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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새의 시선
  • 정찬
  • 11,700원 (10%650)
  • 2018-05-11
  • :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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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부터 2017년 봄까지 쓴 작품을 모은 소설집. 작년 초여름에도 이이의 소설집을 읽었다. 문학과지성 소설명작선 시리즈로 나온 《완전한 영혼》. 그때는 민주화투쟁 당시 공권력에 의하여 저질러진 유구한 전통, 고문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작품들이 눈을 끌었다. 이번엔 그 이후, 1986년에 소위 “가투”를 벌이다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붙여 분신 자살한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진호 사건, 2009년 용산참사에 이어 드디어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모두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책을 쓸 당시에도 동아일보 기자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로 봐서 그럴 것 같지는 않아도, 우리나라 현대사의 장면 곳곳에 일반인들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자세한 정보에 근접할 수 있었을 터이다.


  김세진, 이진호의 분신과 용산참사를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 표제 작품인 <새의 시선>이다. 새의 시선? 그렇다. 화자가 만일 새라면, 새가 되어 새의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한다는 뜻. 굳이 검색해 찾아내 소개하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을 비롯해서 고흐가 동료화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은 언덕 위에서 새가 바라보는 눈으로 풍경화를 그린다고 했단다. 정찬은 이 새의 이미지를 <새의 시선> 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 숱하게 새 이야기를 한다. 하나 더 있는데 고래의 눈. 순하고 빛이 닫지 않는 심해 깊이 잠수하는 고래의 눈. 70년을 사는 향유고래가 새끼 한 마리 한테 10년 동안이나 젖을 먹인다는 이야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향유고래가 어떻게 젖을 먹이는 줄 아나? 젖꼭지에 입을 대고 육지 동물처럼 쪽쪽 빨아먹을까? 아니다. 고래의 젖은 모든 포유류의 젖 가운데 제일 진한 농도를 가지고 있어서 새끼가 유공乳空 아래 부분에서 입을 벌리고 있으면 어미가 젖을 바다로 쏘아 보낸다. 그럼 짙은 농도의 고래 젖이 바다로 흩어지는 게 아니라, 물론 쏘아 보낸 젖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분량이 새끼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특별한 모성 본능을 지닌 고래의 눈도 정찬의 관심 안에 있어서, 새와 더불어 고래의 이미지를 소설집에서 자주 발견한다. 내 경우엔, 또 새, 고래야? 볼멘 소리를 하고 싶었을 정도로. 아, 향유고래 젖 먹이는 것도 이 소설집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냥 농도가 짙다는 정도로.


  새. 새가 연상시키는 것은? 노래, 자유, 희망, 평화, 홍수의 진정(노아가 보낸 비둘기), 그리고 사후세계의 매개금禽. 사후세계까지? 그렇다. 저 몽골과 티베트 지역에서의 장례 관습인 조장을 생각해보라. 조장은 티베트에서 ‘천장’이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이번에 처음 들었다. 소설도 읽으면 많이 배운다니까) 죽은 사람을 새가 먹을 수 있는 크기로 토막내는 사람을 ‘천장사 天葬士’라고 한다면, 천장사는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 상당한 수준의 도를 닦은 큰 법사가 맡는단다. 이이의 칼질에 따라 망자가 새의 몸이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으니.

  고래의 길고 긴 여행은 티베트 사람들의 카일라스 순례에 비교할 수 있다. 산 하나에 오르지 않고 산 둘레를 따라 오체투지를 하며 고행하는 사람들. 52킬로미터. 보통 사람들이 그냥 걷는다면 꼬박 3일이 걸리고, 만일 오체투지를 하며 걸으면 한 달 남짓이 필요하다는 길. 그걸 한 바퀴 돌면 자기 죄의 하나가 지워진다고.

  이러니 새나 고래나 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정찬은 소설집 속 일곱 작품에서 모두, 한 작품도 빼지 않고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을 펼 때부터 덮을 때까지 독자는 한 순간도 어긋남 없이 우울해진다. 이 책을 돈 주고 안 사서 다행이지, 정찬의 글이 좋다고 덥석 사서 읽었더라면 책값이 겁나게 아까웠을 법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역시 정찬의 글이 좋네, 마네 가비야운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아시다시피 내가 우울한 거 싫어해서 그렇다. 그래도 글이 좋아 별점은 셋 반.


