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어메이징 브루클린
  •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 14,400원 (10%800)
  • 2022-04-20
  • : 533

.

  제임스 맥브라이드. 1957년생 작가, 작곡가 겸 색소폰 연주자. 흑인(유색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유대인. 아빠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엄마가 유대계 폴란드 이민의 따님. 맥브라이가 쓴 <하늘과 땅 식료품점>이 뉴욕 타임스가 뽑은 21세기의 1/4세기, 그러니까 2001년부터 2025년까지 대표작(책) 100권으로 뽑는 바람에 이름도 처음 들은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하늘 땅…>이 뭐 그리 대단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서가에서 이이의 이름이 눈에 띄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른팔을 뻗었다. 웃겼어. 책이 500페이지. 이렇게 딱 떨어지기도 쉽지 않은데 그것 참.

  독후감 시작하기 전에 미리 김을 좀 빼야겠다.


  매우 재미있다. 뉴욕 브루클린 유색인 지구 커즈웨이 빈민주택 단지. 파이브엔즈 교회가 있고 잡초만 넘실거리는 공휴지 건너 이탈리아 패밀리의 일원인 엘레판테 가족의 컨테이너 사무실. 그 너머 자유의 여신이 보이는 동네. 때는 1969년. 바야흐로 전통적인 이탈리아 마피아에 의한 밀수, 도박, 건축하청 같은 종목은 시대 저편으로 흘러가고 빈 자리를 급속하게 헤로인 같은 마약이 잠식하고 있던 시기. 약의 공급은 여전히 백인이 차지하고 유색인은 기껏해야 딜러밖에 하지 못하던 시절. 약이 비싸지는 않지만 그것도 살 돈이 없어 돈을 구하기 위하여 아무 한테나 폭력을 동반한 강도행위를 하기 시작했던 시기. 탁 보면 대단히 우울한 풍경이 그러지는데, 천만의 말씀, 이미 <하늘 땅…>에서 경험했다시피 작가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될 수 있는 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작품에 유머와 말장난을 섞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쨌느냐 하면, 소설을 읽는다기 보다 차라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니까 책의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제한속도를 훌쩍 넘어 팍팍 읽힌다. 쉴 새 없이 키득거리면서. 정말 웃긴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읽기 민망할 수준이다. 등장인물 역시 마약과 마약 조직에 의한 폭력에 시달리고, 커즈웨이 공동체 흑인들도 하이틴 시기만 되면 각종 범죄로 인해 교도소를 들락날락 하는 걸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임에도 이들은 한결같이 서로를 보호하고, 밝고, 사소한 다툼 속에서 질투 날만큼 질긴 애정으로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게 다 작가의 현란한 입심 때문에 그렇게 읽히는 건데, 내가 살아보니까 인정이란 것도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 당장 내 배가 고픈데 과연 이 유색인들처럼 살 수 있을까, 이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즉, 맥브라이드가 과하게 대중 코드로 작품을 쓴 거 같다는 말이다. 그게 오히려 작품을 실감나지 않게 한다. 뭐든지 너무 과하면 안 좋은 건데, 이 작품이 딱 그렇다. 물론 내 허접한 수준에 의하면 그렇다는 거다.


  너무 김을 뺐나? 말이 그렇지 무지 재미있다. 1/4세기 동안 1백대 작품이라는 <하늘 땅…>보다 더 재미있으니 읽기를 머뭇거리지 마시라.

  오래 전, 전쟁이 끝난 후인 1940년대. 커즈웨이 주택단지는 원래 이탈리아에서 하역일을 하려고 몰려든 이민자들을 위하여 지은 거였다. 이탈리아 사람들 말고도 아일랜드, 폴란드,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 사람들도 빼곡하게 들어왔다가 어느새 이런 힘을 쓰는 일은 남쪽에서 소작을 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치고 올라온 유색인종들이 대신하기 시작했고, 일종의 터줏대감이라고 생각했던 이탈리아 이민자들도 커즈웨이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다.

  이때도 커즈에 인접한 부두는 귀도 엘레판테가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근데 아뿔싸, 이 귀도는 뇌졸중 후유증에 시달렸다. 범죄에 연루된 건 맞지만 남의 범죄사실까지 덮어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짜 행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 12년 형을 받고 복역중에 뇌졸중이 발병, (이런 게 있다면 하는 말씀이지만) 의병석방 되었어도 아픈 몸을 끌고 여전히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귀도 엘레판테가 이탈리아 출신이기는 했지만 패밀리의 최상단인 시칠리아-나폴리 라인이 아니고 북서부 제노아 출신이라 항상 신중하게 행동했다. 이게 쉽게 되는 거야? 천만의 말씀. 원래 사람 생겨 먹기가 진중한 성격이고, 말을 하기 보다 듣는 쪽이었으며, 남을 신뢰하는 사람만 신뢰하고, 약속을 하면 지키는, 쉬운 얘기로 의리의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40년대 말에 뉴욕 경찰이 누구로부터 제보를 받았는지 엘레판테의 컨테이너 사무실을 급습했다. 하지만 곳곳에 귀도의 정보원이 있어서 미리 경찰의 습격을 알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평소 같으면 접안을 했거나 정박한 배로부터 밀수품을 하역할 시간이었지만 이날은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때 신참이었던 청렴한 아일랜드 출신 경찰 포트도 출동하였는데, 현장이 비어 철수 명령을 받고 복귀하려다 숨어 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쫓기 시작했다. 거의 다 잡았을 무렵 그림자가 갑자기 뒤로 돌더니 권총을 겨누었다. 이제 포트는 죽은 목숨이지? 그런데 포트가 20여 년이 지나 중늙은이가 되면 <어메이징 브루클린>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출연할 예정이라서, 바로 죽음 직전에 커다란 트럭이 냅다 시속 40마일로 달려오더니 그림자를 깔아버렸던 거다. 현장에서 즉사.

