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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렌츠의 소설을 읽었다. 그간 10년 세월이 훌떡 지나갔네. 민음사세계문학 40, 41번 <독일어 시간>. 오래 전에 읽었고, 그리 인상깊지도 않아 새까맣게 잊은 줄 알았더니 도서관 서가에서 렌츠, 이름을 보는 순간 팍 떠오르더군.
렌츠가 1926년에 나서 2014년까지 88년을 살다 갔는데 <유랑극단>은 2009년, 그의 나이 여든세 살 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독일어 시간>과 <유랑극단> 사이에 42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노익장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독일어 시간>을 찾았더니, 아이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베란다에 따로 모아두었는데 <독일어…>도 거기 자빠져 있다. 손에 먼지 묻히기 싫다. 그냥 넘어가자. 독후감 써 놓은 것도 없는 거 보니까 또 틀림없이 쐬주 한 잔 걸치고 지워버렸나 보다. 성질 하고는 참.
<유랑극단>은 제목하고 달리 함부르크 부근에 있는 걸로 보이는 가상의 “이젠뷔텔 교도소” 수감자들 이야기다. 부조리 소설로 봐야 마땅하다.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는 전직 교수 늙은이. 이름은 클레멘스. 수감자들은 ‘나’를 ‘교수양반’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쓰겠다. ‘나’를 타이핑할 때 작은 따옴표 붙이기가 귀찮다.
이 늙은이 교수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2년을 복역해서 자기 형량의 절반가량을 채웠다. 이이가 왜 들어왔는지 재미있으니 주목.
교수 시절에 전공이 독일 문학, 이 가운데서도 “스트룸 운트 드랑 Strum und Drang” 우리 말로 “질풍노도”였다. 교수가 쓴 스트룸 운트 드랑 관련 저서는 독문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권위 또한 떠르르한 책으로 웬만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흔히들 그러하듯이 이 교수 양반도 자기 수업에 자기 책을 교재로 해 강의를 한 건 당연한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졸업시험에서 사달이 났다.
교수 양반이 필립 로스의 여러 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주커먼 교수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자기 수업을 듣는 여학생 몇 명과 잤다. 그리고는 작품 중에서는 두 명만 나오지만 하여간 이 학생들 한테 최고점을 주었다. 팔이 안쪽으로 굽으니까. 근데 공부 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에 불만이 있는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니까 이게 샘이 나거든. 진짜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1920년대생 작가가 보기에 샘이 난 거 같아서, 그걸 학교 당국에 고발해버렸다. 독일에서는 이게 형사범죄인지 그리하여, 교수 양반이 보기에 자신한테는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사랑이 웬수지) 징역형을 받아 들어온 거다.
이건 이해가 가는데 도무지 왜 그랬을까 싶은 이 비슷한 사건도 있지? 조너선 프렌즌의 <인생 수정>에 등장하는 칩 램버트 교수. 멜리사라는 여학생이 교수를 꼬여 모텔에 가서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리포트를 좀 봐달라고, 써달라는 게 아니라 써 놓은 것을 한 번 봐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주었더니, A학점을 받고도 그걸 학교에 신고해서 교수를 해고당하게 만든 이야기. 거 참. 조심 좀 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혐의로 걸리면 평생 크게 쪽팔린데 말이야.
어쨌든 교수 양반이 머물고 있는 감방이 2인실인 모양이다. 여기에 새로 하네스라는 수감자가 들어온다. 교도소 신참은 아니고, 이미 두 번의 탈옥 미수 경력이 있는 화려한 묵은지. 교도소 안에서 하네스의 정보망을 벗어나는 수감자, 간수, 간부들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네스는 천진함이 묻어나는 신선한 얼굴을 한 전직 사기꾼. 뭐든 입에 가져다 붙이면 그 말을 듣고 솔깃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건 짐승뿐일 정도. 비가 오기만 하면 훔친 경찰복을 받쳐 입고 경찰 지시봉까지 챙겨 함부르크 외곽의 도로에서 과속이나 난폭운전 등의 교통단속을 전담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 오는 날 단속에 나서는 경찰이 없어 사고의 위험이 배가 되는 것 같으니 하네스 말대로 지극한 희생정신에 입각해 한 일이다. 그저 작은 문제는 갓길에 위반 차량을 세워놓고 과태료를 물린 다음 직접 집행까지 했다는 사소한 일이었다. 운전자가 원하면 당연히 수첩을 북 찢어 영수증까지 써 주었는데도 세게 걸렸다. 하필이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복 경찰의 차를 세운 게 재수가 없었지 뭐.
