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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술 취해 있거나, 잔다.
  • 비둘기 재앙
  • 루이스 어드리크
  • 13,050원 (10%720)
  • 2010-07-15
  • :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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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어드리크를 읽고나서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도 마음에 들어 다음 작품을 골랐으니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었다. 근데 그게 대박. 이후 어드리크를 더 파 봐야겠다 싶어 한 편을 더 읽에 삼세권을 만든 후, 한꺼번에 어드리크만 꽈과광 연달아 읽기도 뭣해서 좀 있다가 읽자, 그랬는데 그만 잊고 해를 넘겼다.

  <비둘기 재앙>, 재미있다.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만큼 대박은 아닐지언정 책 뒤표지에 박여 있는 필립 로스의 주례사처럼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놀랄 만하다.


  사건은 노스다코타주 원주민 보호구역 근처의 작은 도시 플푸토 외곽지역에서 발생한다.

  1911년 한 가정에서 부모와 십대 소녀, 여덟 살과 네 살 소년이 살해당했다. 그러면 누군가가 죽인 ①살인범이 있을 건 당연지사. 플루토 시에서는 와일드스트랜드 가문과 부켄도르프 가문이 시가 생길 때부터 결정적 공헌을 한 권력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백인 가족의 집단 살인을 조사도 하기 전에 틀림없이 인디언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해버렸다. 살인 현장을 좀 더 세심하게 조사했더라면 결코 그들의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을 터이나, 사실 이들은 아직 범행 현장을 가보지도 않았지만 ②두 가문의 수장들 생각은 확고했다.

  피해자 가족이 몰살한 건 아니다. 난 지 ③일곱 달 된 아기가 침대 모서리에 끼어 있는 것을 살인자가 발견하지 못해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아기는 선한 부부에게 입양되어 극진한 사랑을 받아 좋은 교육을 거쳐 동부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플루토 시에 돌아와 중요한 시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주지 않겠다.

  선량한 인디언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년, 그리고 다른 인디언 커스버트와 ④세라프 밀크 이렇게 네 명이 우연히 만나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 만든 수공예품 바구니를 팔러 가다가 하필이면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도착한다. 이들이 보니까 사람들은 다 죽어 있고, 침대 모서리에 낀 아기만 살아 있어서 ③아기를 안고 젖이 잔뜩 불어 고통스러워하는 암소에게 가 젖을 빨게 해준다. 이래서 ③은 생명을 구한 것.

  하지만 이때 ②들이 이 현장에 도착해 인디언 네 명이 있는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법칙, 살인범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다시 와본다, 이들을 붙잡아 즉각 범인들로 확정해버린다. 그리하여 이들을 총으로 위협해 팔과 다리를 꽁꽁 묶어 수레에 태운 다음 숲을 돌아다니며 튼튼한 가지가 달린 나무를 찾아 여지없이 목매달아 버렸다. 거의 죽어갈 즈음 ② 가운데 유진 와일드스트랜드가 ④세라프의 목을 당기는 줄을 끊어 ④만 살려준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안 알려줌.


  그럼 ①은 누구지? 누구기는 누구야, 백인이지. 지금 내가 1911년에 있었던 백인에 의한 “부당한 정의” 사건을 먼저 써서 그렇지 작품의 시작은 1896년에 이어 1960년대의 한 시절이 나온 후에, 60년대 화자의 주인공 열네 살 먹은 에블리나가 (원주민 미치프족의 말로 ‘무슘’) 외할아버지 세라프 밀크가 해주는 당시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진실이 아니라 1911년에 목에 밧줄을 걸었다가 살아난 유일한 한 명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진술한 것. 물론 독자는 이 사실을 저 뒤편에 가서야 알게 되지만. 그래서 이이가 살아난 진짜 이유를 내가 말하지 않는 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무슘이 교수형 현장에 있었고 집행에 직접 참여했던 유진 와일드스트랜드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뭐 그렇다. 궁금하시라고 조금만 일러드리는 것.

