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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귀환
  • 히샴 마타르
  • 13,500원 (10%750)
  • 2018-03-30
  • :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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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독후감을 쓰는 스타일은, 처음 읽는 작가일 경우 바이오그래피 대강을 먼저 적는다. 주로 위키피디아를 참고한다. 작가의 지난 일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아 미리 작가의 생전을 알아두고 읽으면 조금 보탬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하다. 또 남의 사생활 엿보는 게 재미있잖아, 관음증 같은 거 없으니까 괜히 가자미 눈을 해서 볼 필요는 없더라도.

  하샴 마타르의 <귀향>의 독후감을 쓰면서는 굳이 작가의 지난날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전혀. 왜냐하면, 애초에 <귀향>이 히샴 마타르가 쓴 소설인 줄 알았더니, 세상에나, 에세이로 구분하는데, 자기가 살아온 내력을 자기 입으로 줄줄 다 쏟아낸다. 잘 됐다. 골치 아프게 위키피디아 보고, 가뜩이나 짧은 영어 써서 우리말로 바꾸느라 골치 아픈데. 자기 삶을 그대로, 심지어 사람 이름도 그냥 노출시키며 작품을 쓰는 아니 에르노 같은 이도 노벨상 타고 소설만 잘 쓰는데 마타르도 <귀환>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으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었을 터, 아쉽기는 하다. 왜 아쉽냐 하면,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 자기 살아온 거에다가 구라를 좀 슬슬 풀어 보태면 훨씬 더 재미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허구라는 이름의 구라를 다른 말로 하면 글루탐산나트륨, MSG 잖여.


  리비아는 16세기 이후, 그러니까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제국까지 몽땅 삼켜버릴 당시니까 오스만 최 전성기 시절부터 20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 비슷한 상태로 있었다. 18세기부터 약 백년 간 리비아 호족 출신 술탄이 지배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19세기 들어 다시 튀르키예의 식민지였다가, 20세기 초에 이탈리아가 튀르키예와 전쟁을 벌여 다시 식민지로 삼았다. 19세기 영국 왕립 지도에도 리비아라는 국호 대신 ‘술탄국 크리폴리아’라고 표기했었다고 <귀환>에 나온다.

  리비아 입장에서 다행이었던 것은 식민지 조선과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였다는 점. 종전과 동시에 영, 불, 미, 소가 동시에 껄떡거리다가 1951년에 리비아 왕국으로 독립했다. 이때까지 리비아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지 않아 독립은 했지만 나라가 거지꼴을 면치 못했고, 와중에 모범적인 신생독립국답게 거의 모든 공무원은 태연스레 부정부패에 전념을 해 국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왕과 귀족을 제외한 모두가 가난을 면치 못한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당도한 1969년 9월 1일. 국민들의 불만을 등에 업은 스물일곱 살,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또는 어린 육군 대위가 부대를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해 여든 살의 이드리스 왕을 폐위시키고 사회주의 국가 리비아 아랍 공화국을 세웠다.

  이때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장교 자발라 마타르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사관으로 달려가 로비 접수대에 걸린 존경하는 이드리스 국왕의 초상화를 손수 내려 빌로드 천으로 감쌌다. 마타르는 비록 국왕을 모셨고, 존경했지만 현대 공화정 체제에 더욱 열광했다. 새로운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런던에서 급거 귀국한 자발라 마타르. 그러나 그는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되어 5개월 동안 감옥에서 취조를 받은 다음에야 풀려났다.

  쿠데타 정부는 자발라 마타르 같은 옛 체제의 고급 장교이자 정치인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장 강력한 체제 위협세력이 아니라고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일종의 추방 성격을 띠고 1970년 봄에 유엔 주재 리비아 대표부 1등 서기관으로 임명해 맨해튼으로 보냈다. 자발라 마타르는 자신이 당한 계급 박탈과 강제 전역에 이은 하급 외교관으로 해외 파견근무 역시 역사적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과정으로 인식해 기꺼운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을 받아들였다. 아내와 아들 지아드와 함께 맨해튼의 아파트에 짐을 푼 마타르 서기관은 바로 그 해에 둘째 아들이자 훗날 소설가, 에세이스트, 평론가로 이름을 날릴 히샴 마타르를 낳았다.

  어떠셔? 이제 겨우 작가 히샴 마타르가 세상에 나왔다니까? 이거, 지금 위키피디아 복사한 거 아니다. 다 이 책 <귀환>에 나오는 거다. 그것만 시간대 조절해서 쓴 것일 뿐. 그럼 계속 간다.


