 속 거머리 공주처럼 일본의 옛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의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임신한 여자가 물고기 한 마리를 보고 하도 배가 고파 마을사람들과 나눠먹지 않고 혼자서 그걸 날로 다 먹어버렸다. 아들을 낳고 나중에 보니 아들 말고 엄마의 몸에 비늘이 돋기 시작해 커다란 물고기가 되었다. 이제 산에 살 수 없어져 강으로 가서 혼자 외롭게 살았고, 아들은 마을의 외로운 할아버지가 키웠다. 동네 아이들이 다툴 때마다 아들더러 네 엄마는 비늘 짐승이라고 흉을 보아 할아버지한테 비늘이 뭐예요, 라고 물어 엄마에 대해 알게 된 아들. 어떻게 엄마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논이 없는 마을에 바위를 깨서 흙을 만들면 농사를 제대로 지어 마을이 잘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겠다, 그러면 엄마를 다시 데려와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강에 찾아가 엄마한테 이 얘기를 하니까 엄마는 그때부터 자신의 몸을 바위에 부딪혀 바위를 깨 흙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위에 몸을 부딪혔는지 정말로 산골 마을에 논이 생겼을 땐 엄마의 몸에서 비늘이 벗겨져 다시 사람이 되는 대신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버리고 말았다.


  Hiruko 3부작의 거머리 공주 이야기는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7번, <지구에 아로새겨진>에 소개했으니 그걸 참고하시고, <목욕탕>에서는 주인공 화자 ‘나’의 얼굴에 비늘이 생기는 걸로 시작한다. 비늘은 얼굴에만 돋은 것이 아니라 잠옷의 단추를 열어보니 가슴과 팔에도 고등어 냄새가 나는 비늘이 자라 있다.

  흠. 보이는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 혹시 그거 땟가루 아냐? 하도 때를 밀지 않으니까 각질이 두껍게 쌓였다가 겉 각질이 푸스스 부스러진 상태. 거 솔직하게 말한다고 누가 뭐라 하나? 어차피 픽션이라서 다와다 몸에 땟가루 앉았다고 흉볼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목욕탕>을 처음 읽어 나가며 이 책은 일본의 구전 전설이나 옛이야기를 현대 독일에 맞춰 다시 설계한 것이겠다, 이렇게 예상했었는데, 아니다. 이제부터 다와다 요코 특유의 정신없는 횡보를 시작한다. 다분히 포스트 포스트모던한 작품.

  목욕을 끝내고 화장도 마친 ‘나’의 집에 독일인 애인 크산더Xander가 라이카 카메라 세 대를 들고 찾아온다. 여행사 광고 포스터에 삽입할 ‘나’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렇다고 크산더가 사진가는 아니란다. 독일어 강사. ‘나’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준. 그러다 눈이 맞아 애인 사이가 되었다.

  ‘나’ 역시 여행사 광고 포스터의 모델로 크산더가 원하는 대로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포즈를 취하지만 (이건 또 뭐야!) 그렇다고 ‘나’가 모델인 건 아니다. 통역사. 독일어-일본어 통역. 이 날도 호텔 컨퍼런스 룸으로 일본, 독일 상사간 회의가 있어 통역을 하러 가야 하고, 정말로 간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하필이면 오늘 아침에 비늘이 돋은 걸 발견했는데 점심식사로 커다란 생선이 통째로 한 마리 나온다. 대표 셰프가 큰 칼을 들고 여자의 허벅지처럼 생긴 생선살을 발라 참석자 열한 명의 분량으로 사이 좋게 나누어 준다. 비록 ‘나’는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생선을 먹다가 콱 막혀 화장실에 가서 까무러쳤지만.


  그럼 오후 회의는 어떻게 해? 이거 사람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통역사가 화장실에서 까무러쳤는데 지금 회의가 문제야? 그렇다. 회의가 문제다. 아무도 와보지 않는다. 대신 화장실 청소 담당하는 마흔살 전후의 청소부가 ‘나’를 구원해준다. 호텔의 잡역부 쉼터에서 쉬게 하다가 급기야 자기 집으로까지 데려다 준다. 여자는 몸의 반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나’는 생선 먹을 때부터 입이 콱 막혔다. 혀가 없어져버린 모양이다. ‘나’가 좋아하는 혀가자미 요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먹지도 않았는데 왜 혀가 없어졌을까?

  정신없지? 나중에 알고 보면 이 화장실 전속 청소부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 화재가 나서 불타 죽은 여자 아닌가 싶다. 어떠셔? 더 들어보실래? 관두자. 책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정신 사나운 이야기가 좌르륵 나열되어 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언어 이야기, 언어를 발음할 수 없는 혀가 사라진 이야기 등등. 하여간 이 사람,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