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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책물고기
  • 왕웨이롄
  • 12,150원 (10%670)
  • 2018-10-12
  • :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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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웨이롄, 이 중국인 작가의 중국식 이름은 ‘윌리엄’이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는 왕웨이롄 또는 왕 윌리엄으로 불리고 밖에서는 윌리엄 왕이라고들 하는 모양이다. 1982년생 중국 작가. 태어난 곳이 어딘가는 검색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 검색 센터 바이두는 산시성 시안시 후이구라고 썼고, 중국학 센터와 위키피디아에는 칭하이성 옌현에서 낳았다고 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뭐하러 이런 걸 따지느냐 하면, 《책물고기》에 첫번째로 실렸으며 이이를 스타 작가로 발돋움시킨 대표 단편 가운데 한 편인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의 배경이 칭하이성의 차카염호 부근이기 때문이다. 차카염호. 해발 3천미터 이상 높이의 청정 소금호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색은 푸른 하늘과 흰 소금이 전부. 물 속을 들여다보면 동시에 흰색과 파란색을 볼 수 있겠지. 건조한 공기와 높은 염도로 인해 풀과 나무가 별로 자라지 않는다. 식물이 없으니 동물도 없다. 정말 없는 건 아니고 흔히 동물이라 말하는 것들은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의미.

  왕웨이롄은 이곳에서 나서 더링하, 시닝, 시안에서 자라고 대학은 저 남쪽 수천 킬로미터를 내려가 광저우시 중산대학에 입학, 인류학과 중문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광저우를 중심으로 여러 대학과 문학단체에서 찍은 다양한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거 같다. 북부인 출신으로 남쪽 지역인 광저우에서 자리잡는 애환을 그린 <아버지의 복수>와, 역시 북쪽에서 유학온 여학생과의 첫사랑과 재회 이야기를 쓴 중편소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 같은 작품이 이런 배경에서 나왔으리라.


  첫 작품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를 읽으며 탁 드는 생각이 글을 참 섬세하고 깔끔하게 쓴다, 하는 거였다. 앞에서 말했듯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의 황야. 말로만 황야가 아니라 진짜 황야. 늘 청명하고 눈이 부시다 못해 여차하면 시력을 상실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강하고 청명한 햇살이 비치지만 봄이면 손톱을 내려다보지 못할 정도의 황사가 몰아치기도 하는 아름다운 지옥. 그래도 소금호수가 있어 사람들은 소금을 채취하고, 소금산업 덕에 마을도 생기고, 술집도 생기고, 노래방도 생겼지만 그렇게 자연과 함께 사람마저 황폐해버리고 말게 되는 곳. 문화가 없어 건전하게 즐길 거리 역시 찾지 못한 주민들이 제일 쉽게 찾게 되는 즐거움이 술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중국 북서부 고원이니 춥기는 오죽이나 추웠을까? 하지만 술 마시는 자, 결코 실수를 피하지 못하리니 애초부터 불행을 담보하고 알코올로 목젖을 적시는 것이라.

  주인공 ‘나’는 아내 샤링에게 한눈에 반해 훗날 소금채취선을 운행하는 샤오마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결혼에 이른다. 행복한 부부에게 항용 그러하듯이 곧 샤링은 임신을 했으나, 사실인지 아니면 주민들이 하는 말에 불과한지 모르지만 지역에 팽만한 높은 염도가 사람에게 독이 되어 샤링은 유산을 했고, 이후 부부의 사이는 급격하게 냉각되고 말았다. 이런 시기가 계속되던 몇 년 후, 고등학교 동창생 샤오딩이 연인과 함께 이곳에 며칠 들른다.

  ‘나’는 몇 년 전 술 마시고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 좋은 자오형과 거의 매일 대취하곤 했다가, 그와 함께 술을 마신 날 그만 자오형이 소금호수에 빠져 죽은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정을 나누었지만 졸업 후 시간이 꽤 흘러 이제는 조금 서먹한 친구 샤오딩은 대도시에서 이름이 나지는 않았어도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는 화가로 지내고 있으며, 탄광 채탄부 생활과 젊은 시절의 황음으로 간이 많이 안 좋아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한다. ‘나’ 역시 자오형의 죽음 이후에 거의 술을 끊었다. 하지만, 하여튼 드러운 동양인의 술 접대 문화. 이들은 오랜만에 만나 소금 호수 구경을 가고, 채취선 샤오마까지 어울려 오랜만에 대취한다. 사고는 없었다.

