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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집 《목란 언니》에는 표제작과 <뻘>, <달나라연속극> 이렇게 세 편이 실렸다.
이 가운데 <뻘>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모티브로, 김은성이 1981년 전라남도 벌교를 무대로 재창작한 작품입니다.”라고 쓰여 있고,
<달나라연속극>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모티브로, 김은성이 재창작한 작품입니다.”하고 쓰여 있다.
먼저 <목란 언니>. ‘목란’은 놀라지 마시라, 북한의 김일성이 만든 단어다. 원래 우리말 이름은 “함박꽃나무”, 정말 탐스럽게 잘 생긴 흰 꽃인데, 하루는 김일성이 꽃을 보고 너무 좋아 이런 꽃의 이름을 조선말로 천하게 지어 놓아 유감이다. 앞으로 “목란木蘭”이라 부르라. 해서 목란이 됐고, 어이없게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국화로 지정되었다는 거다. “목란”을 열라 검색해봐도 요리사 이연복이 운영하는 짬뽕과 탕수육이 맛난 중국집만 나오고 함박꽃나무 이야기는 저 아래, 검색창의 거의 제일 아랫부분까지 스크롤해야 읽을 수 있는 게 이유가 있었다. 나는 ‘목란’ 말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목단’ 그리고 화투패에서 6월 모란꽃을 떠올렸지 뭐야.

함박꽃나무 (목란)
<목란 언니>에는 등장인물이 스물여섯 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들 전부에게 이름, 성별, 나이, 직업, 출생지, 거주지, 말씨를 특정해준다. 예를 들어 주인공 조목란. 여, 26세, 아코디어니스트, 평양生, 용인∙서울 거주, 평양말. 그리고 돈만 많은 과부 조대자 씨는 여, 55세, 룸살롱 주인, 부산生, 서울거주, 온갖말. 조대자 씨한테는 아들 삼남매가 있으니 첫째가 36세 먹은 한국사 박사이고 서울生, 서울말. 둘째가 33세의 철학박사로 대학 교수로 있지만 아뿔싸 대학의 학과 정리에 철학과가 포함되는 바람에 실직 위기에 처한 서울生, 서울말. 셋째가 외동딸로 이름이 허태양. 30세의 소설가, 조대자의 막내딸로 서울生, 서울말. 웃긴 건, 어떻게 삼남매 전부 먹고 살기 힘든 문∙사∙철을 시키느냐는 말이지. 일부러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겠구먼.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딱 떠오르지? 조목란은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민. 젊고 수더분하지만 야물딱진 여성으로 걱정이 한 가득이다. 5천만원을 모아 브로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다시 북으로 가던지. 북에 남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리 데려오고 싶어서. 조대자 사장께서 탁 보니까 조목란이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리하여 한국사 박사지만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이자 히키코모리인 허태산과 인연이라도 될까 싶어 허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가르쳐주게 한다. 허태강은 앞서 얘기한대로 실직이 코 앞이라 이제 시간 강사자리나 지방대학 조교수 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고, 소설을 쓴 허태양은 소설은 써지지 않아 제법 돈을 받고 그럴 듯한 국회의원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을 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대개의 작품에서 그렇듯이 태양은 싫다고, 싫다고 자존심 상해하다가 결국 대필을 해야겠지? 아니라고? 글쎄 두고 보라니까.
허씨 삼남매를 이나마 키운 건 조대자 사장의 억척스런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그렇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노고를 속으로 고마워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자랑스레 내놓을 수 없으니 오랜 세월 룸살롱 사장을 겪으며 무슨 짓을 안 했겠느냐 하는 것이지. 요즘 조대자 사장의 레이더에 꽂힌 사람이 재미교포, 아니, 한국계 미국인 강국식. 남자, 66세, 사업가, 도쿄生, LA 거주, 영어+일본어+서울말 사용자. 66세와 55세. 11살 차이니까 뭐 연인 비슷할 수도 있다. 정도 정이지만 둘은 떼돈을 벌 수 있는 합작 투자를 구상하고 있다. 아서라, 아서. 누가 “떼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백 중의 아흔아홉이 사기다. 거덜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덥썩 물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저 뒤로 가면 조대자 여사가 조목단에게 허태산하고 좋은 관계가 되면 주겠다는 5천도 주지 못하고 거덜이 난다. 거덜이 날 정도가 아니라 일단 몸을 피신해야 하는 처지까지. 집안이 폭탄 맞는 거지 뭐.
이게 한 가지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탈북민 커뮤니티. 해방 이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북청청년단” 같은 반공단체를 만들어 남쪽에서 가장 강력한 우익활동을 한 것처럼, 탈북민들이 남쪽에 정착해 모인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단호한 반공단체를 만든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북 삐라 보내는 사람들도 이런 경우겠지.
바야흐로 유사이래 언제나 멈추지 않았던 한국사의 난장판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데, 김은성은 이 난장판의 일부분이라도 한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한 무대에서 스물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올려 한꺼번에, 사실은 순서에 입각해 모데라토, 혹은 알레그로비바체로 각각의 난장을 동시상영하며 막을 올리니, 다음과 같다.
처음엔 서울의 한 강당에서 열린 [실향민 어버이 연합 큰잔치], 둘째가 대구의 교회 예배실과 북한 해주의 역전 광장, 셋째는 서울 룸살롱 [한류韓流] 당연히 조대자 사장, 다음엔 서울 허태산의 원룸, 서울의 국회의원실(허태양의 자서전 대필 의뢰 건), 북한 청진의 중학교 운동장, 인천 초등학교 교실, 원주 대학교 강의실(허태강의 철학과), 서울의 한 강당 [통일민주연합 청년대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제목이 “난장판 짬뽕.”
이 가운데 처음부터 등장해 있지만 끝날 때까지 관객석을 등진 채 김일성 초상만 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다. 조선호. 남, 55세, 화가, 조목란의 아버지, 평양生, 청진거주, 평양말. 그러니까 목란 언니 조목란이 어코디어니스트로 조대자의 집에 가서 조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교습하는 짬짬이 집안일도 도우며 돈을 벌고 있는 거다. 이 아버지를 데려오든지, 자신이 청진으로 돌아가든지 혹은 직접 가서 직접 데려오려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극은 남쪽의 천민자본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극성 우경화 같은 것을 모두 포함시킬 수밖에 없고, 판이 커져 드디어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근데 설마 인기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은성이 자기 작품을 이렇게 끝까지 정신 사납게 내버려 두겠어? 천만의 말씀이지. 난장으로 시작해 결말은 쓸쓸할지니, 기대하시라.
<뻘>은 김은성의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근처 벌교를 무대로 1막부터 3막까지는 1980년 봄에서 1981년 여름까지. 3막 후반부터 4막은 1991년 겨울에서 다음해 봄까지. 1980년 봄의 전라남도라면 광주항쟁을 피할 수 없겠지? 맞다. 피할 수 없다. 그것, 항쟁과 관계없이 또는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새로운 대중예술을 하고 싶은 청년들과, 이곳 출신으로 잠깐 다니러 간 당대의 가수와 작곡가. 두 세대 간의 갈등도 있겠고, 화해도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결론은 아마도 안 읽으셨겠지만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방관자>와 비슷하다. 뭔지 안 알려드린다.
<달나라연속극>을 재미있게 읽었다. 옥탑 단칸방에 사는 엄마-아들-딸, 그리고 아래층의 대학생 사이의 관계극. 작품의 주제는 내가 자주 하는 말과 같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희곡집이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아 사서 읽어보시라는 말은 못 하겠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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