  3년 동안 UN 리비아 대표부에서 일한 자발라 마타르는 1973년에 귀국한다. 다시 리비아 현대사.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처음부터 폭정을 동반한 독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스물일곱 살의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 장교. 그러나 권력욕은 있었겠지. 1960년대 초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하여 검은 오일 머니가 마구 유입되던 시기에 그가 주목하던 정치인은 이웃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 나세르의 어떤 행적을 모방했느냐, 이런 거 따지지 말자. 딱 하나만 알면 된다. 그가 범 아랍권의 대동단결을 외치는 동시에 친 소련, 즉 사회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했다는 점. 당시 사회주의국가,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동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점은, 일인종신독재. 철권통치 왕권에 버금가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월등하게 큰 권력을 쥐게 된다. 카다피가 보니까, 앗다, 저거 괜찮거든. 그리하여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종신독재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종신독재를 이루려니까 자기한테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숙청하는 공포스러운 경찰국가가 될 수밖에. 반면에 석유생산으로 유입되는 달러는 석유 말고 다른 생산 기반 없이도 국민생활을 (전과 비교해) 윤택하게 해주어 예상 외로 카다피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다수 생기기는 했지만, 주로 지식층을 중심으로 반 카다피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 반 카다피, 반체제 인사 가운데 손에 꼽는 사람이 바로 자발라 마타르.

  자발라 마타르는 위협을 감지한다. 더 이상 리비아에 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 같아서 가족을 모두 데리고 1980년에 망명길에 올라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다. 군인 출신이면서 반 카다피 진영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 이집트에서도 그는 반정부 활동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의 해외 투쟁은 1990년까지 계속된다. 이집트 경찰에 의하여 카이로의 아파트에서 밝혀지지 않은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


  이 와중에 마타르 선생은 맏아들 지아드를 1982년에 스위스의 산 좋고 물 좋은 알프스 산맥 고지에 있는 사립기숙학교에 다니게 한다. 그러나 카다피의 마수는 스위스까지 뻗어 있었다. 당시 리비아 정보부대원의 특징적인 외모였던 긴 생머리를 한 건장한 남성 네 명이 지아드를 감시하는 것을 눈치챈 아버지는 긴급하고 비밀스러운 전문을 보내 가까스로 맏아들을 무사히 데려온다. 둘째 히샴도 원래는 스위스 알프스의 기숙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형이 그 꼴을 당한지라 어쩔 수 없이 1986년에 영국의 사립기숙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다닌다. 놀랍지? 전직 장교에 외교관이었을 뿐인 공무원이 두 아들을 스위스와 영국의 사립기숙학교에 보내?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부자도 아니잖아? 그렇다. 책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군 복무 중에도 부업으로 일본과 유럽의 고급스러운 상품을 수입해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단다. 물론 작품의 주인공이니 돈을 버는 와중에 당시 기준으로 별 잡음도 없었고, 그러니까 부정부패에 관련도 없었다. 그렇게 믿자. 믿어주지 뭐. 믿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하여간 1990년 3월에 이집트 경찰에 의하여 체포된 아빠 자발라 마타르는 이후 모종의 루트를 통해 리비아로 신병이 인계되어 트리폴리에 있는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된다.

  자발라 마타르는 외교관 경력에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라 누구보다 카다피 정권에 위협을 준 인사였다고 아들 히샴 마타르는 주장한다. 실제로 자발라 마타르가 속한(또는 그가 우두머리로 있는) 조직은 리비아 국경 이남 차드 땅에 저항군 훈련소를 설치했고, 국내에서도 지하 세포조직을 운영했으니 카다피 입장에서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적이었을 터. 자발라는 아부살림 교도소에서 숱하게 모진 고문을 당했음에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그걸 다 견뎌냈다고, 주위의 모든 증인이 증언한다. 그러니 그랬다고 믿자. 이때 리비아 내에 있던 자발라의 조카들, 히샴의 사촌동생과 외삼촌 등도 자발라의 세포조직으로 지목당해 함께 수감되었는데,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적어도 1996년까지 자발라는 아부살림 교도소에 “생존”해 있었단다. 즉, 이후에 그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 책 <귀환>은 2011년부터 시작해 2012년 리비아 혁명으로 카다피가 물러난 이후에 귀국한 히샴 마타르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다. 아버지는 당연히 죽었겠지만 정말 죽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는지, 혹시 생존해 있거나, 짐작대로 묻혀 있더라도 어쨌거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적고 있다.

  소감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현대사도 만만치 않아서, 아, 그랬구나. 리비아도 그랬구나. 하는 정도. 문장은 좋다만, 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바람에 나중엔 지겨울 수 있다. 나는 뒤로 갈수록 지겨웠다. 당신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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