  샤오딩과 함께 온 선글라스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 진청. ‘나’와 진청 사이에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어찌 서로의 눈길이 오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며칠 후 샤오딩과 진청은 떠나고, 이때 진청과 아내 샤링이 가까이 지낸 것이 전환점이 되었는지 부부는 다시 사이가 좋아져 두번째 임신을 한다. 샤링은 전과 같은 슬픈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친정으로 몸을 피하고 몇 달 후 사내 아이를 순산한다. 그동안 ‘나’와 진청은 몇 번의 편지 왕래가 있었고, ‘나’는 필요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편지를 불태우는데 아내는 이제 소금호수에서의 일을 그만 두고 친정이 있는 도시에 와서 자리를 잡자고 말한다.


  별스럽지 않은 서술이지만 문제는 문장이다. 섬세하고 청징하며 깔끔한 문장들. 그것들이 만든 문단. 확실히 중국 소설도 한 세대가 흘렀구나. 지난 달에도 딩옌을 읽었다. 이들에게는 각자 적응하지 못하는 벽이 있었지만 선배작가들처럼 좌우, 빈부, 지배/피지배, 혁명/반동의 벽이 아니다. 이들은 확실하게 현대인이며, 문화적으로 문명인들이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중국 작가들 가운데 특별히 글이 좋아 나라 밖에까지 번역 소개하는 것이겠지만 현대 중국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왕웨이롄, 윌리엄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마찬가지이기는 하다”라고 말하는 건 뭔가 조금의 이의가 있다는 뜻.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의 두 주인공이자 문학청년 ‘자화’와 ‘루제’는 세월이 흘러 자화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루제의 영향을 받아 작가이자 광저우 지방의 교수가 됐고, 의과대학을 다니던 루제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의대를 졸업한 후 베이징에서 의학박사까지 하고도 종합병원에서 병원 사무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졸업한 후 10년 동안 만나지 않았다가 그동안 루제가 이혼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자화에게 한 번 왔다 가라고 초청 비슷하게 한 것. 아직 미혼 상태를 유지하던 자화는 당연히 베이징에서의 뜨거운 하루를 염두에 두고 도착해, 이제 30대가 된 완벽한 성인이자 인생의 절정기를 달리는 자유로운 남녀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를 즐기고 기약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그런 내용이다. 이야기의 반을 훨씬 넘는 분량이 이들이 갓 대학에 입학한 청춘 시절의 풋풋한 연애와 이별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어제 미시마 유키오의 독후감을 쓰면서 짧게 말했듯이 미시마는 글을 쓸 때 독자를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미문이 쏟아져 나오는데 반해서, 글 좋은 왕웨이롄은 어떻게 써야 글이 아름답고 깔끔하게 읽힐까, 이걸 고민하며, 고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습관적으로 염두에 두고 쓴 글 같다는 거다. 그리고 우습게도 왕웨이롄은 바로 이 작품 <베이징에서의 하룻밤> 속에서 맹렬하게 습작에 몰두하고 있는 루제의 습작을 읽고 비슷하게 말한다. 루제가 읽는 사람을 너무 의시하면서 글을 쓴다고.

  둘이 헤어진 뒤에 자화는 루제의 SNS에 수시로 들어가 루제가 미니홈피에 올린 시를 읽고, 자기가 방문한 흔적을 지운다. 누구나 이런 경우 한 번씩 있지? 그래서 나는 그냥 이쯤에서 문단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싶은데, 작가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계속한다.

  “(자기가 방문한 흔적을 지운) 그 이유는 무엇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의 시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전에는 눈에 확 띄었던 재기가 번잡한 수사에 가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글을 쓸 때 남의 눈을 의식했다. 마음속의 열정이 부족해질수록 더 스스로를 치장했고 그것이 오히려 글을 망쳤다. 그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웠다.”  (p.253)

  위 인용을 읽어보니까, 나를 포함한 누구나 타인이 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자기가 쓸 때에는 이걸 눈치채기가 힘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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