이젠뷔텔 교도소에 유랑극단이 찾아왔다. 파란 칠을 한 버스를 타고 식당에다 조잡한 무대를 설치했다. 그저 박스와 궤짝을 가슴 높이로 올려 굽을 길을 묘사했다. 무대 위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고. 식당에 모인 수감자 관객들 사이에, 어라, 무슨 신호가 왔다갔다 하는 걸 감지하는 교수 양반. 이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수상한 작업은 거의 대부분 총명한 사기꾼 하네스에 의하여 기획, 집행되는데, 이번에도 뭔가 음습한 공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검지와 약지를 써서 신호가 오고간다. 서로 경고하고, 약속을 상기시키고, 인내와 각오를 요구하는 듯한.
눈치 없는 교도소의 카를 타우버 소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 한 마디 한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은 당신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연극을 통해 당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와 대면해 보십시오.”
소장의 연설을 들은 교수 양반은 씁쓸하다. 자기 책 <스트룸 운트 드랑>에 나오는 말이다. 염병할 놈. 연설하기 전에 나 한테 먼저 말해주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럼에도 자기 책에서 따온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젠 교수이기 전에 한낱 수감자 신세라서.
유랑극단의 프루겔 단장이 뒤를 이어 한 마디.
“연극은 타인의 삶을 즐거운 방식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며 세계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요. 오늘 공연은 <미로>라는 작품입니다. 여섯번째 동방여행에서 행방불명된 함부르크 출신의 작가 헨리 발터만의 작품입니다.”
무대위에 쌓인 박스와 궤짝 사이의 길. 그것이 미로이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저 안에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무대에는 나이든 여배우 두 명이 등장하고 이어 경찰 한 명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첫번째 실종자가 발생해 경찰이 찾아온 거다. 실종자는 정원사이며 네 아이의 아버지라나?
미로. 모든 사람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는 곳. 그게 지금 무대 위에 있을까, 없을까? 경찰이 직접 미로 속으로 들어가 사건을 파헤쳐 보겠다고 선언하고 정말 박스와 궤짝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자마자 관객석에서 교수 양반 한 명을 뺀 모든 수감자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외치는 것이, “잘 가, 안녕!”
두 여배우가 대사 한다.
봤지? 미로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언니, 우리 손에 아주 진귀한 물건(미로)이 들어왔어. 필요할 때나 원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우리한테, 아니 남들한테도 근심을 끼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거야.
듣고 있던 하네스가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모양이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더니 때 맞추어 휴식시간 15분. 하네스가 교수 양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교수 양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슬쩍 따라 나간다. 하네스가 교수 양반더러 교도소 마당에 서 있는 버스에 타라고 한다. 맞다 파란색 페인트 칠한 유랑극단 버스. 그래서 어떻게 해? 당연히 탔지. 안 타면 소설이 안 되는 걸?
이제부터 하네스가 대장이다. 그가 말한다. 전원 대가리를 의자 아래로 처박아.
운전대는 거인 같은 덩치에 쾌활해 보이는 전직 축구 심판, 뭄페르트가 앉아 아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교도소 밖으로 버스를 몰아간다. 안단테, 안단테 소스테누토. 그러나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르막길은 당연하고 내리막길이 나와도 끝까지 악셀러레이터를 밟아 조지는 뭄페르트. 이들이 어디에 도착했느냐 하면 그뤼나우 시. 패랭이 꽃이 유명하고 마침 지금 패랭이꽃 축제가 한창인 곳에. 교도소 수감자 옷을 입은 채? 그럼. 옷 갈아입을 새가 어디 있었나? 시장을 비롯한 모든 시민은 이들의 복장이 유랑극단이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것으로 지레 짐작을 한다.
근데 우리의 교수 양반은 형기의 절반을 채웠는데 꼭 나가야 했을까?
좀 견뎌 낼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견뎌 내야 하는 법.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가끔은 타인도 견뎌내야 할 터인데. 뒤 돌아보라. 결국 사는 일이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서, 그렇게 견뎌내는 거 아니었나? 물론 쉽지 않지. 쉬우면 그게 사는 일이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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