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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오브라이언의 두 작품 <카차토를 쫓아서>와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은 모두 베트남전 이야기였다. 전쟁이라는 독특한 환경, 독특한 비극을 특별한 블랙 유머로 그려낸 오브라이언의 신작 <미국 환상곡>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걸 알고 도서관에 즉각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다. 다 읽고 나서야 작가가 이 작품을 소설로는 21년만에 출간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적어도 작품 속에서 미국 최초의 패전인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등장인물은 없다. 하지만 작가 오브라이언이 육군 보병으로 참전을 한 경험은 어디 가지 않았으리라.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 하면, 작중 주인공 보이드 핼버슨의 심리가 마치 전쟁중 충격으로 PTSD를 겪고 있는 사람과 유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도 타당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말하자면, 간략하게 소개할 보이드 핼버슨과 앤지 빙의 로드무비 역시 팀 오브라이언의 독특한 블랙유머 적인 문장으로 일종의 PTSD를 벗어나기 위한 한 인간의 발버둥을 그린 작품이라 말할 수도 있으리라.
1970년. 이탈리아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에 있는 작은 도시 베니스 출신의 중고차 딜러(인지 그냥 판매원인지) 오티스 버드송 씨는 매력적인 아내이지만 점점 거대해져 나중엔 거실의 카우치에서 누운 채로 살다 생을 접어야 할 론다 핼버슨을 통해 유일한 아들 보이드 핼버슨을 낳았다.
아버지의 이름 ‘버드송’은 알고 보니 개명한 거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지만 전후 히피 문화를 접했던 오티스 씨가 당시 좋아했던 그룹 사운드 “러빙 스푼풀Lovin’ Spoonful”에서 착안, 그깟 이름이 뭐가 문젠데 싶어서 어떻게 하면 “골때린”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바꾼, 이른바 새로운 가문의 탄생을 초래하게 될 이름이었다.
보이드의 당시 이름은 오티스 주니어. 그냥 ‘주니어’라고만 불렀다. 베니스 출신 오티스 버드송 씨가 아마도 중고차 딜러가 아니라 그냥 판매원이었던 듯, 가족을 먹여 살리기는 했지만 풍족했던 적이 거의 한 번도 없던 걸로 기억하는 주니어는 소년시절부터 샌타모니카에서 신문배달을 해야 했다는데, 이때부터 야심만만한 어린 아이쇼핑 꾼으로 자질을 보여 휘황찬란한 번화가의 마법왕국, 쇼 윈도우 바깥을 돌며 눈을 굴리는 관음증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집안에서는 머리가 커지면서 속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겉으로는 거친 말과 비난을 쏟아내는 아버지 오티스 시니어와 아예 거의 완전히 대화가 끊어져버리고, 뚱보, 그것도 미국 기준으로 엄청난 뚱보로 변신한 엄마를 혐오하게 되면서 일찌감치 가정 속 독립군으로의 자리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제 주니어에게 남은 건 자수성가 하나뿐.
주니어는 어느 순간 스르륵 오티스 버드송 주니어에서, 버드송이 뭐야, 새타령이 왜 내 이름이어야 하는데, 그래서, 보이드 핼버슨이 되었다. 흉물스러운 엄마 론다 핼버슨을 따른 것. 이러니 세상이 달라졌다. 보이드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USD를 세 학기만에 중퇴하고 프린스턴 대학으로 가 폴로 선수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숨마 쿰 라우데, 즉 수석 졸업의 기염을 토한다. 이후 미 육군에 들어가 쿠웨이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상이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하트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받고 제대했다. 끝내주지? 이후 로즈메리 클루니, 로버트 스텍, 팻 히치콕, 세실 B 드밀의 추천서를 받아 유명 통신사의 동남아 주재원으로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
홍콩에서 1년, 자카르타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미국의 거대 그룹 PS&S 태평양 선박 및 조선의 회장 딸인지는 몰랐지만 처음부터 눈이 맞은 에벌린과 결혼하는 행운을 얻었다. PS&S 자카르타 지점의 강당에서 열린 초호화 결혼식에는 인도네시아에 상주하는 주요 백인국가에서 온 외교관들과 정부 고위 공무원은 당연히 참석해야 했던 자리였고, 심지어 대통령의 축전까지 받을 만한 대단한 자리였지만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오티스 버드송씨.
콩을 볶는 신혼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미국의 저널리즘은 동남아 지역의 특파원 수를 대폭 감원하기에 이른다. 원래 출중한 결과물을 내온 보이드 핼버슨은 혼자 살아남은 대신 여러명이 해온 작업을 자기 혼자 맡아 그야말로 중노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동남아 각국으로 며칠씩 출장을 해야 했던 것도 당연해,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면 사이도 멀어진다는 진리에 입각해 아내 에벌린과의 관계도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하루는 부부가 대판 싸우고 있다가 품에 안고 있는 아들을 순식간에 손에서 놓쳐, 아이가 그만 충격으로 죽고 말았다. 이게 두번째 트라우마.
