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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해롤드 핀터 전집 2
  • 해롤드 핀터
  • 6,300원 (10%350)
  • 2005-10-19
  •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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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롤드 핀터는 1930년에 동런던에서 동유럽 출신 유대인 가족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아쉬케나지이다. 청소년 시절인 1942년부터 48년까지 6년 동안 동 런던에 있는 해크니 문법학교에 다니며 영어, 연극, 운동에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졸업 후에 왕립연극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중도에 때려 치운다. 아마도 징집영장을 받았고, 이에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양심선언을 해 징역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벌금형만 받고 끝낸 다음에 다시 몇몇 연기 학교에서 배우 수련을 받으면서 배우와 극작가를 겸한다. 인생의 절정기를 향해 질주하는 시기가 와서 자연스레 사랑도 하고, 결혼도 몇 번 하고, 아이도 낳고, 연극도 적극적으로 해서 실질적으로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생일 파티>를 공연해 대박을 친다.

  핀터가 비록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그리 편하게 살지는 못했다. 영국 역시 골수 우익을 중심으로 반유대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런던 사람들이 “히틀러한테도 배울 게 있다니까!” 하며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장면은 소설책에서도 몇 번 나왔을 정도였으니. 핀터도 해크니 거리에서 이들한테 린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 폭격기에 의한 공습. 이런 폭력을 당한 경험 또는 상처는 핀터의 작품 속 특유의 “폭력과 공포, 위협” 같은 요소를 갖게 만들었단다.

  좋다. 근데 문제는 이이의 작품이 영국의 국가대표급 “부조리 연극”이라는 거다. 부조리극이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래서 절판된 핀터의 책을 도서관에서 구해 읽어본 것인데, 사실 “부조리극” 딱 한 가지 조건만 가지고도 실제 공연을 보지 않은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기가 무지하게 힘들 터, 여기에 핀터 특유의 폭력과 공포, 위협을 팍팍 가미한 “희극”이기까지 했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정직하게 얘기해서, 나는 두 희곡을 읽으며 이것이 희극, 코미디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읽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도무지 영국의 국가대표급 부조리극은 아닐 거 같은데, 뭐 이렇게 궁시렁거리다가 작품을 다 읽고 해설을 들춰보니, 아이쿠, 다시 읽어야겠구나, 뒤통수 팍, 얻어맞은 거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로 다시 읽어볼 정성까지는 없고, 이미 읽은 것을 뇌 속에서 재배치했을 뿐이니 그게 얼마나 합당하지 않은 감상일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극작가의 작품에 대한 독후감은, 아 어떡하지? 안 쓸 수도 없고, 그래 생각나는대로 조금만 써볼 터이니 읽는 분들도 그냥 가비얍게 훅 한 번 읽고 지나가시라.


  희곡 두 편이 실렸다. <벙어리 웨이터 Dumb Waiter>와 <핫하우스 Hothouse> <벙어리 웨이터>를 위주로 쓰겠다. 앞쪽에 실리기도 했고, 조금 더 주목받은 작품이다. 1960년 1월에 햄프스테드 연극 클럽에서의 초연이 끝나자마자 영국왕실의 요청으로 왕립극단이 3월에 다시 공연했을 정도로 주목받았나 보다. 우리나라 청와대에서는 연극 공연 안 하지? 하긴 대통령이 뭐간디, 가서 보면 되지.

  먼저 “벙어리 웨이터”가 뭘까? 장소는 지하실 방. 지하실의 특징은? 창문이 없다는 거. 즉 들어온 문이 아니라면 이곳에서의 탈출이 아예 불가능한 장소라는 의미다. 벽쪽에 침대가 두 개 놓여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도 단 두명이다. 벤과 구스.

  벤은 왼쪽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고, 구스는 오른쪽 침대에 앉아 다분히 부조리 연극 답게 이유 없이 신발끈을 묶었다가 풀고, 풀었다가는 구두 속에서 난데없이 성냥갑을 꺼내기도 하고 담배갑을 꺼내기도 한다. 부조리극 좀 읽어본 독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성냥과 담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관단총이나 장갑차 정도가 신발 안에서 나와야 이게 뭐지, 할 수준이지 그것 가지고는 뭐.