  훗날, 아마도 1980년대 정도 될 걸로 보이는데 ①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다. 이것도 내 말을 믿지는 마시고. 딱 쓰여 있지 않지만 전사한 인물은 진짜 살인범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위의 범죄 사실을 정의에 입각해서 밝히는 것, 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하여간 내가 읽기로는 그 사건을 앞뒤로 해서, 앞으로는 플루토 시를 만들기 위한 극한 조건에서의 탐험, 훗날 플루토 시의 유지 가문으로 말뚝을 박을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가 차파웨족과 프랑스 혼혈인 앙리와 라파예트 피스 형제의 인도로 목숨을 건 서부 개척부터, 개척 당시엔 합류했다가 다시 동부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해 플루토로 온 판사/변호사 가문, 그리고 무엇보다 목 매달렸다가 살아난 세라프의 손녀까지,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실꾸리를 푸는 재미에 있다. 위에서 말한 가문의 후손들이 전부 등장한다. 등장하는 선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지지고 볶다가, 이혼(당)하고, 납치도 하고, 사제의 연도 맺으며, 옛 시절의 진짜 사연에도 불구하고 후손이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한도 끝도 없는 인연의 뒤엉킴. 뒤엉킨 세상이 뭐야? 그게 바로 사는 일이지, 사는 게 별거냐?


  게다가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주인공 격인 에블리나와 무슘. 목 매달렸다가 살아남은 ④세라프 할아버지 말야, 이 두 사람이 독자를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 특히 무슘이 자기 친동생 샤멩과, 어렸을 때 소 뒷발에 채여 왼팔이 부러져, 부러진대로 뼈가 비틀렸어도 소도시 수준으로 최상의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는 새멩과와 더불어 플루토 시의 주임신부 캐시디를 놀려 먹는 대목이, 정말, 죽여준다.

  캐시디 신부라고 얌전히 가만 있을 수 있나? 세월이 흘러 바이올리니스트 샤멩과가 죽어 진혼미사를 집전하는데,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고인의 친형 세라프를 추도하는 강론만 드립다 해대는 거다. 조금 정리해서 본문을 앞뒤로 다시 배열해 보자면:

  “세라프 밀크, 원죄 없는 잉태와 동정 출산에 의심을 표해 그의 영혼이 어쩌면 지옥에 갔을지 모르지만 동정녀 마리아가 그를 돌봐주고 계실 겁니다. 비록 ‘나는 마리아가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오.’라고 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지금 세라프는 지옥이 무한하지도 아주 뜨겁지도 않다는 믿음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남동생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악마의 불꽃을 싹 틔우는 바이올린을 켜고 그 활에서 거룩한 고통을 쥐어짜면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루이스 어드리크가 희극적인 묘사도 이렇게 잘 할 줄은 내 미쳐 몰랐다. 그래, 이건 알려드리지. 술을 워낙 좋아하는 캐시디 플루토 성당 주임신부는 세월이 조금 흐르면 그깟 사제직 때려치우고 큰 도시로 진출해 미국산 와인이던가 뭔가를 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일을 해 큰 부자가 된다. 술 하나는 실컷 마셨겠지? 지방간을 넘어 간경화나 안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둘기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할 것 같다. 작품의 뒤쪽에 한 번 더 나오지만 뒤편의 비둘기 재앙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는 직접 궁리하시는 걸로 하고, 진짜 19세기 말, 1896년에 있었던 비둘기 재앙.

  이때의 비둘기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흔히 보는 유해조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지금은 거의 멸종됐다고 하는 비둘기 떼를 가리킨다. 마치 메뚜기떼처럼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노스다코타주의 농장마다 밀 모종, 호밀, 옥수수를 먹어 치우고, 과수 꽃송이는 물론이고 왕겨까지 하여간 소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고갈시켰다고 한다. 노스다코타 지역의 인디언과 백인 농장주는 시즌이 되면 이 비둘기 떼를 없애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획해,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비둘기 볶음탕도 해먹고, 백숙, 전골, 매운탕, 하여간 먹다, 먹다, 먹다가 지칠지언정 전체 개체수로 치면 새발의 피, 티도 나지 않았단다. 그리하여 나중에 먹지도 않고 보이는대로 다 잡아 죽였는데, 그러면 뭐해, 널브러진 비둘기 시체는 또다른 비둘기가 포식, 영양보충을 한 비둘기들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을 할 정도였다니. 그리하여 1896년에는 무슘의 의붓형이 주임신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교구민 전부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미사할 때 입는 의례복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미사경본을 챙겨 성요셉 성당에 모이라고 해서, 형제자매들을 총동원해 벌판으로 나가 하느님께 열심 기도를 할 정도였다는 거다. 이 장면이 책의 제일 앞에 나온다. 비둘기 재앙이 무슨 계시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계시록적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백인에 의한 원주민 살해, 즉 부당한 정의를 계시록적 비극이라고 판단하면.

  결말은 어떻게 될까? 당연하지. 어떤 형태로든지 1911년의 비극은 해소되어야 한다. 그럼, 근 70년 이상이 지나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 가문의 후손들이 인디언 후예들에게 무릎 팍 꿇고 사과라고 해야 하나? 흠. 책에서는 아니다. 그걸 해결해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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