첫번째 트라우마는 그럼 뭐냐고? 이걸 알려드릴까, 말까? 에라 좋다. 어차피 책의 절반도 읽지 않아 독자가 알게 될 터인데 뭘. 위에서 얘기한 보이드의 이력서가 전부 허위였다는 거. 거짓말. 프린스턴, 폴로, 숨마 쿰 라우데, 퍼플하트와 은성무공훈장, 이거 다 싹 거짓말이다. 유명인사 네 명의 추천서는, 추천서 자체가 허위문서였는지 아니면 추천서를 받았다고 거짓으로 이력서에 기록했는지 그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여간 보이드는 네 명과 얼굴도 마주쳐본 적이 없다.
그럼 애초에 가지고 있던 이 첫번째 트라우마의 원인인 거짓말이 어떻게 들통났을까? 이것도 알려드려? 뭐 그러지. 여기까지 왔으니 굳이 숨길 필요 있나?
에벌린과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할 때, 장인이 회장으로 있는 PS&S의 자카르타 조선소에서 만든 선박 세 채가 침몰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만일 미국에서 배를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는 배였다. 규격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얇은 강판, 군데군데 용접상태도 개판이었고, 당연히 설치되어야 했을 장비도 누군가가 어디로 빼먹었는지 달려 있지 않았다. 이런 정보가 보이드의 손에 들어왔던 것. 한참 잘 나가던 보이드는 어느새 퓰리처 상을 꿈꾸기에 이르렀는데 이런 정보가 손에 들어왔으니 그걸 그냥 내버려둬도 바보 아냐?
이런 모든 건 PS&S가 인도네시아의 관련 공무원들에게 찔러준 현금 뇌물로 통과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이 결국 선박의 침몰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졌고, 그것도 무려 거의 시차 없이 세 척이 한꺼번에 태평양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던 거다. 이건 보도만 나가면 대박, 당연히 퓰리처 상 감이었다.
근데 명색이 거대회사의 회장인 두니가 가만히 있었겠어? 그는 별의 별 인맥과 탐정과 변호사와 깡패들과 심지어 동사무소 직원들까지 동원해 보이드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해, 그의 첫번째 트라우마를 찾아냈다. 보이드가 저질러온 온갖 거짓말을 한 방에 다 까발렸던 것. 그가 한 거짓말만 여기에 써 놓으면 A4 용지에 행간/자간 좁게 하고 10 폰트로 써도 꽉 차게 한 장 분량이다. 그러니까 앞 문단에서 말한 그의 거짓말은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정도라고만 감을 잡으시라. 인간 자체가 몽땅 거짓이었던 것. 그걸 홀아비이자 동성애자인 장인 두니가 먼저 만장하신 관계자 여러분께 폭로해버린 것.
이것으로 보이드의 인생은 종쳤다. 라고 보이드는 생각했다. 이후 아이까지 죽었으니 그는 당연히 이혼당하고, 귀국해서, 소매 체인점 ‘JC 페니’의 지점 매니저로 지내고 있다. 인생이 종치기는. 지점 매니저가 어딘데. 참 배들 불러요. 하여간 보이드의 거짓 때문에 287쪽에서 PS&S의 회장 두니가 실토하듯이 자기가 저지른 “부당이득, 시세조작, 탈세, 금수 조치 불이행, 내부자거래, 사취 모의, 무기수출통제법 위반” 등등을 합쳐 형을 받았다 하면 3백년 형은 너끈할 범죄도 묻혀 버렸다.
보이드는 이제 뭔가를 끝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리하여 2019년 어느덧 49세가 된 그는 토요일 오전에 키와니스 브런치 모임에 참석했다가 중간에 슬쩍 나와 지역사회 국법은행에 가서 템프테이션 38구경 권총을 꺼내, 토요일이라 창구에 혼자 있던 29세 행원 앤지 빙, 2년 동안 서로 추파를 던지기도 했던 바로 그 앤지 빙에게 가방을 던져주며 “30만 달러만 챙겨봐.”라고 무장강도를 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나 어디. 앤지 빙이 대답한다. “아저씨, 이 은행에 있는 돈을 다 모아도 반도 안 되요.” 그래서 서랍이란 서랍, 금고란 금고를 다 뒤져 8만1천 달러 조금 안 되는 돈을 챙겼고, 앤지 빙을 인질 삼아 둘이 함께 낡은 차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된 전 아내 에벌린의 여권을 앤지에게 건네주고 둘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산타로살리아 호텔에서 주로 국법은행의 돈을 써가며 여드레를 보내고 다시 돌아온다. 앤지 빙. 이 터무니없이 말도 많고, 오지랖도 넓은 아가씨와 인생 다 산 거 같은 남자 보이드 사이에 뭔가 있을 거 같지?
참고로, 보이드의 상습적 거짓말은 미국에서 대 유행한 전염병의 일종이었단다. 작품 시작이 2019지? COVID-19가 유행했던 것처럼 이전에는 전 미국적으로 거짓말이 그렇게 유행이었다고. 물론 팀 오브라이언의 주장에 의하면.
자, 이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인 로드무비의 막이 올라가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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