  첫 작품 <양의 냄새>의 화자는 종합병원의 심리학 박사. 병원의 협조 요청에 따라 카지노가 딸린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 무료(또는 무료 비슷하게) 장기 숙박하면서 카지노에 모인 도박꾼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다. 도박장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저번에도 말했듯이, 만일 인생을 도박의 반 만이라도 집중해서 산다면 실패하는 인간은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은 살면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자의 그리고 타의에 의하여 훈련받으며 성장하는데, 속여야 하는 상대방이 있는 포커 게임 같은 것 말고, 카지노나 주사위 같은 돈 놓고 돈 먹는 도박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니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고, 표정 역시 마찬가지.

  화자가 카지노를 둘러보다가 이상한 사람을 발견한다. 흥분도, 기대도, 절망도 아니고 슬픈 표정을 한 20대 후반의 잘 생긴 사나이. 에니스. 그는 자신의 칩 열세 개를 몽땅 홀수에 배팅해 스물여섯 개가 되었다. 스물여섯 개에서 하나를 빼고 스물다섯 개를 또 홀수에 걸어 쉰 개가 되고, 또 홀수에 걸어 아흔여덟 개가 되더니, 손에 잡고 만지작거리던 칩 두 개를 뺀 아흔여섯 개의 칩을 몽땅 숫자 8에 걸더니 화르륵,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그의 표정이 인상깊어 함께 바로 향해 맥주를 병째 마시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말한다.

  “칩이 작은 물고기처럼 따뜻하더군요. 전 이 물고기를 룰렛 테이블에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놓고 싶은 곳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적시는 강물입니다. 어느 해 여름 그와 함께 지냈던,”

  나는 즉각 애니 프로가 쓴 기막힌 책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정찬은 어쩌자고 이미 알려진 작품 속 등장인물을 출연시켰을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까? 궁금해졌다. 리얼리스트가 포스트모던 작품을 쓰겠다고 나선 셈이라서. 궁금했겠지? 말 하면 뭐해.

  아니다. 정찬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기사 윌리엄>에서 윌리엄으로 나왔고,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고 <다크 나이트>의 주인공을 연기한 영화배우 히스 레저를 자기 작품 속으로 불러왔던 거였다. 영화를 할 때마다 작중 자신이 맡은 배역에 완전히 몰두한 배우. 그리하여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주인공의 이미지에서 도무지 벗어나기 힘들어하던 배우.

  조커 이야기가 나온 순간, <양의 냄새>는 결국 히스 레저의 죽음으로 끝장을 보겠구나,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화자 ‘나’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룰렛에서 히스 레저를 만난 날짜가 2008년 1월 20일 저녁이었으니 그의 실제 죽음을 겨우 이틀 남긴 날이었다.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연달아 죽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은 별로 읽고 싶지도 않고, 다른 이한테 읽어보라 권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기자 출신 글 좋은 작가가 썼으며, 취향이란 것이 진짜 다양한 거니까 마음이 동하시면 굳이 멀리할 이유가 없다.

  배역에 몰입하는 배우. 자기가 쓰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몰두하는 작가. 그리고?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는 화가 또는 사진가. 이런 사람들도 등장한다. 물론 비극적이다. 화가 가운데 클로드라는 이름도 있다. 누구냐 하면, 당신도 아는 제르베즈 아줌마의 첫째 아들. 자기가 그린 대작 앞에서 대롱대롱 혀를 빼물고 자살해버린 인간 말이지.

  그거 말고도 병에 걸려 죽고, 자동차 사고로 죽고, 42층 건물에서 스스로 자유낙하해서 죽고, 배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다가 한꺼번에 침몰해 죽고, 동네 철거에 항의하다 불에 타 죽고, 마약은 아니지만 약물 과다 복용으로 히스 레저도 죽고, 죽고, 죽고, 또 죽는다. 죽은 사람은 그렇다 치고, 그래서 이제 남은 사람의 슬픔은 어쩌라고. 나는 죽는 것보다 이 남은 사람의 비극을 더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책 더 안 읽고 싶은데, 그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이것 참.

  엊그제, 또래 가운데 제일 어린 조카딸이 차사고로 죽었다. 이름을 내가 지어주었는데. 마음 아프다. 결혼 2년 반. 아이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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