  이들이 이 지하실 방에 들어와 뭔가 먹기도 했던 것 같다.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무엇을 먹으면 일정 분량의 잉여분을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그래서 구스가 무대 왼쪽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퍼더덕 푸닥거리 해산을 한 번 하고, 매화타령을 했으니 쪼그려 쏴 식 수세식 변기의 줄을 당겼고, 줄을 당겼지만 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구스가 난처한 얼굴을 하고 다시 등장한다. 찜찜하겠지? 그래서 또 화장실에 들어가 줄을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번에도 물은 쏟아지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독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 두 출연자들의 직업이 무엇인고 하니, 살인청부업자다. 벤이 신문기사를 구스한테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사인가 하면, “87세의 노인이 길을 건너려고 한 거야. 그런데 차들이 너무 많았지. 알았어? 노인은 그 길을 어떻게 건너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는군. 그래서 화물 자동차 아래로 기어갔다는 거야. 화물 자동차가 출발했고 그를 치었대.”

  이런 식으로 주로 죽는 이야기. 사람에 국한하지 않는다.

  “8살짜리 어린애가 고양이를 죽였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 응? 8살짜리 어린애가 고양이를 죽이다니! 남자아이가 죽였대? 여자아이였어. 여자아이가 어떻게 죽였어? 그 아이는― 쓰여져 있지 않은 걸”

  “잠깐만 기다려봐. 이렇게 쓰여 있어 ― 11살 된 여자아이의 오빠가 공구실에서 그 일을 목격했다.”

  노인의 죽음. 여자아이가 고양이를 죽인 일을 벤이 마치 중요한 사건인양 구스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도 사실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라서 여기까지 진도가 나갔건만 형광등 비슷한 독자인 나는 이들의 직업이 청부살인자인 줄도 몰랐고, 이 드라마가 심지어 “희극” 코미디인 줄도 몰랐다. 그러니 이게 재미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만일 정말 무대극이었다면 배우들이 나누는 대사의 억양이나 말투, 발음 같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행위의 과장 같은 걸로 벌써 몇 번의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희곡은 드라마를 보는 행위가 선행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아, 그러나 내가 사는 촌구석에서 해럴드 핀터의 작품이 무대에 오를 날이 있기는 있을까? 땅 팔고 (땅? 땅도 있어? 아, 그건 없어서 못 팔겠다), 아파트 팔고, 주식 팔고, 기타 등등 다 팔아서 서울 18평 아파트 전세라도 들어갈까?


  궁상은 이만큼 떨었으면 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벙어리 웨이터 Dumb Waiter가 뭘까? 벽에 달린 작은 엘리베이터. 주로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을 주방에서 만들어 올려 보내거나 내려 보낼 때 쓰는 작은 음식 이송용으로 쓴다. 저번에도 얘기했는데, 앨리 스미스의 <호텔 월드>에서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장난으로 거기 들어갔다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추락사하는 그런 거. 동네 웬만한 2층짜리 중국집 가도 짜장면, 탕수육. 이거 타고 올라온다.

  살인청부업자 벤과 구스한테도 이 벙어리 웨이터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명령지가 도착한다. 이럴 때마다 두 킬러들은 신경이 곤두서겠지? 근데 엉뚱하게도 벙어리 웨이터 말고 무대 오른쪽의 방문 아래로 봉투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밀봉된 봉투. 벤의 지시에 따라 봉투를 뜯어보는 구스.

  뭐가 들었어? 성냥이야. 성냥? 응. 이리 줘봐.

  아까 구스가 신발끈을 묶었다가 풀었을 때 신발 속에 성냥갑이 들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등장하지 않는 빅보스 또는 자신들의 정보를 알아낸 적들이 성냥 몇 개비를 봉투에 담아 준 거다. 빅보스라면 큰 문제는 아닌데 만일 이들이 성냥갑만 있고 성냥개비는 없다는 걸 알고 마치 적선하듯 성냥개비 열 개를 준 거라면? 이거 심각한 일이다. 희극에서 말이지. 긴장해야 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불안과 폭력의 공포를 느껴야 마땅하다. 코미디니까. 근데 문제는 아직도 독자인 내가 이 드라마가 코미디인 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

  이런 상황이니 극이 재미있고 없고 따지기 전에, 도대체 지금 두 등장인물이 어떤 내용을 연기하고 있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겠는 거다. 지금 이들이 머물고 있는 지하 안가가 버밍엄이라서 축구팀 웨스턴빌라와 토트넘 훗스퍼의 시합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 이런 것만 따따부따 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성냥개비 열 개라니.


  그래, 그래. 다시 읽어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기는 하겠다. 좋아, 시간도 많은데 그렇게 해보지 뭐. 하지만 그렇다고 독후감도 다시 쓰겠다는 건 아냐. 같은 책을 읽고 느낀 걸 다시 쓰는 일이 여간 피곤하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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