  이렇게 포트 경찰을 살려준 인물이 누구냐 하면 귀도 엘레판테.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톰 엘레판테의 아버지.


  하지만 귀도 역시 경찰을 만났으니 얼른 도망가야 할 터. 앞에서 뭐라 했느냐 하면, 교도소에서 나오기 전에 벌써 뇌졸중이 발병한 상태. 한쪽 다리와 팔이 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형트럭의 운전대에서 뛰어내리다 한쪽 팔이 아마도 크게 삐거나 부러진 거 같았다. 이때가 새벽 세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에 떨어진 귀도.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마침 백인 집에 하녀 비슷한 도우미로 일하던, 폴이라는 남자 이름을 쓰는 아프리카계 여성이 그날 집주인 집에서 크게 파티를 벌이는 바람에 늦게 걸어서 퇴근하던 차에 귀도를 발견했던 것. 귀도가 폴 자매, 왜 ‘자매’냐 하면 남편이 목사라서 하느님을 믿는 남자는 무조건 형제, 여자는 무조건 자매인데, 하여간 운전 면허증도 없는 폴 자매에게 자기 대신 트럭을 운전해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청을 했다. 폴 자매는 당연히 남의 험한 일에 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당시엔 정말로 거금이었던 사례금 백달러도 거절했지만, 저 밤하늘 구름 위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손바닥 안에 보호할 것이다.” 그래서 그를 부축했고, 그의 옆에 앉아 기어는 귀도가 넣고 페달은 폴 자매가 밟으며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러니 의리의 사나이 귀도 엘레판테가 얼마나 폴 자매가 고마웠겠어? 사례비로 주겠다는 백달러도 끝까지 받지 않았으니 이 여성도 남을 신뢰하는 사람이고 그러니 자신도 폴 자매를 신뢰할 수 있다고 믿었겠지. 그래서, 대신, 폴의 남편이자 목사가 교회 터를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땅을 거의 거저 수준으로 팔고, 교회 건물도 무료 비슷하게 지어주었던 거다. 그것 참, 깡패 두목이긴 하지만 정말 의리의 사나이일세.

  그런데 귀도가 교도소에 있을 때 알게 된 낭만적 아일랜드 범죄자가 있었다. 이 아일랜드 남자 거버너도 남을 신뢰하는 자라서 귀도 역시 신뢰했다는 걸 거버너도 알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 수천년 전에 조각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관해달라고 청했다. 나중에 보관료는 따로 계산하자며. 짧게 말하자. 그리하여 귀도 엘레판테는 교회를 건설하면서 폴 자매에게 이 보물을 숨긴 곳을 알려주는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로 말하자면, 이후 20년이 지난 1969년 현재가치로 1,500만 달러를 받고 유럽의 수집가에게 팔 수 있는 그야말로 국가 보물급 유물이었던 것.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귀도 엘레판테는 벌써 죽고, 이제 톰 엘레판테 역시 부두 일에 싫증을 느낄 무렵, 다 늙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버너가 귀도의 아들을 찾아와, 네 아빠가 보물을 어디에 숨겼는지 잘 생각해보라 했거든. 근데 마흔살이 넘어도 모태 솔로였던 톰 눈에는 보물과 동시에 거버너의 나이든 딸 멜리사가 눈에 팍 꽃혀버렸다는 거 아냐.


  여태 말한 것들, <어메이징 브루클린>의 주요 이야기라고 하기 힘들다. 근데 왜 헛심 빠지게 이리 길게 썼느냐 하면, 주인공인 스포츠코트, 본명 쿠피 램킨의 길고 긴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귀도의 아들 톰 엘레판테와 “내가 너를 손바닥 안에 보호할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 좋은 우리가 이해하자.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목사의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초장에 스포츠코트가 1969년 9월의 흐린 오후에 그의 야구 제자이자 현 마약딜러인 19세 먹은 딤즈 클레멘스의 얼굴을 향해 구식 38구경 콜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이야기는 아예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건 다른 이들이 쓴 독후감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으니까. 재미있겠지?

  그래서 읽을래, 말래?


.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